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예요" 거절 해도 성매매 집착…마약밀매까지 버젓이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사이버 상에서 익명의 상대와 대화를 주고받는 애플리케이션, 이른바 '채팅앱'이 인기다.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판매하는 앱마켓에서 채팅앱은 게임앱과 더불어 다운로드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효자 아이템이다. 채팅앱은 포탈 사이트보다 간략한 가입 절차와 실시간으로 대화상대를 만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외로워서, 또는 재미삼아 내려받고 들어간 채팅방은 때로는 위험한 초대가 되기도 한다. 신원확인을 거치지 않는 가입 절차와 손쉬운 대화상대 매칭으로 각종 범죄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10대의 경우 더욱 취약하다. <더팩트>는 범죄의 온상이 된 채팅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더팩트> 취재진은 18세 여성으로 가장해 채팅앱에 가입해봤다. 정확한 실태 파악을 위해 사전정보 없이 앱마켓에 ‘채팅’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 임의로 3개를 골라 가입했다.
◆단도직입 금전 대가로 만남 제의…낯 뜨거운 '어른의 민낯'
한 채팅앱을 설치했다. 가입 절차는 별명과 성별, 나이와 지역을 기입하는 걸로 끝이었다. 나이를 18살로 입력할 때 취재 목적이지만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 한켠을 찌르던 양심의 모서리는 곧 무뎌졌다. 채팅앱에 뛰어든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설마했던 성인 남성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서울에 거주한다는 29세 남성은 인사 한마디 없이 "스폰서(Sponsor, 후원자)하실 거냐"고 물어봤다. 미성년자임을 밝혔지만 이전에 고등학생과 ‘스폰서 관계’를 맺은 적 있다며 회유했다. 성관계 횟수에 따른 비용도 제시했다. 성인이 들어도 큰 액수였다. 끝내 성년이 아니란 이유로 거절하자 "아쉽다. 여기(채팅앱)에 인신매매 등 범죄자 많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자신의 행위는 범죄라는 의식이 없는 듯 했다. 30여 분 후, 남성은 다시 찾아와 앞서 제안한 금액을 거듭 강조하며 설득을 시도했다.
이 남성은 '용돈만남(미성년자에게 일정 금액의 용돈을 주고 성관계를 하는 만남)'을 제안했다. 약간의 관심을 보이자 대뜸 키‧체중을 비롯해 신체사항을 물었다.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불쾌감을 느꼈다. 나이를 이유로 거절하자 남성은 앞서 제안한 금액에서 10만원을 올렸다. 더 이상 답장을 하지 않았지만 상대 남성은 물음표를 연달아 보내고 "저기요"라고 부르는 등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한 지방 대도시에 거주 중이라는 48세 남성도 말을 걸어왔다. 그는 "만나자마자 성관계를 하기 전에 현금으로 바로 (돈을) 드리겠다"고 유혹해 왔다. 역시 미성년자임을 밝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성은 "애인같은 딸을 원한다"며 "혹시 집이 없냐. 내가 장기로 투숙할 방을 구해주겠다"고 했다. 거처가 불안정한 가출 청소년을 어떤 식으로 회유했을지 눈에 선했다.
<더팩트> 취재진은 이 채팅앱에 가입한지 하루만에 60여 통의 음란성 메시지를 받았다. 성매매뿐 만 아니라 먼저 음란물을 보내며 서로의 신체 사진을 공유하자는 제의도 있었다. 각 채팅앱 운영자 역시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매매 제의가 빈번한 걸 아는지 붉은 글씨로 적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팝업창이 간헐적으로 떴다. 기재된 내용은 해당 법률 제13조 "아동ㆍ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상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였다.
◆성인도 예외 아니다…버젓이 성매매·마약밀매
채팅앱의 위험한 초대에 성인도 예외는 아니다. 성매매 제의부터 성범죄 위협까지 여성 채팅앱 사용자는 연령과 상관없이 표적이 된다.
2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채팅앱에서 만난 남성 때문에 소름 돋는 경험을 했다. 대화상대 남성과 둘이 만나기로 약속하고 장소에 나가자 무리지은 남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급히 몸을 숨기고 몰래 지켜봤다. 남성들은 누군가를 찾으려는 듯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모두 선글라스 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시간이 지나자 주변에 행인처럼 보이던 남성까지 모여들어 쑥덕거렸다. 순간 '납치'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도 당시 공포감을 잊을 수 없다.
또 다른 20대 여성 B씨는 지난 1월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상대를 찾으려 채팅앱에 가입했지만 대뜸 금액을 제시하는 성매매 제안을 받았다. 불쾌해진 B씨는 앱을 지우고 다시는 사용하지 않았다. 역시 익명을 요청한 20대 여성 C씨는 지난달 채팅앱에서 거절 의사를 수차례 밝혔는데도 상대남성이 나체 사진을 보내오는 등 '사이버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마약거래도 빈번하다. 지난 4월 대구경찰은 채팅앱에서 필로폰을 유통 및 투약한 40대 남녀 4명을 붙잡았다. 이중 2명을 구속, 나머지 2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같은 달 환각성이 높은 신종 대마 액상을 구입한 혐의로 긴급 체포된 SK그룹 3세 최모 씨 역시 마약판매를 광고하는 SNS를 보고 채팅앱으로 거래한 걸로 알려졌다. 일부 채팅앱은 ‘마약’이라는 단어 자체가 금지어지만 SNS와 채팅앱 등에서 '사탕', '얼음', '차가운 술' 등의 은어로 둘러 표현해 거래가 이뤄진다.
채팅앱에서 백반가루를 마약으로 속여 판매하려 한 의경이 경찰의 함정수사에 걸린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 서해5도 특별경비단 소속 의경 김모(20) 씨는 지난 4월 50만원 상당의 필로폰을 팔겠다는 글을 올린 후 마약 대신 백반가루를 들고 구매자를 만났다. 하필 구매자는 마약중독자로 위장한 경찰이었고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경찰은 마약단속에 있어 중독자인 척 채팅앱에 잠입하거나 이미 체포된 마약류 현행범을 ‘미끼’로 쓰는 함정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채팅앱에서의 마약 범죄가 심각함을 반증한다.
IT 기술 발달과 스마트폰 사용 증가에 따라 채팅앱은 무섭게 성장했다. 채팅앱 운영자는 과열화된 앱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적으로 가입 절차를 축소하고 사용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시스템을 내놨다. 현행법상 애플리케이션은 휴대전화 등 통신사업 설비를 빌려 다양한 통신 업무를 제공하는 부가통신사업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운영자는 자신이 만든 앱을 관할 부처에 등록할 의무가 없다. 아동‧청소년 음란물이 발견될 경우 운영자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법안이 있으나 개인정보보호법과 표현의 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사용자의 대화를 모니터링 하는데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채팅앱 내 범죄가 심각해 지난 달 대규모 앱마켓을 소유한 구글 한국지사를 방문했다. 관계자는 ‘구글은 사업체에 불과해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며 "결국 법망의 부재 문제가 핵심"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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