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출판사 회의 된 양승태 재판... 법정은 '교열 중'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7차 공판이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남용희 기자

"나눔고딕Extra B체인가요? 나눔고딕Extra볼드, bold체인데?"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은화 기자]

#1

"제목과 작성일자 폰트가 다른데?" (변호인)

"8009번 파일 제목의 글자체는 확인이 안 되나요? 아~저기(화면) 나오네요. 확인이 가능할 것 같네요. HY수평선B체로 되어 있는데 출력물 글자체는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재판부)

"파일 실행해서 출력한 컴퓨터에 설치된 폰트 부족 문제로 나타난 현상입니다."(검찰)

#2

"8140번 파일과 달리 출력물에는 하이라이트, 음영 표시가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했습니다."(재판부)

"해당 부분 글자모양 보시면 음영색 처리가 되어 있지 않은데, 형광펜 처리해서 출력한 경우 음영표시가 되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검찰)

#3

"3437번, 160824 대법원 공식사과 현황 문건으로 임종헌 USB 순번 8143번 출력물입니다."(검찰)

"잠시만요. 제목 글자체와 수기 기재가 있는데요?"(변호인)

"다시 정리하면 3437번 8143번 파일 제목 글자체가 HY수평체B체인데 3437번 출력물의 글자체는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고, 3437번 출력물 맨 위쪽(160824) 대법원공식사과...이건 뭐죠?"

"전례입니다"(검찰)

"전례[조병구]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재판부)

"제목, 글자체 차이는 프린트 폰트 문제이고 수기 기재 부분은 검찰에서 해당 파일명을 수기로 기재한 것입니다."(검찰)

#4

"8032번 파일의 큰 제목은 나눔고딕 ExtraB체인가요? 나눔고딕Extra볼드, bold체인데, 3462번 출력물 글자체는 그것과 다른 것을 확인했습니다."(재판부)

"네. 원본 파일을 출력한 컴퓨터의 폰트 문제입니다."(검찰)

얼핏 대화 내용만 보면 출판사 편집자들이 책 출간을 앞두고 교정·교열을 하거나, 해당 책이 독자들에게 더 잘 읽히기 위해선 어떤 글자체를 사용하는게 도움이 될까 등을 회의하는 중인 것 같겠지만, 사법농단 사건 공판 중 재판부와 검사, 변호인들 사이에 오간 말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BS 파일과 검찰이 이를 출력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한 자료가 동일한지 검증하는 이 작업은 박병대 전 대법관을 비롯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명한 전 대법관측 변호인들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14일 5차 공판부터 이날 7차 공판까지 재판마다 평균 7시간 가량을 할애해 진행하고 있지만, 총 1142개 파일 하나하나를 대조해야하는 만큼 장기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판 중 재판부와 변호인측은 문서의 쪽수, 글자체, 형광펜 표시는 물론 문서를 만든 날짜와 엑세스 날짜, 수정일, 문서의 위치까지 일일이 검토하는 작업을 거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파일들을 법정 화면에 띄워 설명하고, 이들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검찰측의 피로감이 상당해 보였다. 물론 재판부의 한숨도 점점 깊어졌고,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도 공판 중 눈을 감는 횟수와 시간이 늘고 있다.

공판준비기일부터 재판부는 여러가지 이유로 재판이 지연될 것을 우려했는데 현실이 됐다. 5월 29일 본 재판 시작부터 이날까지 공판 진행의 속도와 정도는 준비기일에 비해 뒷걸음 치고 있다. 재판부는 공판이 더 진행되고 난 시점에서 변호인들의 요청으로 이 검증작업을 하게되면 재판이 더 지연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검증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도 수 차례 언급, 논란이 됐던 검찰의 임 전 차장 UBS 압수수색 절차가 위법한지 아닌지를 놓고도 변호인과 검찰의 법정 공방이 계속됐다.

양 전 대법관 변호인은 USB 파일 중 혐의 사실과 관련된 것만 효력이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은 "휴대폰을 압수하면서 위법한 업소 서비스 받은 것까지 들여다 보면 사생활 침해"라고 예를 들어 비유하며 "(검찰이) USB 가져갈 때 정한(영장 발부된) 파일만 가져가야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보관실 운영비는 USB 파일 내용 중 일부(정해지지 않았던 내용)가 원천이 돼 (검찰이) 위법행위에 대한 의심의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안다. 그렇기 때문에 공보관실 운영비에 대한 증거능력은 없고, (이 부분에 대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이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박병대 측 변호인도 "USB를 동시에 압수한 것이 영장 집행 방법과 부합하는지 여전히 의문"이라며 "검찰은 (USB가) 복구되지 않아 모두 가지고 갔다고 하는데, 삭제된 흔적이 있으면 사건과 관련 없는 파일도 모두 다 압수할 수 있느냐"고 강하게 비난했다.

검찰은 압수수색검증영장·임의제출동의서 등을 직접 제시하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압수수색이 진행됐음을 강조했다. 검찰은 또 "136개 파일은 혐의사실과 관련이 없어 삭제·폐기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날 검찰의 요청에 따라 21일 첫 증인신문 예정이었던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가 자신의 재판 일정때문에 출석이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휴정 후 밝혔다. 재판부는 "정다주 부장판사가 6월 21일 재판기일이 지정돼 있다. 그 기일의 재판 진행을 재판장으로서 해야 하고, 이날 선고 예정인 사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재판부 양해를 얻어 업무 조정할 경우 최대한 빠른 날짜가 7월 24일과 26일이라고 했다"며 "(증인신문)일정을 다시 조정해 보자"고 덧붙였다.

임종헌 UBS파일과 출력물에 대한 검증작업, UBS압수수색 절차의 위법성 여부, 여기다 증인신문 대상 중 현직 판사가 많다 보니 증인들의 재판 일정 조율 등의 문제까지 세 사람의 공판은 당분간 신속히 진행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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