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비틀 음주공화국①] 윤창호법 첫날, 애주가들은 이것부터 찾았다

음주단속 정보앱 인기폭발…단속보다 술 자제하는 문화가 우선[더팩트ㅣ성남-=문병희 기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에서 음주단속 중인 단속원의 모습. /더팩트DB

음주단속 정보앱 인기폭발…"단속보다 술 자제하는 문화가 우선"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음주운전 처벌기준을 대폭 강화한 '제2 윤창호법' 시행 첫날인 지난달 25일과 26일 이틀 동안 음주단속 구간을 알려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다운로드 횟수가 폭증했다. 가장 랭킹이 높은 앱은 서버가 불안정한 지경에 이르렀다. 6일 현재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음주단속정보 앱이 인기앱 랭킹 1위다.

<더팩트>는 앱마켓 랭킹 상위에 있는 음주단속 제보앱 2개를 설치해 봤다. 앱을 켜자 경찰차를 옆에 세워둔 채 음주단속을 하고 있는 경찰의 캐릭터가 등장했다. 옆에는 '제보하기'라는 버튼이 있는데 음주단속 구간을 발견한 즉시 해당 버튼을 통해 제보가 가능하다. 스마트폰에 장착된 GPS(위치계산시스템)으로 실시간 위치를 파악해 몇 초 만에 제보가 가능하다. 데이터가 많이 쌓였는지 음주단속원이 자주 출몰하는 구간도 별도로 확인할 수 있다. 윤창호법 시행 당일 서버가 마비된 앱은 사진제보도 가능했다. 열심히 음주운전을 단속 중인 경찰의 업무현장이 그대로 노출됐다.

실제 사용자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30대 A 씨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2~3번 음주운전 경험이 있다. 단속 제보앱도 설치한지 오래"라고 털어놨다. A 씨는 "늦은 시각까지 술을 마시다보니 대리운전을 구하기 힘들고 대중교통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게 됐다"며 "단속에 걸릴까봐 불안해 앱을 켜고 귀갓길에 단속원이 있는지 체크했다"고 했다. 서울 광진구에 거주하는 20대 B 씨는 지난해 여름휴가 중 앱을 사용했다. 친구들과 펜션을 잡고 놀던 중 술이 떨어져 시내에 있는 마트에 가려던 길이었다. 한씨는 "펜션이 산속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었다. '20km로 천천히 가면 되겠지'하는 마음에 차에 올랐다"며 "동승한 친구가 음주단속에 걸릴까 걱정해서 단속 제보앱을 설치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되살렸다.

실시간 단속구간 제보로 음주단속을 피하도록 도와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모습. 이용자끼리 단속현장 사진도 공유할 수 있다. /송주원 인턴기자

앱을 이용하는 누구나 제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확성은 의문이다. 실제로 <더팩트> 취재진이 앱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허둥대던 중 실수로 단속구간이라 제보한 적도 있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단속 제보앱이) 있다는 걸 알지만 기존에도 30분~1시간 간격으로 위치를 변경하며 단속했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다"며 "최근 앱 인기가 치솟았다는 소식을 듣고 단속원들도 해당 앱을 설치해 참고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음주단속 앱의 실효성을 떠나 단속을 회피하고 음주를 계속하려는 풍토가 여전하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다. 이런 사회 분위기 아래서는 제3,4의 윤창호법이 나와도 음주운전 사고의 악순환은 멈출 수 없다.

◆사람이 죽어도 근절되지 않는 음주운전, 그 지독한 역사

지난해 9월,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온 스물 둘 청년 윤창호 씨는 횡단보도에서 음주운전자가 모는 차에 치어 숨졌다. 고인이 휴가 나온 군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국민이 가슴 아파했다.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음주운전 처벌기준을 대폭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내놨다. 원래 이름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지만 계기가 특별한 만큼 '제2 윤창호법', '윤창호법' 등으로 불린다. 개정법은 음주운전 단속 최저 기준을 혈중알코올농도를 0.05%에서 0.03% 낮춘 것이 핵심이다. 면허취소 기준 역시 0.1%에서 0.08%로 강화했다. 가중처벌 기준도 음주운전 3회 적발에서 2회 적발로 낮췄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숙환인 음주운전을 근절하기 위한 다양한 법안과 정책은 그전에도 끊임 없었지만 반짝 효과 뿐이었다. 고 윤창호씨 사망 약 9개월 전인 2017년 연말에는 대체운전자 호출을 거부하는 음주운전자의 차량을 견인 조치한 뒤 견인 비용을 적발된 운전자에게 물리는 개정법이 통과됐다. 2016년 대법원은 음주운전 중 사람을 치어 사망하게 한 운전자의 형량을 기존 3년에서 최대 4년 6개월까지 연장하도록 결정했다. 이마저도 현재는 무기징역까지 선고하도록 기준이 강화됐다. 2013년에는 도로교통법상 규정하고 있는 도로 이외에 백화점과 아파트 내 주차장 등에서의 음주운전도 처벌하도록 개정했다. 금전적 부담부터 실형까지 말 그대로 손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1년이 멀다하고 음주운전 근절을 위한 법과 정책이 갱신되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경찰청에서 공개한 2015~2017년 음주운전 교통사고 통계를 보면 ▲2015년 23만2035건 ▲2016년 22만917건 ▲2017년 21만6335건이다. 소폭 감소 추세긴 하지만 여전히 20만건을 웃돈다. 사망자 수 역시 3년 내내 4000명이 넘는다.

◆인천시 1년 예산 맞먹는 비용…'술 덜 먹는 문화' 시급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윤창호법 시행과 단속 제보앱 인기가 맞물린 현상에 전문가들은 안타까워 했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그 소식을 듣고 참 안타까웠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안타까운 이유는 이 현상으로 한국인들이 얼마나 술을 놓지 못하고 있는가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곽 교수는 "경찰이 음주단속을 하는 이유는 누구를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라며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운전대를 잡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올해 1월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단속 제보앱을 법적으로 금지할 법안 두 건을 발의했다. 스마트폰 앱 등 정보통신망으로 음주 단속 장소를 유포하는 것을 규제하는 법안이다. 그러나 규제 강화가 해법인지는 의문이다. 곽대경 교수는 "단속기준이 강화된 상황에 모든 걸 법으로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음주운전을 비롯해 술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자제하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1인당 술 소비량 선두를 달릴 정도로 '애주가'들의 성지다. 한국인이 유럽 등 해외여행을 갔을 때 가장 불편한 점으로 "술집이 일찍 문을 닫는다"는 점을 꼽을 정도로 유흥문화도 발달했다. 한국인의 ‘술 사랑’은 국제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술과 건강에 대한 국제 현황 보고서'(2018)에 따르면 2015~2017년 연평균 1인당 순수 알코올 섭취량은 10.2L다. 이웃나라인 일본은 8L, 중국은 7.2L다. 미국도 9.8L로 한국보다 낫다.

술에서 비롯된 피해도 크다. 국민건강보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주요 건강위험요인의 사회경제적 영향과 규제정책의 효과 평가'(2015)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9조4524억 원이다. 흡연(7조1258억 원)과 비만(6조7695억 원)이 그 뒤를 따랐다. 2019년 기준 인천시 운영 예산, 전국 고등교육 예산과 맞먹는 수치다. 2017년 알코올성 간 질환을 비롯한 알코올 관련 사망자 수는 모두 4809명으로, 매일매일 13명이 술 때문에 죽어가는 셈이다.

손애리 삼육대학교 보건관리학과 교수는 급격한 산업화를 거친 한국 특성상 회식 문화가 발달한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회사 동료와의 의리를 다지는데 술이 빠질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며 점차 사회 각 분야로 확산됐다는 분석이다. 손 교수는 "주류광고 규제와 술을 줄이는 다양한 캠페인을 하고 술 좋아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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