[쇠창살 안 '엄빠'②] 길거리 내몰리고 우울증도…위기의 아이들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에서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아동들의 단체사진. /세움 제공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인종, 국적, 그 어떠한 조건과 환경에서도 차별되어서는 안 되며,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져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는 어떤 상황에 있는 아동이더라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부모가 형사적 책임을 지고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수감생활을 징벌로만 인식하는 국내 정서에서는 수용자 자녀의 권리에는 무감각하기 쉽다. <더팩트>는 연 5만명가량으로 추산되는 수용자 자녀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3회에 걸쳐 살펴봤다. 두번째 순서에서는 해외와 국내의 수용자 자녀 정책을 비교해 본다.<편집자주>

사실상 '아동 기본권' 박탈…정부 노력에도 대중 인식은 제자리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1991년 한국이 가입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생존권 △발달권 △보호권 △참여권을 아동의 기본권으로 명시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수용자 자녀는 부모가 수감된 후 당장 생계를 이어가기 힘든 상황에 노출되며 삶을 영위하는데 꼭 필요한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등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또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부모의 체포와 수용, 이로 인한 부재와 이웃의 시선 등 충격적인 일을 연이어 겪으며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영미권 등 해외는 일찍이 수용자 자녀 인권에 주목해 다양한 지원 정책을 폈다. 남겨진 아동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물론 부모의 수용 후 아동을 보호 중인 양육자를 위한 지침서도 존재한다. 한국 법무부 역시 국내 41개 교정시설 중 24개에 아동친화형 가족접견실을 설치하는 등 수용된 부모와 아동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용자 자녀가 견뎌야 하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전문가들은 세계적 가치인 아동 인권은 물론 재소자의 교화와 원활한 사회복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대중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엔 가입 30주년 코앞…아동권리협약은 어디에?

한 가정의 가장이 수용될 경우 남은 양육자와 아동은 당장 생계를 잇지 못하는 어려움에 처한다.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의 최윤주 사업팀장은 "수용자 자녀 중 경제적 빈곤을 호소하는 비율이 80~90%에 달한다. 아버지가 수용된 한 청소년은 먹을 것이 없어 길에 자란 풀까지 뜯어먹은 사례가 있다"며 "특히 경제사범의 경우 원래 부유했다가 가세가 기울며 가장이 수용된 경우가 많다. 돈이 많았던 전력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 팀장이 만난 어머니가 수감된 3남매는 피해자와 합의할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3남매가 살던 집은 물론 조부모의 집까지 팔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3남매 중 맏이와 둘째는 소아우울증 진단을 받는 등 부모의 부재에 이은 경제적 타격은 아동의 심리발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수용자 자녀 인권실태를 연구한 신연희 성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용의 첫 과정이라 할 수 있는 부모의 체포부터 보호권과 참여권이 침해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최근 구치소에 만난 한 임산부 수용자 A씨를 만났다. A씨는 자택에서 긴급체포로 구속됐다. 함께 있던 4살배기 첫째 아이는 경찰이 A씨의 남편에게 "아기 좀 데리고 나가 있어라"고 저지하던 모습 너머로 본 엄마의 모습이 마지막이 됐다. 신 교수는 "대부분 수용자 자녀는 정확한 설명없이 갑작스럽게 부모의 부재를 경험한다. 조사에 따르면 약 70%에 달하는 아동이 부모의 수용 사실을 알지 못한다"며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중요한 성장기에 아동은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이고,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어른들이 말하기 어려워 숨기다 보면 아동은 부정적인 정서를 해소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범죄자 이전에 부모·자식" 해외는 적극적 지원

유럽 평의회는 지난해 4월 수용자 자녀 권리보호 기본원칙과 가이드를 만들었다. 7개 조항에 56개 항목으로 아동인권을 최우선으로 둔 해당 정책은 47개 유럽회원국위원회에 전달됐다. 가이드라인에는 △주 보호자가 수감될 경우 적절한 양육자와 대안 마련 △부모 수감 시 자녀와 가까운 교정시설에 배정 △정부 기관 차원에서 수감자 가족 재정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접견 환경의 선례도 있다. 미국 코네티컷주 엔필드의 윌라드-시불스키 교정센터는 지난 8월 수용자 가족을 초대해 가족 무도회를 열었다. 아동으로서는 충격적일 수 있는 교도소 내 접견실이라는 폐쇄적인 환경이 아닌 넒은 강당에서 사복 차림의 부모와 만나 춤을 추며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A씨처럼 갑자기 부모와 떨어진 아동에게 수용사실을 효과적으로 알릴 가이드라인도 존재한다. 미국 오리건주는 2001년 '수용자 자녀 프로젝트'에 착수했는데 수용자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 '수감생활에 대해 어린이와 대화하는 법'이 그 일환이다.

해외 수용자 자녀 정책은 하나같이 부모와의 유대감을 골자로 삼는데, 수감된 부모와 자녀 사이의 유대감을 높이는 것은 아동인권뿐 아니라 범죄자의 재범방지에도 효과가 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안전망에서 가족은 중요한 존재고 가정에서 자녀는 가장 주요한 구성원이다. 재소자로서는 얼른 가정에 복귀해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며 "다만 아동 역시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에 수용된 부모와의 교감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아동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보고 아동이 원한다는 전제 하에 접견실 인테리어 등 중간다리를 놓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8월 미 코네티컷주 엔필드의 윌라드-시불스키 교정센터에서 가족 무도회가 열려 수감자 타이런 패터슨(가운데)가 자신의 두 딸과 춤추며 포옹하고 있다. /뉴시스

◆"범죄자 자녀를 왜 세금으로 지원?" 차가운 시선

한국 역시 수용자 자녀를 위한 다양한 정책이 각계에서 나오고 있다. 인권위는 5월 경찰청장과 대법원장, 법무부 장관에게 형사사법 단계에서 수용자 자녀의 인권과 권리가 보호되도록 권고했다. 아동과 함께 있는 피의자 현장 체포·구속 시 유의할 점을 수사규칙 등에 반영하고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라는 지침이 핵심이다. 또 피고인에게 양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녀가 있을 시 참작 사유로 삼으라는 내용도 담겼다.

수용자와 교도소를 관할하는 법무부 역시 괄목할 만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철창을 사이에 둔 일반적인 접견실이 아닌 따뜻한 색감의 벽지에 인형으로 장식한 가족접견실을 2017년부터 각 교도소에 구축 중이다. 자녀를 만날 수용자는 상의를 사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 지난 8월에는 자녀를 둔 여성 수용자가 동화책을 녹음해 미취학 아동에게 전달하는 '엄마의 목소리' 프로그램을 도입,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수용자 자녀에게 "범죄자 자녀를 우리 돈으로 왜 지원해야 하느냐"는 대중의 시선이다. 인권위 권고를 포함해 법무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정책 역시 늘 따가운 시선에 시달린다.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단체들은 다른 인권단체와 달리 후원 홍보도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세상 모든 아동은 존엄한 존재라는 범 세계적 가치에 주목한다. 신연희 교수는 "한국 사회는 가족주의가 강한데 법무부도 이를 고려해 수용자 가족을 지원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반면 대중은 가족주의로 수용자 자녀에게 낙인을 찍고 외면한다"며 "아동인권 보호는 범 세계적 가치로 수용자 자녀 보호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국민들 인식 역시 바뀌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용자 자녀를 법적으로 지원하는 강정은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가해자 아동을 위해 특별한 지원을 하자는 게 아니다. 어떤 아동도 부모의 상황과 관계없이 아동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아동으로서의 권리를 사회가 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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