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5년간 바뀐 게 없다" 세월호 유족 절규한 까닭은

세월호 보고 조작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4일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박근혜 정부의 보수단체 불법지원(화이트리스트) 관련 선고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남용희 기자

김기춘 등 '세월호 보고 조작' 전원 실형 피해…항의에 재판부 당황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내가 법정 들어가려고 노란조끼도 벗었어요. 이것 때문에 못 들어갈까봐…"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엄마는 오래도록 법정 복도를 떠나지 못했다. 아이가 떠난 후 분신처럼 지니고 다녔던 노란 조끼도 벗었다. 방청권은 배부받지 못했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에서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을 메우기 위해 공문서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외 3명의 1심 최종심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412호 법정 앞에서의 일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권희)는 14일 오전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비서실장 등 4명의 1심 선고기일을 열었다.

김 전 비서실장과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이 첫 유선 보고를 받은 시각과 서면 보고를 받은 횟수 등을 조작한 문건을 국회에 제출한 혐의를 받는다.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은 국가 위기관리 컨트롤타워가 청와대라는 내용의 대통령 훈령(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단 변경해 공용서류손상죄로 기소됐다.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헌법재판소에서 세월호 사고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을 위증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비서실장은 2014년 7월 10일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이하 세월호 국조특위) 회의제 제출할 답변서를 허위로 작성한 공소사실이 인정됐다. 해당 문건에는 박 전 대통령이 사고 직후 2~30분 간격으로 실시간 보고를 받았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사고 당일 점심시간까지 사고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점, 상황 보고서를 팩스로 보냈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점 등을 통해 해당 내용은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세월호 국조특위를 앞두고 예상 질의를 정리하도록 지시한 공소사실은 내부회의 참고용으로 간주해 무죄로 판단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국조특위 당시 답변서는 허위의 내용이 포함돼 있고 김 전 비서실장 역시 이를 인식한 것으로 보여 유죄로 인정한다"며 "다만 피고인이 고령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점, 다른 사건으로 인해 법정구속된 상황인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김장수 전 실장과 김관진 전 실장은 무죄였다. 김장수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이 위기관리센터를 통해 10시 15분부터 7차례 통화를 했다고 말하는 등 청와대 상황일지를 허위로 작성하는데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이후 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사고 당일 최소 10시 22분이 지나서야 상황 보고를 받았다. 검찰은 세월호 탑승자의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 발송 시간인 10시 17분 전에 대통령이 상황 보고를 받았다고 꾸며내기 위해 시간을 조작했다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장수 전 실장과 박 전 대통령의 최초 통화 시간을 100% 확신할 수 없다"며 "또 청와대 상황일지 작성을 위해 통화내역을 전달할 당시 이미 국가안보실장직에서 물러난 후여서 공모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김관진 전 실장은 2014년 7월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불법으로 변경해 원본을 손상하고 이 과정에서 공무원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린 의혹을 받는다. 검찰은 청와대 책임을 축소하기 위해 대통령 훈령을 임의로 바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2014년 6월 초 국가안보실장으로 취임한 점을 미뤄볼 때 한 달도 안된 시점에 내부 직원과 공모해 범행을 했다고 보기 힘들다"며 "지휘관으로서 관리지침을 면밀히 검토하지 못한 점은 인정하나 위법하게 (지침을) 수정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보고 조작 혐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장수,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 선고 공판 참관을 마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뉴시스

"저들이 범인인 줄 모르고 우리 애들 살려달라고 그 앞에서 빌었어!"

일부 피고인의 무죄 소식이 바깥까지 전해진 듯 복도에 있던 유족은 오열했다. 몇몇 유족은 굳게 잠긴 법정 출입문을 세차게 두드리기도 했다. 당황한 재판부는 판결문 낭독을 잠시 멈추고 법정 내 관계자와 상의했다. 그 사이에 "이러려고 우리를 못 들어가게 했냐", "상식도 없고 양심도 없는 법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아직도 2014년에 살고 있다" 등 판결에 대한 유족의 울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재판은 이어졌다. 마지막 피고인 윤 전 행정관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헌법재판소에 나와 세월호 사고 당일 청와대 행적을 거짓으로 진술한 위증 혐의가 인정된다"며 "헌법재판소의 대통령직 박탈 여부 판단을 방해한 책임이 무겁다"고 설명했다. 다만 윤 전 행정관이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는 점, 대통령과 행정관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다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는 점 등이 고려돼 실형을 면했다.

이로서 세월호 참사 당시 보고 조작 혐의로 입건된 4명 모두 실형을 면하고 풀려나게 됐다. 법정구속되지 않은 피고인은 즉시 퇴정할 수 있지만 복도에 남아 있는 유족의 소동에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소식을 들은 유족은 "자식이 죽은 상황에서도 법을 지켰다. 법대로 했다"며 "그런데 나온 결과가 이거다. 2014년과 2019년은 다를 게 없다"고 눈물을 흘렸다. 퇴장하는 변호인단에게 "돈이면 다인가. 무엇을 위해 변호했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복도 의자에 앉아 있던 한 유족은 가방 속에서 노란 조끼를 주섬주섬 꺼내 보였다. 법정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잠시 벗어둔 것이었다. 그는 "법정 들어가려고 노란 조끼도 벗어서 가방에 넣었다. 가방에 넣으면서 노란 조끼가 무슨 무기라도 되는지 싶었다"고 울먹였다. 조끼에는 '부모이기에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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