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하얀거탑①] 나이프 날라오는 수술실…전공의는 운다

고 신형록 전공의 사망 후 전공의들은 자발적으로 그를 추모하는 배지를 만들어 착용 중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제공

한 유명 대학병원 산부인과 전공의들이 교수를 비판하는 집단 탄원서를 낸 일이 있다. 이 교수는 평소 휴대폰으로 전공의를 내리치는가 하면, 수술실에서는 수술도구로 구타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설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싶지만 불과 몇달 전에 발생한 사건이다. 아직도 이같은 야만적 행태가 국내 최상위권 성적 학생들이 모인다는 의대에서 버젓이 벌어진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전공의들의 일상은 참담함 그 자체다. <더팩트>는 현장 전공의들의 이야기를 듣고, 왜 그들은 총파업까지 계획하게 됐는지 2회에 걸쳐 알아본다. 과연 지금 이 시간 응급실에선, 수술실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편집자주>

'산업재해' 신형록 씨 사망 후에도 열악한 환경 그대로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지난 달 5일 병원 내 당직실에서 사망한 전공의 고 신형록(당시 31세) 씨의 죽음이 업무상 질병에 따른 것으로 인정됐다. 근로복지공단은 고 신씨의 유족이 제출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청구에 대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고 신씨의 사망 전 1주일간 업무시간은 113시간으로 하루에 약 16시간을 일한 셈이다. 사망일로부터 12주 동안에는 주 평균 98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검상 사인은 "해부학적으로 불명이나 급성심장사로 추정"이었다.

고 신씨의 죽음은 같은 전공의 사이에서 큰 슬픔인 한편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적셨다. 2016년 제정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하 '전공의법')은 안전한 수련환경을 위해 많은 조항을 명시했지만 한 젊은 의사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법은 제정 이유로 "전공의의 권리를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환자안전을 제고하고 우수한 의료 인력 양성에 이바지하기 위해"를 들었지만 고 신씨의 권리는 보호받지 못했다. 누구보다 환자를 사랑한 우수한 의료 인력이었던 고 신씨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서 꿈을 이루지 못 했다. 고 신씨가 근무한 가천대학교 길병원은 고인의 죽음으로 전공의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과태료 500만 원을 물었을 뿐이다. <더팩트>는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일선의 전공의 4명을 만나봤다. 1대 1로 배정되는 지도전문의의 갑질과 밀려드는 환자 사이에서 힘겹게 의사로서의 삶을 쥐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명당 환자 50~60명…살인적 업무의 '빅5' 전공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A씨는 다시 새내기가 됐다. 뒤늦은 나이지만 고교시절 꿨던 의사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의대에 다시 입학한 것이다. 타전공 학부생 때 어린이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한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서울 신림동 한 커피숍에서 만난 A씨는 "천성이 누군가를 보살피고 가르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별명도 '설명충'(지나치게 설명하려 드는 사람)이다"라고 멋쩍게 웃었다. 다른 이보다 돌고 돌아 의업에 뛰어든 만큼 의사라는 직함은 그에게 더 소중했지만, 의대를 졸업하고 들어간 수련병원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A씨는 이른바 서울권 '빅5' 병원에서 전공의 생활을 했다.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꿈의 병원인 곳에 입사한 A씨는 전공의 수련과정 중 첫 단계인 인턴 시절 하루 50~60명의 환자를 봤다. 막 현장에 뛰어든 A씨가 한 일은 심전도 찍기, 항암주사 놓기, 동맥혈 주사술기, 남성 환자 소변줄 꼽기, 수술실 마취 등이었다.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엄연한 1명의 의사였지만 병원에서 A씨와 같은 인턴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A씨는 "초년생이라고 많이 챙겨주는 분도 계셨지만 '잡일하는 의사'라고 생각해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되뇌였다. A씨에 따르면 '굴리고 돌리는' 업무에 투입된 인턴들은 제대로 된 휴식시간도 없었다. 24시간 당직 근무도 격일 단위로 해야했다. 인턴들은 이를 두고 '퐁당퐁당'이라고 부른다. '퐁당퐁당'도 아닌 며칠씩 연달아 당직을 서는 경우도 허다했다.

뒤늦게 시작한 길인 만큼 A씨는 타고난 체력과 긍정적인 성격으로 1년을 견뎠다. 1년의 인턴 과정이 끝나면 전문과목을 정해 수련하는 레지던트가 되는데, 인턴 시절 1개월 단위로 과를 돌며 받은 점수는 선발 요소 중 하나다. A씨가 수련했던 병원처럼 상급종합병원에서 원하는 과를 가는 것은 더 치열하다. 운동을 좋아하고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던 A씨는 하필 '인기과'로 불리는 정형외과를 지원했지만 문은 좁았다. '퐁당퐁당' 업무도 군말없이 견뎠던 A씨는 결국 병원을 나왔다. 군입대를 앞둔 전공의들은 마음이 급해 어부지리로 적성에 맞지 않는 과를 선택하거나 일반의로 개원하기도 한다.

비록 원하는 과에서 수련과정을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A씨는 요양병원 등에서 대진의(피치못할 사유로 의료진 자리에 공백이 생겼을 때 합법적으로 대신 진료하는 의사)로 근무한다. 시간날 때마다 그가 좋아하던 운동을 마음껏 하는게 A씨의 일상이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기 그지없는 빅5 병원에서 일할 때는 맛보지 못했던 인간다운 삶이다. 그럼에도 A씨는 어엿한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 다시 치열한 삶으로 돌아가려 한다. A씨는 "나라는 의사가 뭘 가장 잘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는데, 환자가 원하는 것 이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며 "적어도 내 영역에서는 어디서도 대체되지 않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살인적인 업무시간과 열악한 업무환경에도 힘든 소리 한마디 못하는 전공의 모두가 이런 이유로 지금도 '버티고' 있다.

◆예과부터 시작되는 '평판 관리'…폐쇄적 지방 수련병원

서울 '빅5' 병원 만의 문제일까. B씨는 지방 소재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 중이다. B씨에 따르면 의사 역시 출신대학의 서열에서 자유롭지 않다. B씨는 "일부러 차별을 두는지는 모르지만 서울 및 수도권 수련병원, 그 중에서도 인기 과목에는 지방 출신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1년에 몇명 안되는 수준"이라고 했다. 지방 수련병원에 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대부분 학교 선후배거나, 같은 지역 출신이라 폐쇄적인 '그들만의 사회'가 형성된다. 이에 따라 아직 의사가 아닌 학부생 시절부터 '채점'이 시작된다. 학교생활 내내 선배나 교수의 눈밖에 나지 않았다면 기회가 되지만, 사소한 실수로 낙인이 찍히면 전공의 생활 내내 꼬리표가 붙는다. B씨는 "우리 병원도 절대 다수가 같은 대학 동문인데 학생 때부터 평판이 생긴다"며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 인성은 고려돼야 하지만 그 기준이 애매하다. '어른한테 공손하냐'부터 '술 잘 마시고 분위기 잘 띄우냐'까지 본다"고 했다.

이렇다보니 상급자에게 아무리 부당한 행위를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다. B씨는 현재 근무하는 병원에서 전공의 대표로서 많은 동료들의 애환을 듣지만 해줄 수 있는게 없다. B씨와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전공의는 수술실에서 상급자에게 도구를 잘못 건넸다는 이유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들으며 쫓겨났다. 지도전문의가 출근하기 전 진료실 책상에 놓인 차트를 정리하는 업무를 맡은 한 전공의는 차트 중 일부가 누락되는 실수를 했다. 잔뜩 얼어붙은 전공의 옆으로 무언가 스쳐갔다. 화가 난 지도전문의가 자신의 손에 잡히는대로 물건을 집어던진 것이다.

그래도 이들은 나설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학부생 시절부터 이어진 평판이 평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신고 역시 쉽지 않다. 아무리 익명을 지킨다 해도 지도전문의 1명당 전공의 1명이 배정되는 시스템에서 "어느 과에 몇 년차 전공의가 무슨 일을 당했다"는 두루무술한 사실만으로도 신원이 특정된다. 전공의법 제12조, 13조는 지도전문의 지정을 취소하거나 전공의가 수련병원을 옮기는 이동수련 등을 명시하지만 일선에서는 유명무실하다. B씨는 "일선에서 이동수련은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사례를 눈 크게 뜨고 찾아봐야할 정도로 드물다"며 "수술실에서 폭언을 듣거나 진료실에서 폭행을 당해도 방법이 없다. 그만두는 사람이 (이동수련보다) 더 많다"고 했다.

◆전공의·실무기회 부족 '이중고'

지방 전공의는 인력과 인프라 부족이라는 또 다른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C씨는 지방 소재 수련병원 신경외과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다. 뇌, 척수, 말초신경 등 신경계에 생기는 다양한 질환의 수술적 치료를 하는 신경외과의 하루는 정신없이 굴러간다. C씨는 주 80시간 근무를 보장한 전공의법이 생기기 전 2주에 한 번 꼴로 집에 갈 수 있었다. 5분 거리에 집이 있었지만 신경외과 전공의에게 한없이 먼 거리였다. 병원에서 쪽잠을 자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최전선 업무에 투입됐다. C씨는 "개인적인 공간, 나만의 공간이 전혀 없었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전공의법이 제정된 지금도 생사를 다투는 병원 현장에서 근무시간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C씨는 <더팩트>와 인터뷰가 있던 날 바로 전날 밤에도 갑자기 잡힌 응급수술에 병원을 떠날 수 없었다. 수술은 오후 6시경에 시작해 밤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오후 6시는 동료 전공의에게 환자 인계를 할 시간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도시라고 상황이 크게 나은 건 아니지만, 지방은 의료 인력이 더 부족해 대체인력은 꿈도 꿀 수 없다. C씨는 물론 그의 환자 인계를 기다리던 다른 전공의들도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10시까지 병원에 남았다. 병원에서 정한 당직 근무 외에는 하룻밤을 꼬박 새도 수당은 없다. 자발적으로 남아 일한 걸로 보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환자를 두고 떠날 수 없는 의사로서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전공의법마저 '자발적으로' 어기게 된다.

바쁜 와중에도 C씨는 미래의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더 배우고 싶은 욕구'에 목마르다. 서울로 환자가 쏠리는 현상은 서울권 전공의에게 업무과중이라는 고난을 안겼지만, 반대로 지방 전공의에게는 실무 부족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신경외과 전공의로서 C씨가 뽑는 일례는 뇌종양 환자를 접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방 의사들 역시 모두 전문 인력이지만 환자들은 예약을 잡는데만 몇 달이 걸려도 서울에서 진료받길 원해서다. C씨는 "우리 병원은 뇌종양 수술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는데 서울 모 병원은 하루에 3~4명, 한 달에 수십 명까지 한다. 수련하는 전공의로서는 실제 상황을 많이 접해 체화(體化)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환자 수 자체가 적다 보니 수술실에 들어가는 고연차 전공의부터 병동을 관리하는 저연차 전공의까지 책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C씨와 같은 지방 전공의들의 고충은 결국 지역의료 인프라 부족이라는 한국 의료환경의 숙환과 직결된다. C씨는 "환자들이 서울 최고의 병원이 가진 의료시스템을 경험하고 싶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아픈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서든 신속하고 안전하게 치료받아야 한다"며 "당장 아프지 않은 사람은 '왜 병원에 돈을 주냐'고 생각하겠지만 지역의료 인프라는 결국 예산 충당이라는 답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여성 전공의들은 응급실에서 환자들에게 성희롱을 당하기도 한다./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상급자 갑질…응급실서 여성 전공의는 '아가씨'

여성 전공의에게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성차별'이라는 족쇄가 더해진다. 여성 전공의 D씨의 어린 시절 꿈은 "내가 속한 사회에 긍정적 보탬이 되는 사람"이었다. 이과 체질이었던 D씨는 과학자를 꿈꿨지만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의 극단적 선택은 D씨를 의사의 길로 이끌었다. '당장 내 주변의 사람도 못 구하는데 과학 발전이 뭔 소용이랴'는 생각에서다. 서울 소재 종합병원 내과 레지던트로 근무 중인 D씨는 취재진이 찾아간 일요일 오전에도 24시간 당직근무 중 짬을 내서 나왔다. 애초 인터뷰 일정을 잡을 때 그나마 한가한 시간에 맞추겠다고 했지만 D씨는 "환자들 상태는 예측불가"라며 웃어 보였다.

D씨가 근무하는 내과는 전공의들 사이에서 '사양 직업'으로 불린다. 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 등 생사를 다루는 과목은 한때 의사를 꿈꾸는 모든 이의 로망이었지만 이제는 기피 과목으로 전락했다. 혹자는 "편하게 돈 잘 벌려고 피부미용으로 빠진다"고 손가락질하지만 정작 내과에 남은 D씨는 "사명감만으로 일하기에는 의사를 고통 속에 몰아넣고 쥐어짜는 구조"라며 이해한다. 생명 최전선에 근무하는 기피 과목 의사들은 살인적인 업무량과 낮은 수가, 의료사고가 나면 대부분 의사에게 책임을 지우는 부담 속에서 잠도 이루지 못한 채 일한다.

주 80시간 근무제가 도입됐지만 D씨와 같은 일선 전공의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업무량과 환자 수는 그대로인데 근무시간만 제한한 법 때문에 의사가 의료법을 어기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연출된다. 전공의법 시행 후 국내 수련병원 대다수는 '아이디 블록제'를 도입했다. 근무시간이 초과한 의사의 EMR(전자의무기록)에 접속을 차단하는 제도다. 환자는 밀려오고 EMR 로그인이 안돼 처방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많은 전공의들은 '대리처방'이라는 불법을 택한다. 간호사가 전공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포스트잇으로 붙여두거나 전공의끼리 동료 아이디로 접속해 처방하기도 한다. D씨는 "언제는 저는 모르는 환자에게 제 이름으로 처방이 내려졌다. 만약 처방이 잘못돼 환자가 피해를 입으면 아이디상 처방한 제 책임인지, 제 아이디를 급히 가져다 쓴 동료 잘못인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며 "병원은 전공의법을 준수하려고 아이디 블록제를 들여오면 그만이지만, 일선의 전공의들은 매순간 두려움에 떨며 남의 아이디를 가져다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급자의 '갑질'도 남의 일이 아니다. 특히 폐쇄된 수술실에서의 상황은 심각하다. D씨는 "한 동료는 수술 중 상급자가 던진 나이프에 손등이 찍힌 적도 있다. 어떤 교수는 수술실에 들어갈 때 일부러 장갑을 두 개 끼고 들어가서 전공의를 폭행한 후 그 장갑을 벗고 수술을 시작한다"고 전했다. D씨와 같은 여성 전공의에게 또 다른 공포의 장소는 응급실이다. 전공의들은 각 과에서 일하다 응급실에 자기 분야 환자가 들어오면 지원하는 형식으로 근무한다. 그렇게 응급실에 모인 여성 전공의들은 남성 전공의보다 환자의 희롱과 위협을 배로 경험한다. D씨는 "이제 '아가씨'라고 불리는 건 예삿일도 아니다. 제 지인은 환자가 엉덩이를 만지는 등 성추행도 경험했다"며 "여성 전공의란 이유로 더 쉽게 보고 때리는 시늉을 하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욕설을 듣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와 고 신형록 전공의 유족이 지난 7월 30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열린 인천노동복지합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있다./대한전공의협의회 제공

주 52시간은 그림의 떡…'제2의 신형록' 위험은 사라졌을까

'아이들, 독서, 봉사'가 고 신형록 전공의의 짧았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다. 고 신씨는 생전 아이들을 좋아해 소아청소년과를 택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할 정도로 바쁜 와중에도 어린 시절부터 각별했던 독서와 봉사에 대한 사랑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골자로 시행 중인 전공의법은 한국 의료계를 짊어질 젊은 의사, 그리고 한국 사회를 살아가던 순수한 청년을 지켜주지 못했다.

2016년 최초 시행, 주 80시간·연속근무 36시간이라는 구체적 수련시간을 법제화해 2017년 12월부터 시행된 전공의법은 솜방망이 처벌과 눈 가리고 아웅하는 병원 시스템으로 유명무실한 처지에 놓였다. 상급자에게는 절대적으로 '을'일 수밖에 없는 병원내 위치, 내 몸이 죽어나도 환자 곁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 속에 전공의들은 무분별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현행 전공의법은 제7조 수련시간 외에도 ▲제8조 임산부의 보호 ▲제11조의2 폭행등 예방 및 대응지침 ▲이동수련 조치 등 조항은 다양하지만 일선에서는 그 어느 것도 확언하기 힘들다. <더팩트>가 만난 4명의 전공의 모두 "법은 있지만 현장에서는…"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현 전공의 수련환경의 현실이다.

"모든 환자의 내면에는 그들만의 의사가 있다"(Every patient carries her or his own doctor inside.)

독일계 프랑스 의사로 한국에서도 세계 위인전에 꼭 빠지지 않은 알버트 슈바이처가 한 말이다. 세상 모든 이의 마음에는 스스로를 치유할 의사가 있고 제 아무리 매서운 질병이라도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의미다. 정작 의술을 배워 국가에게 의사 자격을 부여받은 전공의 내면에는 스스로를 보듬어줄 한 명의 의사를 만들 여유가 없다. 법전은 사람이 쓰는 것이고 법률은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결론이다. 아무리 훌륭한 취지의 법률이 만들어진들 사회가 이를 지킬 의지가 없으면 해독되지 않은 암호에 불과하다.

이제껏 전공의 스스로는 "5년만 버티면 전문의가 되는데…"라는 망설임에, 대중은 전문직이라는 밝은 면만 보며 막연히 가졌던 거리감에 외면했던 전공의의 인권과 열악한 수련환경을 직시할 시점이다. 법망의 부재라는 문제제기에는 늘 언제 될지도 모를 '법안 개정', '처벌 강화'라는 단어가 따라붙지만 하얀 가운 속 감춰진 전공의의 숙환을 들여다 보려면 의사를 사람으로 보는 시선부터 먼저다.

<더팩트>가 취재한 전공의 중 한 명이었던 내과 레지던트 D씨의 말이다.

"사실 저는 돈 문제는 얘기하고 싶지 않고요. 그냥 정부와 국민이 의사의 삶을 한 번 들여다보셨으면 좋겠어요. 다들 주 52시간을 외치지만, 평소 주 100시간 넘게 일하던 우리는 80시간 근무 상한선도 믿지 못해요. 저희들은 개인적인 행복, 가족들, 친구들과 소중한 시간 다 포기한 사람들이에요. 막연히 '사명감'이나 ‘개인의 선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희생이 너무 커요. 우리는 로봇이 아니에요. 의사들의 건강권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 피해는 환자들이 받게 돼요. 선진국 의사 복지나 처우를 참고해서 한국 의료계 현실을 살펴봐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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