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에 치명상 주고 검찰개혁 무산…"판단은 아직 일러"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2003년 가을 송광수 검찰총장은 청와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놓고 할 말이 있으니 청와대에 잠깐 들어오라고 했다. 송 총장은 거절했다. "제가 지금 뵈면 국민이 수사 공정성을 믿어주겠느냐"는 이유였다. 노 대통령은 "알겠습니다"라고 전화를 끊었다.
송광수 검찰총장 재임 시절 일어난 유명한 일화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호출을 거부했다. 이전 정권까지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송 총장은 검찰개혁을 추진하던 참여정부가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려 하자 "내 목을 먼처 치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그 원동력은 노 대통령이 수사 독립성을 보장한 불법 대선자금 수사였다. 검찰은 당시 여권에서는 안희정 씨,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 대통령의 측근들을 모두 감옥에 보냈다. 야당에게는 대기업에서 800억원 대의 불법 대선자금을 모은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안겼다. 송 총장과 안대희 당시 중수부장은 팬클럽을 거느린 '스타검사'가 됐다. 검찰개혁이라는 말은 쑥 들어갔다. 잘 하는데 왜 개혁하느냐는 말이었다. 검사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역대 총장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정부-검찰 대치' 아주 닮은 2003년과 2019년
2003년과 2019년은 '데자뷔'라고 할 만큼 비슷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역대 가장 강력하게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와 가장 독립적인 검찰권을 확보한 검찰 사이 대치가 강화되는 모양새다. 특히 검찰이 인사청문회 전부터 현 정부의 아이콘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가족 의혹에 전례없는 고강도 수사를 벌이면서 극적인 효과까지 낳고 있다.
여권 일부에서는 윤석열 총장이 등장하자 '제2의 송광수'가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반 진담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참여정부 당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무소속 의원은 책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검찰개혁에 가장 저항하는 중심인물(송광수)을 검찰총장에 앉혔다"고 참여정부 검찰개혁 실패의 원인을 꼽았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도 "송 총장은 검찰 독립의지는 강한데 검찰이 민주적 견제를 받아야하고 인권이 옹호돼야 한다는 인식은 없었다"고 꼬집었다. 개혁의 양축인 공수처 설치와 중수부 폐지를 강력하게 반대한 송광수 총장이 대선자금 수사로 국민적 지지를 얻으면서 '실기'했다는 것이다. 송 총장은 자신보다 사법연수원 기수 10기 밑인 강금실 장관과도 사사건건 대립했다. 결국 강 장관은 1년여 만에 물러났고 송 총장은 2년 임기를 완주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결국 윤석열 총장의 칼이 송광수 검찰처럼 현 정권을 향하면 검찰개혁은 물 건너간다는 노파심이다.
그러나 송광수 총장과 윤석열 총장은 차이점도 많다. 송 총장은 법무부에서 오랜 생활을 하며 '법무부 검찰보직의 꽃'으로 불리는 검찰국장까지 지낸 '기획통'으로 분류된다. 검찰 조직 구조에는 밝은 반면 큰 사건 수사 경험은 많지 않았다. 윤 총장은 수사 잘 하기로 유명한 뼛속까지 '특수통'이다. 특히 거대권력을 심판하는 권력형 비리 사건을 여럿 처리해냈다. 그가 구속시킨 인물만 봐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쟁쟁하다. 변호사 개업 1년과 수사 외압 폭로 후 3년간 지방 근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사 현장에 있었다. 검찰 출신인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를 "주윤발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약자 친화, 정의 추구형이라는 말로 들린다.
송 총장은 참여정부 인사들과 전혀 인연이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검사와의 대화'에서 "지금 검찰 수뇌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리고 김각영 총장의 사표를 받았다. 후임으로 예상밖에 송 총장을 기용했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특별한 정치적 성향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청문회 때부터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방안을 대놓고 반대했다. 정부에 말릴 사람도 없었다.
윤 총장은 문재인정부와 인연이 없지않다. 지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2016년 총선에 출마를 권유하는 등 종종 만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윤 총장의 분신인 윤대진 수원지검장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대학 과 1년 선후배 관계로 잘 아는 사이로 알려졌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민주당 소속인 박성수 송파구청장과는 연수원 23기 동기이고 조응천 의원과도 막역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에는 형사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씨에게 5.18민주화운동 학살 혐의로 사형을 구형했다가 도피생활을 한 적도 있다.
◆송광수와 윤석열 차이는 개혁 친화성?
검찰개혁에도 상대적으로 유연성을 보인다. 문무일 전 총장보다도 한결 누그러진 입장이다. 비록 장기적이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검찰 직접수사권 완전 폐지를 공식석상에서 긍정했던 총장은 많지않다. 공수처에도 별 이견을 표명한 바는 없다.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에는 미련이 비교적 강하지만 과거와 같은 수직적 구조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국회의 입법과정에 따르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이 때문에 윤석열 총장이 '제2의 송광수'가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이 인사청문회가 걸려있는 장관 후보자 가족의 의혹을 수사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중립성을 해친다"면서도 "윤석열 총장이 송광수 총장처럼 검찰개혁에 저항할지는, 그럴 의도에서 강제 수사에 나섰는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윤 총장은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을 좌절시킨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 당시 평검사로 수사에 참여했다. 대통령의 오른팔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등을 구속시키는 등 '살아있는 권력'에 타격을 줬다. 당시 뚫어놓은 수사의 맥이 사실상 이명박 정부 초기 노무현 대통령 등 참여정부 주요인사들에 대한 대대적 수사의 뿌리가 됐다. 우연치고는 절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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