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징역형·한국은 노상방뇨급 처벌…"성범죄자 신상 고지대상 확대해야"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가 인기다. 2013년 첫방송을 한 이 프로그램은 1인 가구가 혼자 사는 유명인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시청률 고공행진 중이다.
식을 줄 모르는 ‘나 혼자 산다’의 인기에 견줘 여성 1인가구는 불안하다. 지난달 28일 새벽 귀가하던 여성을 뒤따라가 주거침입을 시도한 조 모(30) 씨 강간미수 사건 이후 불안감은 커진다. “매일 다른 층에서 내리기”, “남성복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기”, “남성 목소리 녹음해두기” 등 온라인상 떠도는 ‘자취팁’까지 공유하며 스스로를 지켜온 1인가구 여성들을 위한 안전 대책이 시급하다.
◆ 안심귀가서비스‧성범죄자 신상공개 등도 ‘허점’
여성대상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현행 제도는 많다. 서울시가 2013년부터 실시한 여성 안심귀가서비스가 대표적이다. 2014년 서울시 전 자치구로 확대됐으며 지자체가 뽑은 요원들이 밤늦게 귀가하는 여성과 주거지까지 동행해준다. 주거침입 강간미수 사건이 발생한 신림동에도 사건현장 인근에 ‘여성 안심 귀갓길’이 있다. 그러나 피해 여성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피해자가 귀가한 오전 6시경은 운영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운동단체 ‘불꽃페미액션’의 한솔 활동가는 “안심귀가서비스는 운영시간이 제한적이고 심야에 유동인구가 많은 공휴일 또는 주말은 아예 운영하지도 않는다”며 “여성이 늦은 밤이 아니어도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현실을 고려해 서비스 운영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여성 안심귀가서비스의 운영시간은 월요일 오후 10~12시, 화~금요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다. 주말 및 공휴일은 운영하지 않는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가 발생하는 시간대는 2017년을 기준으로 밤 시간대(오후 8시~오전 3시 59분)가 40.9%로 가장 많았지만 오후 시간대(낮 12시~오후 5시 59분)에도 22.2%라는 적잖은 비중을 차지했다
재범 우려가 높은 성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신상공개제도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행법은 신상 정보를 권고 받은 성범죄자의 개인정보를 온라인상 일정 기간 공개하고 그가 사는 거주지 1km 반경 내 미성년자가 있는 가정 또는 교육시설에 우편으로 고지한다. 한솔 활동가는 “1인 여성가구 역시 미성년자 못지않게 범죄에 취약하다”면서 “성범죄자 신상 고지대상을 범죄에 취약한 다양한 계층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여성 강력범죄 전조증상 '스토킹'…처벌법 국회 표류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피의자는 5월 29일 추가로 공개된 인근 상가 CCTV 영상으로 피해 여성을 최소 5분 이상 쫓아간 정황이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일면식도 없는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할 목적으로 따라간 행위는 명백한 스토킹이라고 분석했다. 큰어머니와 살던 여고생을 스토킹하다 살해한 진주 안인득 방화사건, 딸들과 살던 전 부인을 스토킹한 끝에 살해한 등촌동 주차장 살인사건 등은 공통점이 있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가구였고 범행에 앞서 스토킹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현행법상 경범죄로 취급받는 스토킹은 기준이 모호해 피해 신고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처벌 역시 가벼운 벌금형에 그친다.
현행법상 스토킹은 경범죄 제3조 ‘지속적인 괴롭힘’ 항목에 해당돼 10만원 이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노상방뇨, 무임승차, 무전취식과 같은 처벌 수위다. 그러나 스토킹은 성폭력의 전조 현상이기 때문에 강력히 처벌해야 추가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범죄에서 규정하는 지속적인 괴롭힘 후 강간 등 성범죄를 저지르면 가중 처벌은 된다. 그러나 해외와 달리 스토킹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명확한 법은 없다. 박민성 법무법인 에이스 변호사는 “스토킹의 심각성은 2차 범죄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다”며 “스토킹 처벌법을 만들어 사전에 처벌해야 성범죄, 살인과 같은 2차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스토킹 피해실태 및 입법 쟁점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인기 배우가 스토커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1990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스토킹 방지법이 제정됐다. 이를 시작으로 1992년에 30개 주, 1993년에 19개 주가 스토킹 방지법을 도입해 현재는 50개 주 전역에서 스토킹을 중범죄로 보고 최대 징역형으로 처벌한다. 일본은 2000년 스토커 규제법을 제정했다. 일본 역시 징역 1년 이하, 벌금 100만엔(1000만원)까지 부과하는 등 한국보다 엄벌한다.
국회에서 스토킹처벌법은 1999년 처음 발의돼 20년간 12개 법안이 제출됐다. 20대 국회에서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6년 ‘스토킹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스토킹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부처 간 이견으로 제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남 의원이 발의한 스토킹법에는 ▲스토킹 행위를 즉각 중단시키는 경찰의 응급조치 ▲스토킹 피해자 업무환경 안정성 보장 ▲피해자 전담조사제 도입 ▲피해자 전담재판부 지정 등의 내용이 담겼다. 남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피해자의 고통은 커져가는데 언제까지 법안이 잠자게 할 건가”라며 해당 법안 입법을 촉구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다음날 발생한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으로 스토킹 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며 3년째 계류 중인 스토킹법 통과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남성의 여성 스토킹을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의 구애 행위쯤으로 보는 가부장적 사고 때문에 스토킹을 정의하는 것부터 시간이 걸린다"고 "스토킹법 국회 통과가 어려운 이유"라고 분석했다.
지속적인 스토킹 뿐 아니라 일회성 스토킹 처벌도 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신림동 사건도 신체 접촉이 없었기 때문에 피의자가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면 강간미수죄가 인정되기 어려울 수 있다. 지금까지 발의됐던 스토킹처벌법안들도 지속적 스토킹만 처벌대상으로 삼는다.
이수정 교수는 "스토킹 가해자는 들켰을 때 처음(일회성)이라고 주장하고 피해자도 처음 알았을 수 있지만 사전에 스토킹 행위를 여러번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 성범죄자는 주로 자신의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불특정 다수를 쫓아간다"며 "성폭력처벌법에 스토킹 자체를 처벌하는 조항을 둬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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