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당신이 고유정 변호인 제의를 받는다면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 등을 받는 고유정이 6월 7일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누구나 갖는 당연한 권리" VS "경력 쌓기용"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살인마.", "얼굴을 들라."

12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전 남편 살해 사건의 피고인 고유정이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자 시민들은 격앙된 감정을 드러냈다. 시민들은 교도소로 돌아가기 위해 호송차에 오르는 고유정의 모습을 보기 위해 재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심지어 일부는 호송차 출입구 주변으로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이처럼 고유정 사건은 현재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재판 시작 뒤에는 고유정 본인보다 '고유정 변호인'이 실검 1위에 오르며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 바로 변호인이 본인 블로그에 올린 글 때문이다.

고유정 변호인인 남윤국 변호사는 자신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블로그에 '형사사건 변호와 관련한 입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그는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며 "이는 모든 피고인에게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변호인으로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형사사건에 관해 많은 국민적 관심과 비판적 여론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변호사로서 그 사명을 다하여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고 그 재판 속에서 이 사건의 진실이 외면받지 않도록 성실히 제 직무를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달리 사건에는 안타까운 진실이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업무 수행을 방해하려는 어떤 불법적인 행위나 시도가 있다면 법률적 대응을 할 수도 있다"며 변호 행위를 방해할 경우 강경 대응 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또 "변호사는 기본적인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했다.

남윤국 변호사는 13일 고유정 사건의 변호를 맡은 자신의 입장을 블로그에 올렸다. /남윤국 변호사 블로그 캡쳐

법조계 안팎에서는 고유정 변호인이 이번 사건을 수임한데 대해 '당연하다'는 반응과 '결국 돈 때문'이라는 양론이 팽팽히 맞섰다.'변호사 윤리장전' 16조에 따르면 "변호사는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지 않는다. 장애인, 소수자, 기타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법조계, "고유정 변호인 수임한 것" 당연

대다수 법조인들은 남 변호사가 고유정 사건의 수임을 거절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피고인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으며, 이는 모든 피고인에게 적용된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법인 정운 강성민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는 "(변호인을) 선임하는 권리는 법률로도 제한이 불가능"하다며 "(변호인이) 피고인의 허위에 조력하게 되면 문제가 되겠지만, 기본적으론 의뢰인의 말을 신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의뢰인의 말이) 완전히 실체적 진실과 다르다면 범위 내에서 의뢰인을 설득하거나 교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원칙적으로 변호인은 의뢰인에 반하는 행동은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황필규 변호사는 "'고유정이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렇다'"라며 "사람에 따라 기준을 달리 적용할 순 없다"고 밝혔다. 또 "흉악범이건 집단학살을 한 정치인이든, 노동자를 탄압한 기업인이라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야 한다"며 "당사자를 비난하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절차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사회시스템 자체가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훼손돼선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 역시 "개별적 사건에서 변호사는 의뢰인의 주장을 충실히 전하는 역할을 하지만, 거짓임을 알면서도 전달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제를 깔았다.

◆ '결국 돈 때문', '유명세 노려' 비난도

남 변호사는 '들끓는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왜 사건을 맡았나'는 질문에 "고유정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원론적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당연히 실리적인 계산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변호사라면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고 여러 쟁점이 있는 사건을 맡고 싶을 수 있다. 경력도 쌓이는데다 더 많은 수임료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에 따르는 비판은 감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보통 예민한 사건은 법무법인에서 잠시 나가 개인 자격으로 맡은 뒤 재판이 끝나면 복귀하는게 일반적"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고유정의 첫 공판기일을 앞두고 판사 출신인 박재영 변호사의 선임 사실이 알려졌다.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박 변호사는 소속 법무법인 SNS를 통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변론을 무료로 진행하다 고유정의 억울한 사정을 알게돼 살펴보려 했었다. 하지만 가족 중 스트레스로 쓰러지는 분이 있어 소신을 꺾기로 했다"고 변론 포기 이유를 전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아무리 피고인의 주장을 대변한다고 해도 고유정이 '뼈의 중량', '뼈의 강도'를 검색한 이유가 꼬리곰탕, 감자탕 등등을 요리하기 위해서라는 진술은 변호사 양심을 저버린 것 아니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

보통 고유정 같은 민감한 사건은 대체로 변호인이 수임을 포기하면서 국선 변호인이 맡게 되는 경우가 잦다. 딸 친구를 성추행하고 모금액을 횡령한 이른바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에서도 변호인이 무료 변호를 자처했다 선임계 제출 3일 만에 물러났다. 흉악범도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밝힌 이 변호사에게 국민들은 "범죄자에게 인권이 어디 있냐"는 비난을 쏟아냈고, 결국 그는 백기를 들었다.

12일 제주지법에서 열린 고유정의 첫 공판이 끝나고 호송차에 오르는 고유정의 머리채를 시민들이 잡아 당기고 있다. /뉴시스

고유정은 지난달 판사 출신을 포함한 생명과학 전공자 등 5명의 변호인을 선임했지만,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모든 변호인이 사임계를 제출했다. 이후 국선변호인이 선임됐지만, 고유정 측은 9일 제주지방법원에 새로운 변호인 선임을 알렸다. 또다시 고 씨 변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고조되자 3명의 변호사는 사임 의사를 밝혔고, 현재 남은 변호인은 남 변호사를 포함해 2명이다.

남 변호사는 12일 고유정의 첫 공판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이번 사건이 전 남편의 지나친 성욕에서 비롯됐다는 취지의 변론을 펼쳤다. 이날 남 변호사는 "CCTV가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고유정이) 전부 찍혔다"며 "(이런 이유에서) 절대로 계획된 범행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피해자는 고유정을 보며 성욕이 생겨 성적 스킨십을 하려 했고, 이것이 고유정이 살해를 하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피해자 고 강 모씨 유족들은 재판이 끝난 뒤 "한 편의 소설을 본 것 같다"는 말로 착잡한 마음을 대신했다. 이들은 "고 씨 측 변호인이 피해자가 없다는 이유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하는 것에 큰 분노와 좌절을 느낀다. 시신을 찾지 못해 죄책감 속에 살고 있다. 형님의 명예를 되찾고 고 씨가 극형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 측 강문혁 변호사도 "(고 씨 변호인은)피해자의 경동맥을 칼로 찔러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고의가 아니였기 때문에 살인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비상식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며 "고 씨 측 주장은 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재판에서 고유정은 현 남편의 몸보신을 위해 감자탕을 검색하다 우연히 ‘뼈의 무게’ 등을 검색했다고 진술했으나, 정작 현남편은 감자탕을 먹어본 적도 없었고 사건이 일어났던 5월에는 고유정과 함께 청주에 있지 않았다"라고 반박했다.

전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손괴. 은닉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의 2차 공판은 9월 2일 오후 2시 제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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