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얼룩진 캠퍼스②] 엄벌 피하는 온정주의…"대학 의지에 달렸다"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가 지난해 4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가운데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더팩트DB

교수 사회도 자성… "남성우월 학내 분위기도 개선해야"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폭력을 폭로하는 미투운동을 상징하는 해시태그는 ‘#미투’다. 이어 피해를 입지 않았거나 당장 피해사실을 고발할 수 없어도 용기 있는 제보에 힘을 더하겠다는 ‘#위드유(With you)’라는 해시태그도 등장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뀔 때가 됐다'는 ‘#타임즈 업(Time's up)’이라는 해시태그가 주목받는다. 연이어 발생하는 대학가 성폭력 사태를 맞아 피해 당사자를 비롯한 학생과 교수, 전문가는 세상이 바뀌기 위한 해답으로 대학당국이 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3개월 후 보복 두려움'에 시달리는 학생들

학생들은 파면을 가장 확실한 대책으로 꼽는다. 현행법상 교수에게 내릴 수 있는 징계는 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다. 사립학교는 강등 처분은 없다. 파면은 물의를 일으킨 교수를 강제 퇴직시킬 뿐 아니라 재임용이 5년간 불가능하고 연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줄이는 가장 강력한 처벌이다. 파면에 부담을 느끼는 학교는 중징계에 속하지만 교수가 다시 강단에 서는데 무리가 없는 3개월 정직을 남발한다는 것이 학생 측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성범죄 의혹이 불거진 서울대학교 교수 3명 중 시효가 지난 수의학과 H교수를 제외하면 사회학과 H교수는 3개월 정직 처분을, 서어서문학과 A교수는 교내 인권센터에서 3개월 정직을 권고 받고 징계위로 회부됐다. 지난해 4건의 미투 사건이 발생한 성신여자대학교도 1명에게 3개월 정직 처분, 1명에게 구두 경고를 내렸다.

학부생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임종주(필명 하일지)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가 지난해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기 전 그를 규탄하는 학생들이 대자보를 부착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고려대학교 K교수 파면 운동을 이끈 이송희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고려대분회 부분회장 역시 ‘솜방망이’ 처분을 지적했다. K교수는 대학원생에게 "나랑 자자"는 등 성희롱을 하고 강제추행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2018년 10월 파면됐다. 이 부분회장은 “특히 대학원생에게 지도교수란 소위 ‘랩(lab)’이라 불리는 연구실 안에서 권력의 정점이다. 이 학계에 평생 있겠다고 들어온 제자들이 지도교수를 거역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며 “학위를 받아도 누구의 제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 권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3개월 정직은 방학기간, 안식년과 별 차이가 없어 처벌 효과가 미미하다. 교수 직업 특성상 승진 불이익도 없는 실정이다. 이 부분회장은 "정직보다 무거운 처분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파면이 가장 확실한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 현직 교수의 속마음 “동료 챙기는 비굴한 온정주의”

교수 사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적지않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사립대 교수는 “징계위는 교내 위원회라 회부된 교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위원 대부분이 동료 교수라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챙기는 비굴한 온정주의가 만연하다”고 토로했다.

국가공무원법, 사립학교법상 교내 징계를 받은 교수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만일 소청심사위에서 징계위 처분보다 약한 수위로 결정나면 징계위원은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징계대상 교수가 학교 내 영향력이 있으면 징계위원의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실제 징계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는 그는 "이러한 징계위의 한계를 극복해야 교수와 학생 간 성범죄가 재발하지 않을 수 있다"며 “오로지 가해자의 혐의에만 집중해 공정한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징계위원의 익명성과 신변보호를 강화해야 한다. 징계위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학생 위원 선출을 의무화해 피해자 중심으로 심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대학교 재학생들이 지난달 30일 서어서문학과 A교수 파면을 촉구하는 동맹휴업을 실시했다. 일부 교수는 동맹휴업 소식을 듣고 휴강하거나 출석 확인을 하지 않는 형태로 응원했다. /A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 제공

대부분 가해자가 남성 교수인 여학생 대상 성범죄를 근절하려면 남성우월적 학내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역시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공립대 교수는 “권력을 가진 남성 교수에게 대학원생, 학부생, 여교수 순으로 성범죄 및 ‘갑질’에 노출된다"며 “지난해 미투운동 바람이 거세지며 학생의 성의식은 비약적 발전을 이뤘으나 정작 학교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미 벌어진 사건은 높은 수위의 징계로 처분하고 죄질이 나쁘면 학교에서 그치지 않고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앞으로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으려면 남성중심의 공동체 분위기 자체를 바꿔야 한다. 학생이 낸 용기를 외면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엄벌 얼마든지 가능…학교당국 해결의지가 관건

성폭력 교수를 엄벌할 법적 장치는 마련됐고 문제 해결은 대학 당국 차원의 강력한 징계 의지에 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3월 성폭력범죄와 성매매, 성희롱 등 교원의 성비위 징계시효를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사립학교는 교내 징계위에서 가해자를 임의로 처분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제 관할 교육청의 개입이 가능해졌다. 관할청에서 요구한 중징계를 내리지 않으면 교내 임용권자는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또한 징계를 심사하는 의결기관 체류기간을 기존 최대 60일에서 30일로 제한해 신속한 처벌을 강제했다. 불명확했던 사립대학 교원의 징계기준을 개선한 법안도 통과돼 10월 시행을 앞뒀다.

수년간 성폭력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활동한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문제는 사건이 발생한 학교의 해결 의지다. 학교가 (성폭력 사실을) 묻으려 한다면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교내 성폭력 피해자 특성상 경찰 고발보다 학교에서 해결하고 싶어 하는 사례가 월등히 많다. 그는 “교내 징계위는 피해 학생이 최후의 보루로 학교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교수와 학생이라는 최악의 갑을관계 속에서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점, 피해자가 만족하는 처분이 이뤄지지 않는 점을 고려해 징계 수위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학교 재학생 100여 명은 5월 30일 서어서문학과 A교수 파면을 촉구하며 동맹휴업을 실시했다. 사진은 관악구 서울대 캠퍼스 내 아크로폴리스 광장 앞에 집결한 동맹휴업 참여자들의 모습. /송주원 인턴기자

개정안에서 연장된 시효는 소급적용이 되지않는 한계도 있다.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서울대 수의학과 H교수는 징계 시효 만료로 징계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 2013년부터 동료교수와 학생 등 4명을 강제추행한 전북 모 대학교 교수 역시 시효가 지나지 않은 피해자 2명에 한한 공소사실로 기소됐다.

일각에서는 학내 성범죄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권력형 성범죄 특성상 상하관계에서 벗어난 후 고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김동주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최근 시효가 10년으로 연장된 점, 피고인 방어권과 법적 안정성 등을 고려했을 때 공소시효 폐지는 시기상조”라면서도 “국공립과 사립을 가리지 않고 가해자 처벌 강화를 위한 법안이 개정된 만큼 학교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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