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걸상 아닌 피고석 앉은 '숙명여고 쌍둥이'

숙명여고 문제유출 사건 수사결과 발표된 지난 해 11월 서울 강남구 숙명여고 앞에서 전국학부모단체연합 회원들이 숙명여고 교장, 교사의 성적조작 죄를 인정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변호인 "미성년자 퇴학까지 당했는데…공소사실 간접사실뿐"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한창 공부할 나이에 이게 뭐하는 짓인지…"

'숙명여고 답안지 유출 사건'의 쌍둥이 자매의 첫 재판이 있는 법원 5층 복도를 지나던 행인은 이렇게 말했다. 재판부와 사건번호, 피고인과 그 죄명을 알리는 법정 앞 게시판에 같은 성씨를 가진 자매의 이름이 일부 가려진 채 올라와 있었다. 쌍둥이의 아버지 현모 씨는 5월 실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아버지의 1심 재판이 진행될 동안 소년보호 사건으로 송치됐던 쌍둥이 역시 지난 달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김상규 판사)는 23일 오전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준비기일과 달리 피고인 출석의무가 있는 정식 재판이었지만, 아직 만 18세로 미성년자인 만큼 직접 출석해 재판에 임할지 이목이 쏠렸다. 한국 형사재판은 공판기일에서의 피고인 직접 출석을 의무로 하지만, 증인이 피고인 앞에서 증언을 거부하는 때나 상고심의 공판기일 등 예외적인 경우에는 피고인없이 재판이 진행될 수 있다. 또 법에 명시된 상황이 아니라도 재판장이 재판 진행을 위해 합법적이라고 판단할 시 피고인없이 재판이 열릴 수 있다.

그러나 쌍둥이 자매는 이날 본인들의 첫 재판에 직접 출석했다. 재판이 열리는 법정 앞을 지나던 행인들은 "한창 공부할 나이의 아이들을 결국 피고석에 세웠다"며 안타까워 했다. 당사자인 자매는 재판부의 질문에 너무 작은 목소리로 답해 주의를 받기도 했지만, 비교적 무덤덤한 모습을 보였다. 자매는 만 18세로 복도 행인의 말대로 '한창 학교에서 공부할 학생'이었지만 지난 해 퇴학 당했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 두 사람 모두 "없다"고 답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검찰의 공소요지 설명과 이에 대한 피고인 측의 변론이 진행됐다. 검찰은 같은 학교 교무부장으로 재직하던 아버지가 유출한 답안을 보고 교내 성적평가 업무를 방해하는데 공모했다고 간주, 자매에게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은 같은 학교에서 교무부장으로 재직하며 교내 시험 출제와 성적평가를 총괄한 아버지에게 집 등에서 시험 답안을 전달받았다"며 "피고인들은 아버지가 답안을 알려준 과목에 응시해 교내 학업성적 관리업무를 방해하도록 공모했다"고 설명했다.

숙명여고 재직 중 쌍둥이 딸들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교무부장 현모 씨가 5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해 7월 불거진 숙명여고 정답 유출 논란은 같은 학교 교무부장의 자녀인 쌍둥이 자매의 성적이 한 학기 차이로 급격히 상승하며 제기됐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쌍둥이 자매는 1학년 1학기 각 전교 59등과 121등을 기록했지만 다음 학기에 전교 5등과 2등을 했다. 이듬해 2학년 1학기에선 각각 문·이과 전교 1등을 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사건을 맡은 경찰은 쌍둥이 자매 휴대전화에서 영어 서술형 문제 정답,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정답이 적힌 메모와 풀지 않은 시험지 등을 확인했다.

쌍둥이 자매 측은 검찰의 공소사실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쌍둥이 자매가 교내 업무를 방해했다는 증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변호인은 "이 사건을 증명할 직접적인 증거없이 간접증거와 간접사실만 있는 실정"이라면서 "물론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로 인정된 판례가 있지만 공소사실을 곧바로 뒷받침할 과학적·통계적·객관적 증거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매의 성적이 갑자기 상승한 일은 이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증거가 될 수 없다"며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얼마나 올릴 수 있는지 객관적 데이터는 추출했는지 (검찰에게) 묻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로지 '아, 이건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내릴 수 없다"며 "미성년자인 피고인들은 이 일로 퇴학까지 당했다"고 덧붙였다.

재판 내내 서로에게 시선을 줄 뿐 덤덤한 표정으로 임하던 자매는 변호인의 입장과 같냐는 재판부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쌍둥이 자매의 2차 공판기일은 9월 27일 오후 2시로 잡혔다. 변호인은 미성년자인 피고인의 신변 보호를 위해 피고인 출석없이 재판을 진행하거나, 비공개 재판 등을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검찰은 자매의 아버지이자 전 숙명여고 교무부장 현씨를 구속기소했으나 자매는 가정법원·지방법원 소년부 등에서 재판을 받는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했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한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달 형사재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자매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이들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했다.

한편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 현씨는 지난 5월 1심에서 업무방해죄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현씨는 현재 항소심 재판 절차를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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