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34회 공판 임성근 판사 출석…대부분 증언거부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가토 다쓰야는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었다. 그는 2014년 8월 조선일보를 인용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침몰 7시간 행적 의혹이 담긴 칼럼을 썼다. 대가는 컸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고 출국금지까지 당했다.
2015년 12월 1심 재판부는 "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지만, 공익적 목적을 고려하면 언론 자유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도 항소를 포기했다.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박근혜 정권과 500일 투쟁'이라는 책을 써서 상을 타고 아베 신조 총리의 격려도 받았다.
다만 가토 다쓰야도 자신의 판결문에 여러 사람의 흔적이 묻은 건 몰랐을 것이다.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로 이 사건 1심 판결문에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이 '가짜뉴스'였고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문구를 넣도록 하는 등 개입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은 법원장을 보좌하는 것 외에도 사건 배당, 법관 평정을 주관하는 요직 법관이다. 수석부장의 말을 거스를 판사는 별로 없다.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고영한 전 대법관의 34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가토 사건 재판부에 증거 보고를 요청 한 적이 있습니까?"
"제 사건과 연관된 것이라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판결문 수정이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의 임무입니까?"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그는 이날 가토 다쓰야 사건에 대한 신문은 대부분 증언거부했다. 자신이 재판과 연관된 내용이라는 이유다. 이는 법정에 출석한 증인의 권리이기도 하다.
임성근 부장판사가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유는 고영한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관계 때문이다. 그는 2016년 고영한 전 대법관(당시 법원행정처장)의 지시로 '정운호 사건 향후 대책문건'도 작성해 보고했다. '정운호 게이트'는 상습도박으로 실형을 받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판사·검사 출신 변호사의 전관예우 관행을 이용해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다.
그런데 임 부장판사는 이미 법원행정처를 떠나 서울고법으로 옮긴 뒤였는데 고 전 대법관이 일부러 전화를 걸어 요청한 것이다. 검찰 쪽은 "혹시 법원행정처 자료나 내부 보고서를 받아 참고해 쓴 것 아니냐"고 캐물었으나 부인했다. 대책 문건은 이 사건의 본질을 '변호사 윤리 문제'로 결론냈는데, 고 전 대법관이 법원의 책임을 피해가기 위해 시킨 것 아니냐고 추궁하기도 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도 도마에 올랐다. 원세훈 전 원장은 1심에서는 무죄였으나 2015년 2심에서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당시 1심 판사였던 이범균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임 부장판사에게 '원세훈 항소심 판결정리'라는 파일이 첨부된 이메일을 보냈다. 1심과 항소심의 쟁점을 비교 분석한 보고서였다. 검찰은 이 역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차장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본다. 하지만 임 부장판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사건은 결국 양승태 대법원이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검찰은 임종헌 차장의 요청으로 영장실질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 영장 발부·기각 정보를 얻어냈는지도 신문했다. 그랬다면 법원 예규 위반이 된다. 그는 "법원장, 행정처장의 국회 답변이나 언론보도 해명 등을 위해 영장 정보를 받은 적은 있으나 결과가 나오기 전 받은 적은 없다"는 취지로 부인했다.
역시 임종헌 전 차장의 지시로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평결을 미리 입수해 보고한 흔적도 있다. 임 부장판사는 2015년 박삼봉 사법연수원장 사망 사건 배심원 평결 결과를 미리 알고 임 전 처장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보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뒤늦게 기억을 되살렸다며 당시 사건을 맡은 재판장이 자발적으로 알려줬다고 번복했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가장 자주 이름이 언급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실장, 한승 전 대법원 사법정책실장,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등 핵심 증인 신문을 마친 뒤 가장 마지막에 증인석에 앉을 전망이다. 검찰은 고영한 전 대법관 증인 신청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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