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울보총장' 문무일…과거사에 진정성, 개혁은 미완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입장을 밝힌 문무일 검찰총장이 5월 4일 해외 순방 일정을 취소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남윤호 기자

24일 퇴임 앞둔 8번째 '임기만료' 총장…'사법농단' 등 적폐수사 지휘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제 42대 검찰총장 문무일. 2017년 7월 25일 취임한 문 총장의 임기가 24일이면 끝난다. 그에게는 유독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었다. 검찰총장으로는 처음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고, 보통의 총장과 다르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공개 석상에서 보이기도 했다.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단초를 제공한 최초의 검찰총장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취임 초부터 강조한 검찰 개혁에는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오는 24일 비공개 퇴임식을 앞둔 문 총장의 임기 동안의 행보와 성과 등을 취임부터 취임 1주년, 2주년 등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해봤다.

◆ 42대 검찰총장, PPT로 '국민'을 강조하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2017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으면서 갑자기 대만학자 난화이진의 한시를 인용해 검찰개혁의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토로했다. 문 대통령이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으셨다"고 하자 문 총장이 "바르게 잘 하겠다"고 답한 뒤 한 행동이다.

하늘이 하늘 노릇 하기가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

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란다

집을 나선 나그네는 맑기를 바라고 농부는 비 오기를 기다리는데

뽕잎 따는 아낙네는 흐린 날씨를 바란다

이 한시는 난화이진이 자신의 저작 '논어별재(論語別裁)’에 실은 것으로 각자 입장에 따라 바라는 것과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 총장은 예전에 선배가 가르쳐준 시인데 이번 청문회를 거치며 생각났다고 밝혔다.

같은날 취임사에서는 "검찰이 (국민들에게) 바뀐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국민만 17차례 언급했다. 12매 분량의 취임사에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총 17차례 담겼다.

문 총장의 취임식 역시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엄숙히 취임사를 낭독하는 형태로 진행된 통상의 취임식과 다르게 문 총장은 직접 준비한 파워포인트 PPT 슬라이드로 검찰의 정책 비전을 밝혔다. 당시에도 문 총장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국민들이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내부 비리, 정치적 중립성 미흡, 과잉수사, 반성하지 않는 자세 등을 꼽고 있다. 투명한 검찰, 바른 검찰, 열린 검찰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문답식 진술 중신의 수사 방식에서 벗어나 물적 증거와 분석 자료, 간명한 진술 중심으로 효율적이고 기품 있는 수사를 해 당사자로부터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PPT 설명 전에는 '봐주기 수사', '정치검찰' 등 검찰을 비판하는 시민 인터뷰를 담은 동영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2018년 11월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사과한 뒤 이들의 사연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 과거사 청산은 성과...박종철 부친·형제복지원 피해자 만나 눈물

문 총장은 임기 내내 '인권 검찰'을 강조해온 만큼 과거 시국사건에 관심을 기울였다. 검찰총장으로는 처음으로 인혁당 사건 및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에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고, 2018년 3월 20일에는 부산 수영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있던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씨를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또 같은해 11월에는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고개를 숙였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사과는 문 총장이 처음이었으며, 그는 피해자들이 사연을 전하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검찰 총장이 공식석상에서 눈물을 보이는 경우는 흔치 않은 만큼,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하고 눈물을 보인 문 총장은 '울보총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문 총장은 "과거 정부가 국가 권력을 동원해 국민을 형제복지원 수용시설에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면서 폭력행사 등 가혹행위로 인권을 유린했다. 당시 김용원 검사가 인권유린과 비리를 적발해 수사를 진행했으나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조기에 종결했다는 과거사위원회 조사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 인권이 유린되는 사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 본연의 역할에 진력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 이 자리만으로는 부족하지만 형제복지원 피해자분들의 아픔이 회복되길 바라며 피해자와 가족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사과했다.

2017년 8월 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도 과거에 있었던 검찰의 과오를 사과했다. 그는 이날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 절차 준수와 인권 보장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국민 께 깊이 사과한다"고 했다. 검찰이 과거사와 관련된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 때, 문 총장이 처음이었다.

◆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던 검찰개혁은 미완

취임 초기부터 대검찰청 산하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등을 새롭게 도입하며 검찰 개혁에 적극 나섰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2018년 7월 대검찰청에는 인권부가 신설됐고, 인권감독관을 12개 지역 검찰청으로 확대하는 등 검찰의 주요 수사 관련 인권침해 사례를 찾아내고 견제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했지만 "새로운 제도들이 제 기능을 발휘해 국민들이 그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문 총장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또 검찰의 요직으로 꼽혀온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의 범정기획관을 수사정보정책관으로 변경하고, 수사 관련 정보 수집만 하도록 기능을 축소했다. 정보경찰과 유사하게 범죄와 무관한 분야의 정보까지 무차별적으로 수집해온 그동안의 관행이 검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기소 및 사법농단 사태 등 적폐수사를 진두지휘해 잘 마무리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 총장은 다스 비자금과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및 배임.횡령 혐의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하는 동안 검찰의 수장으로서 조직이 방향성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문무일 검찰총장(왼쪽부터),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 이철성 경찰청장은 2017년 12월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영화관에서 영화 1987을 함께 관람했다. /법무부 제공

◆경찰청 찾아간 첫 총장...수사권 조정안에는 반발

문 총장은 취임 후 경찰청을 찾아 당시 이철성 경찰청장을 만났다. 검찰총장이 경찰청을 직접 방문한 것은 처음으로, 이날 검찰과 경찰의 협업 관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년 뒤쯤인 2018년 8월 10일에는 민갑룡 경찰청장이 대검찰청을 방문해 문 총장을 만나 1시간 가량 비공개로 면담한 바 있다.

두 조직간 분위기가 역대급으로 호전된 듯 했으나 문 총장은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줄이는 대신 형사부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사도 분명히 했다.

특히 임기를 한달여 앞둔 6월 25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현재 국회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수사권 조정 법안은 민주주의에 반하며 국민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이날 갑자기 양복 재킷을 벗어 한 손에 들고 흔들며 "뭐가 흔들리냐? 옷이 흔들린다. 어디서 흔드는 것이냐?"며 '검찰이 정권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은 돌발 행동을 보였다. 이후 문 총장은 "흔들리는 옷을 보는 것이 아니라 흔드는 것을 시작하는 부분이 어딘지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찰 스스로 자체 개혁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직접 수사를 줄이고 수사의 무게 중심도 특수부가 아닌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형사부와 공판부로 옮기는 등 검찰부터 민주적 원칙에 맞게 조직과 기능을 바꿀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임기까지 한달 가량 남은 시점에서야 본인의 소신을 강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큰 영향력을 끼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는 문무일 검찰총장./ 뉴시스

◆ 마지막 간부회의 "겸손함 잊지 말 것" 강조

문 총장은 마지막까지 '국민'과 '능동적인 변화에 대한 노력 지속'을 검찰 조직에 당부했다. 문 총장은 11일 오전 대검찰청에서 열린 '7월 월례 간부회의'에서 임기 중 마지막 간부회의인 만큼 소회를 간단히 말씀드리겠다며 "지난 2년간 '투명한 검찰, 바른 검찰, 열린 검찰'을 모토로 국민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기 위해 여러 개혁 방안을 추진해 왔으나 국민들이 보기엔 여전히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이라며 "국민들 입장에서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계속 살피고 능동적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민들이 부여한 국가적 권능을 행사한는 검찰은 겸손이 절대적인 덕목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해 준 검찰 구성원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전했다. 특히 간부들에게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철저히 유지해줄 것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후 30년 간 임기를 채운 검찰총장은 모두 7명, 문 총장까지 포함해도 8명에 불과하다. 겨우 2년의 임기이지만 이 조차 채우지 못하고 검찰을 떠난 총장들은 13명이다. 39대 채동욱 전 총장은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를 강행하다 '혼외자' 사건으로 7개월여 만에 옷을 벗었고, 노무현 정부 말기에 임명된 36대 임채진 전 총장은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중에 서거하자 사표를 던졌다.

이처럼 임기를 채우는 것 조차 쉽지 않지만 문 총장은 24일 퇴임식을 끝으로 2년의 임기를 마무리 하는 검찰총장 가운데 한 명이 됐다. 문 총장은 광주 출신으로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에 임용됐다. 대검 특별수사지원과장, 대전지검장, 부산고검장 등을 거쳤다.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6개월 재직한 김종빈 전 총장 이후 12년 만의 호남 출신 검찰 총장으로 근면하고 성실한 검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치밀한 수사방식으로 정평나, 수사방식이 사법연수원 교재에 소개됐으며 전두환.노태우 12.12쿠데타, 변양균-신정아 스캔들, 효성 비자금, 대한항공 땅콩회항사건 등 여러 대형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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