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국내에서 관객 994만8386명을 동원했다. 인구 5명에 1명 꼴이다. 이 영화로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는 사후 28년 만에 한국 땅에서 '부활'했다. 특히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무너져가던 그의 마지막 무대, '라이브 에이드'를 재현한 공연 신은 감동의 최절정을 선물했다. 그러나 앤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우리는 다시 현실의 세계로 복귀한다. 그 세계에 프레디 머큐리는 없다. 우리 사회는 1985년 국내 첫 에이즈 감염이 발생한 이후 20년이 다 되도록 편견과 왜곡을 해소하지 못 했다. 감염인 단체 '러브포원'의 'HIV/AIDS에 대한 20대~30대 HIV 감염인의 인식 조사 보고서'(2018)에 따르면 감염보다 에이즈에 대한 비난이 더 힘들다고 답한 응답자는 87.9%에 달한다. 프레디 머큐리의 비극에는 슬퍼하지만 에이즈는 혐오하는 사회. <더팩트>는 오늘도 편견의 강을 거슬러 헤엄쳐야 하는 또다른 프레디들을 2회에 걸쳐 찾아간다.<편집자주>

'HIV 감염 축구선수 퇴출' 사태로 본 팩트체크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대한민국이 아직 '에·알·못'(에이즈를 잘 알지 못 하는) 사회라는 걸 증명하는 사건이 또 일어났다. 대전의 프로축구구단 대전시티즌의 최용규 대표이사와 이흥실 감독이 1일 고발당했다. 고발인은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와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 커뮤니티 '알'이다. 이들은 대전시티즌이 외국인 선수의 HIV 바이러스 감염 사실을 무단으로 공표하고 인사 불이익을 줬다고 대전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7조에 따르면 감염인 본인의 동의없이 감염 사실을 누설하면 처벌 대상이다.

구단은 지난달 외국인 선수를 영입 하루 만에 HIV에 감염됐다며 계약을 해지하고 이 사실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공표했다. 논란이 일자 최 대표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에 팩트대로 알려주자는 순수한 판단이었다. 선수의 인권을 무시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변명에도 구단의 행동은 엄연히 불법이다. 전문가는 축구라는 격한 스포츠 특성을 고려해도 보균자에 불과한 선수를 하루 만에 퇴출한 것은 과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과연 대전시티즌이 전달하고 싶었다는 '팩트'가 올바른 정보였는지 짚어볼 때다.

◆HIV와 에이즈는 다르다

대전시티즌의 선수 퇴출을 둘러싼 공방이 좀처럼 꺼지지 않는 지금, 해당 구단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에이즈 축구선수", "K리그 에이즈", "대전 축구 에이즈" 등의 연관 검색어가 뜬다. 애초 구단이 불법으로 뿌린 보도자료에 따르면 퇴출된 선수는 HIV 감염인이다. 비판의 목소리를 낸 인권단체에서도 HIV 감염 사실을 공개한데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HIV는 곧 '에이즈'다. HIV라는 알파벳 세 글자보다 에이즈라는 병명이 더 익숙하다.

HIV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의 준말이다. 인간의 몸 안에 살면서 면역기능을 파괴하는 '바이러스'다. 사람의 몸에 침투한 후 8~10년의 잠복기간을 거쳐 면역체계를 파괴해 다양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HIV로 무너진 면역체계 때문에 합병증이 생기면 우리 귀에 익숙한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로 진단한다. 즉 HIV 바이러스가 체내에서 검출돼도 감염인일 뿐, 에이즈 환자는 아니다. 지난달 대전시티즌이 퇴출한 선수는 에이즈 환자가 아닌 HIV가 검출된 감염인일 뿐이었다.

◆대한민국 첫 에이즈 환자, 지금까지도 건강하다

HIV 바이러스는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HIV 감염이 에이즈 발병으로 가기 전 꾸준한 검사와 치료로 면역체계가 약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1985년 국내 첫 에이즈 환자가 발생한 이후 3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HIV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법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약물치료만으로 면역체계 보완은 물론 HIV‧에이즈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인 감염력도 사실상 수치 0에 수렴할 수 있다. 엄중식 가천대학교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퇴출된 선수는 꾸준한 치료를 통해 건강상태를 유지했을 것이다. 프로선수로 뛸 정도로 자기관리가 된 걸 볼 때 감염력 또한 제로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바이러스 감염에도 현역 선수로 뛸 정도로 건강을 유지한 선수에게 박수를 쳐줄 일"이라며 "한국 사회의 HIV 인식이 얼마나 무지한지 재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1일 <더팩트> 취재진과 만난 감염인 쿤(별명) 씨는 "꾸준히 치료를 했더니 약 복용기간도 6개월에 한 번으로 늘어났을 뿐 아니라 감염력도 상실했다"며 "바이러스를 발견한지 6년째에 접어들었는데 그동안 감기 한 번 앓은 적 없다"고 강조했다. 1985년 국내 첫 에이즈 진단을 받은 60대 남성 역시 지금까지 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염 임산부도 건강한 아기 낳는다

격한 몸싸움과 부상이 잦은 축구 특성상 대전시티즌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도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HIV와 에이즈에 대한 가장 큰 두려움은 바로 감염력이다. 사실상 감염인 또는 에이즈 환자와 손끝 하나 닿기도 꺼린다. 그렇다면 이번 논란에서 감염인 선수가 동료에게 바이러스를 옮게 하려면 어떤 일이 벌어져야 할까.

엄중식 교수는 "감염된 선수가 전혀 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가정해도 매우 개연성 떨어지는 부상이 발생해야 한다"며 "피가 철철 나는 부상을 입은 선수 두 명이 상당시간 상처를 맞대고 혈액이 교환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축구 경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바이러스 감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꾸준한 치료로 감염력이 떨어진 상태라면 감염률은 희박하다.

치료기술 발전과 별개로 HIV 감염은 과장된 소문이 많다. HIV가 포함된 혈액과 체액으로 감염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치료를 받지 않는 감염자가 피임도구 없이 성관계를 할 때, 상호 간 혈액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심한 상처를 일정 시간 맞대는 등 가정에 가정을 더한 상황이 갖춰져야 사람 간의 감염 '여지'가 있다. 엄중식 교수는 "치료기술과 약물 발전으로 감염된 임산부도 건강한 아기를 낳는 시대가 온지 오래"라며 "감염 경로에 대한 부풀려진 소문이 많아 치료를 제때 받아야할 환자를 숨게 만들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프레디 머큐리와 매직 존슨의 명암

지난해 신드롬 수준 인기를 끌었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실존인물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11월23일 에이즈 투병 사실을 발표한 다음날 사망했다. 그가 사망하기 꼭 2주전 마이클 조던과 어깨를 나란히 한 미국의 농구선수 매직 존슨(62)이 에이즈 발병 사실을 알리고 은퇴했다. 두 사람의 터전인 서구 사회 역시 에이즈 발병은 곧 사형선고인 시대였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프레디 머큐리는 세상에 없지만, 비슷한 시기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을 알린 존슨은 에이즈 치료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은퇴 후 1995년 다시 코트에 복귀하기도 했던 존슨은 약물치료의 허점으로 꼽혔던 내성도 여러 약물을 적절한 시기에 투약해 치료하는 ‘칵테일 치료법’으로 극복했다. 지금은 따로 챙겨 먹을 필요없이 하나의 알약에 여러 성분을 넣은 복합제가 개발됐다.

존슨의 에이즈 교육 및 퇴치 재단 '매직 존슨 재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미국 배우 찰리 쉰은 신약 투여로 HIV 바이러스가 전혀 검출되지 않아 사실상 이 병이 정복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사실상 HIV와 에이즈를 죽음의 병으로 바라보는 것은 한국 뿐이다. 이인규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사업국장은 "사회적 편견도 편견이지만 1차 의료기관의 HIV에 대한 지식 부족과 익명 검사기관의 부족한 인프라로 조기 발견이 늦어지고 있다"며 "의료인을 포함한 사회구성원 모두를 위한 HIV‧에이즈 인식개선 프로그램을 확보하고 검사 및 상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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