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재판부 "앙골라 박해사실 인정"…변호인 "인권 존중한 판결"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하나님께 영광을."
콩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앙골라에서 고문과 성폭행 등 경찰의 박해에 시달리다 한국으로 도망친 루렌도 가족이 난민 심사를 받을 기회에 한걸음 다가섰다. 27일 법원이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장의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소식을 들은 루렌도는 "하나님께 영광을"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은 루렌도 부부의 막내딸 그라스의 생일이기도 했다.
서울고등법원 1-1행정부(고의영 부장판사)는 27일 오후 2시 루렌도 가족이 난민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린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의 항소심에서 원심을 뒤집고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입국 불허 결정이 난 후에 난민 인정 신청을 했더라도 진정한 신청 의사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관광비자를 받고 주택을 처분해서 출국한 점 역시 박해를 피하려는 급박한 상황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1심에서 부정했던 앙골라 현지 상황도 난민으로 신청할 만한 핍박과 차별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앙골라에서 내전을 겪으며 콩고 출신에게 차별과 핍박이 있었다고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앞서 법무부 측은 1심에서 루렌도 가족이 앙골라에 거주할 당시 살았던 집 임대인이 "루렌도 가족은 수개월 전부터 계획적으로 한국행을 준비했다"고 말한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변호인단이 항소심을 앞두고 직접 집주인을 인터뷰한 결과 한국대사와 만난 사실은 있지만 루렌도 가족이 언제 열쇠를 반납하고 방을 뺐다는 정도만 전했다. 집주인과 임차인이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도 달라 특별히 교류한 적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원고가 난민 신청 의사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심사에 회부하지 않은 처분은 유지되기 어렵다"며 "원고는 일단 심사에 회부돼 조사를 받은 후 난민 인정 여부가 최종 결정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낭독하는 판결문이 루렌도 가족의 승소 취지로 흘러가자 난민 입국을 반대하는 일부 방청객은 "말도 안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선고가 끝난 후 루렌도 가족을 지원하는 변호인단을 비롯해 난민인권단체 '난민과함께공동행동' 활동가들이 법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자 옆에서 "우리나라 국경이 위협받고 있다"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루렌도 가족 측 변호를 맡은 이상현·최초록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와 '난민과함께공동행동' 활동가 등 약 10명은 서울고등법원 정문 앞에서 재판부의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상현 변호사는 "이번 결정에 대해 재판부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찬반이 팽배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개인의 인권은 존중돼야 한다는 생각에 근거한 판결"이라며 "법리적 판단이 필요하겠지만 법무부 역시 기계적으로 상고하지 말고 결과를 승복하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난민과함께공동행동의 홍주민 목사는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체류 중인 루렌도 은쿠카(47)와 주고 받은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홍 목사가 선고 직후 승소 판결을 알리자 루렌도는 "아멘, 하나님께 영광을"이라고 답했다. 홍 목사는 "루렌도 역시 기독교인이다. 공항에서 만나 함께 기도하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며 "곧 (공항에서) 나올 루렌도를 위해서라도 우리 한국땅에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난민을 우리 시민사회가 포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루렌도와 아내 보베트 은쿠카(40)는 레마(9·쌍둥이), 로드(8·쌍둥이), 실로(8), 그라스(6) 등 10세 미만의 자녀 4명과 지난해 12월 한국에 도착한 후 200일 넘게 공항 라운지에서 체류 중이다. 루렌도 가족은 앙골라 정부의 콩고 이주민 박해에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난민인정 심사를 요청했으나 출입국 당국은 루렌도 가족이 오로지 경제적 이유로 난민 인정을 받으려 한다고 판단해 불회부 결정을 내렸다.
루렌도 가족은 출입국 당국의 결정을 물러 달라는 인천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안타까운 사정은 맞지만 불회부 결정이 위법하지 않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이에 불복해 지난 7월부터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재판 절차가 진행됐다.
루렌도 가족 측 변호인단은 항소심 재판 절차를 밟으며 난민법 중 난민심사에 관한 법률 제6조 5항이 해당 법률 시행령에 포괄위임한다며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에서 항소를 기각할 경우 헌법소원까지 고려 중이라고 밝혔지만, 27일 이상현 변호사가 취재진과 만나 전한 바에 따르면 승소함에 따라 의뢰인과 상의 후 청구 여부를 정할 전망이다.
루렌도 가족은 법무부에서 2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고, 출입국 당국에서도 2심 재판부의 결정을 따를 경우 난민인정 심사를 받게 된다. 최초록 변호사는 "아직 회부 결정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2심 판결로 미뤄볼 때 난민인정 심사로 회부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루렌도 가족이 난민인정 심사에 회부되면 법무부는 7일 이내 출입국항에 있는 일정한 장소에 머물도록 조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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