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판사로 집유 판결…대법 선고 불똥 삼바 ·롯데까지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9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세 사람의 2심 재판 일부를 다시 심리하라고 선고했다. 특히 삼성이 최 씨의 딸 정유라에게 지원한 말 세마리 값을 뇌물이라고 판단하고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던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날 대법원 결정은 사실상 이 부회장의 2심 판단의 일부가 잘못됐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의 항소심을 심리한 재판부의 주심판사인 정형식 서울회생법원장(사법연수원 17기)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당시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 부장판사였던 정 법원장은 2018년 2월 14일 서울회생법원의 두 번째 법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부회장 선고 후 10일 만이다.
정 법원장이 주심판사로 있었던 서울고법 형사13부는 2018년 2월 5일 이 부회장에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과 달리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부분을 무죄로 봤다. 당시 "기업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요구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또 역시 1심이 인정한 삼성의 포괄적 승계작업에 대한 청탁 등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대법원 판단과 반대다.
마필 소유권이 최 씨에게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말 세마리 등을 뇌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선고 직후에도 논란이 됐다. 6개월 여 뒤 대법이 다시 말 세마리 등을 뇌물로 인정하자, 당시 재판부만 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선고를 내렸는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많다.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를 제외한 이 부회장의 1심 법원,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1·2심 재판부 모두 같은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정 법원장은 서울회생법원에 취임하면서 "이 부회장 (항소심) 사건은 신중히 검토해 의견을 모은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법원은 양형문제가 아닌 법리를 다루는 재판인 만큼 법리가 맞다면 상고가 기각될 것이고, 잘못됐다면 파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연수원 17기인 정 법원장은 이 부회장 사건뿐 아니라 한명숙 국무총리 사건 등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큰 사건을 처리해 주목받았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이종사촌 매형이기도 한 정 법원장은 2013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던 한명숙 전 총리에게 2심에서 징역 2년, 추징금 8억8000여만원을 선고했다. 결국 대법원에서 2년형이 확정된 한 전 총리는 2015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이 땅의 사법정의는 죽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 법원장은 2013년에는 유신정권 때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은 조희연 서울교육감(당시 성공회대 교수)의 재심에서 34년 만에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이재용 형량 높아질까?...삼바 수사 새 국면
정형식 법원장의 이름이 오랜만에 회자될 만큼 이날 선고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단연 이재용 부회장이었다. 이 대법원이 이날 삼성에 경영권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 존재했다고 인정하면서 국정농단 사건의 파기 환송심 뿐 아니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검찰 수사가 새 국면을 맞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날 상고심 선고 직후 "국정농단의 핵심 사안에 대해 중대한 불법이 있었던 사실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된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은 앞으로 진행될 파기환송심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책임자들이 최종적으로 죄에 상응하는 형을 선고받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총장은 2016년에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수사팀장으로 파견돼 관련 수사를, 2017년부터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공소유지를 각각 지휘했다.
박영수 특별검사 역시 입장문을 통해 "대법원이 삼성 승계작업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인정하고 삼성이 최순실 측에 준 말 3필을 뇌물이라고 판단해 다행"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주권자인 국민들의 집합적인 요구에 따라 국가권력을 대상으로 수사하게 된 초유의 일이었다. 수사 착수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장애와 고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
이날 대법원이 삼성의 승계작업을 인정함에 따라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수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검찰은 삼바 분식회계가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위해 그룹 차원의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정부 시절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해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판단한 이날 대법원의 선고는 검찰 측에 유리한 증거가 된 셈이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앞서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두 차례 연속으로 기각하면서 해당 수사에 중대한 고비를 맞는듯 했으나, 이번 대법원 결정으로 검찰의 수사다 다시 탄력을 받게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삼성측은 일관되게 승계작업이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집유 풀려난 신동빈 롯데회장도 긴장
이번 대법원 선고의 불똥은 삼바 수사 뿐 아니라 롯데까지 튈 수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 부회장과 같은 뇌물 공여 혐의를 받는다.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에게 면세점 특허권을 청탁한 대가로 케이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뇌물로 줬다는 혐의로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날 대법원이 이 부회장의 부정청탁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하는 등 '정경유착'에 단호한 결론을 내리면서 신 회장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됐다.
특히 대법은 박 전 대통령이 신 회장에게 부정청탁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것이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특가법상 뇌물혐의와 직권남용, 강요혐의를 분리해 다시 판단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강요 혐의에 대한 파기환송심의 심리여부가 신 회장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신 회장 역시 1심에서 징역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지만,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혜 4년으로 풀려났다. 2심은 묵시적 청탁은 인정하면서도 강요에 의한 수동적 공여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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