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고 사건' 대입제도 근본 개혁해야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5월 22일.
5월 들어 특정 날짜로 기사를 시작하는 날이 잦다.
그도 그럴 것이 5월 23일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가 되는 날이자, 공교롭게도 김경수 경남지사의 항소심 5차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하기엔 필연같은 신기한 일이라 '인연설'(因緣說)을 믿는 입장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5월 22일도 그런 날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이기홍 판사는 쌍둥이 딸에게 시험문제와 정답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현 모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그런데 1심 결과가 나온 이날은 숙명여고의 설립일이자 개교기념일이다. 숙명여고는 1906년 5월 22일 순헌황귀비 엄씨가 설립에 관여한 명신여학교의 전신으로, 명신여학교는 이후 숙명여학교로 개명했고, 숙명여자중, 숙명여고, 숙명여대로 나뉘어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1심 재판부가 22일 현 씨에게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함에 따라 숙명여고는 113년의 역사에서 꽤 치욕스런 개교기념일을 맞은 셈이 됐다.
이기홍 판사는 "교육현장의 신뢰가 떨어졌고, 성실하게 근무한 다른 교사들의 사기까지 바닥에 떨어졌지만, 피고인은 계속 범행을 부인하고 증거를 인멸한 정황도 있다"며 중형을 선고한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대학 입시에서 정기고사 성적 비중이 높아졌음에도 공정관리 시스템이 사전에 마련되지 않았던 점도 이 사건 원인 중에 하나"이고, "쌍둥이 딸이 이 사건으로 퇴교되는 등 피고가 가장 원하지 않았을 결과가 이미 발생한 점 등을 감안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현 씨는 최후진술 등을 통해 "의혹처럼 유출 기회만 노린 비양심적인 사람이 아니다"거나 "아이들에게 성실함을 강조해왔고, 노력없는 실적의 무가치함을 이야기 해왔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쌍둥이 딸도 4월 23일 열린 아버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검사가 단기간에 성적이 크게 오른 비결을 묻자 "특별한 성적 상승의 비결은 없다. 교과서에 나온 대로 공부했을 뿐"이라며 "실력으로 성적이 올랐는데 학생과 학부모들이 시기 어린 모함을 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숙명여고 학부모들은 "학생들이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없어졌다. 친구들이 대입의 경쟁자일 뿐이지 진정한 친구가 되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돼 상처와 트라우마가 됐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번 기회로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의 단점들이 밝혀진 만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선고 다음달인 23일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회원들은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은 사필귀정으로서 입시비리에 경종을 울린 공정한 판결"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이 사건의 본질은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우리나라 대입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현재 대입은 대부분 수시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하는데, 수시는 내신 성적이 당락을 좌우하기 때문에 내신 경쟁이 치열하다 못해 살벌하다는 것. 여기다 시험 관리감독에는 한계가 있고 허술하다 보니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공사모 이종배 대표는 "교육당국이 시험 관리 및 감독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실효성 없는 탁상 행정에 불과하다"며 "공정한 입시제도 확립을 위해 수시와 학종을 폐지하고 수능 위주로 대입정책을 전환하라"고 교육부에 촉구했다.
지난 14일 검찰은 현 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하면서 "범죄가 중대하고 죄질이 불량하다"며 "가장 공정해야 할 교육분야에서, 현직 교사로 일하며 개인적인 욕심에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일회적이 아닌 2년 6개월 간 지속적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 때 모교의 한 담임 선생님이 떠올랐다. 이 교사도 같은 학교를 다니던 본인의 딸 시험지 답안을 몰래 고치다 들켜 학교에서 쫓겨났다. 이후 입시학원에서 강의를 하다 다시 국제중 교사로 복귀했고, 제자들 결혼식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버젓이 참석했다. 물론 한 번의 실수로 그 사람 인생의 전부를 평가할 수 없겠으나 교사로서 부적절한 행위를 했음은 분명하다.
이번 칼럼의 끝을 숙명여고의 교화로 갈음하려 한다. 숙명여고의 교화는 은방울꽃인데 행복과 부덕을 의미한다. 부덕(婦德)은 부녀자의 아름다운 덕행을 뜻하지만, 앞의 한자가 달라지면(不德) 덕이 없거나 부족함으로 바뀐다.
현행 법에 따르면 이번 사건이 쌍둥이의 수시전형이 시작된 뒤 확인됐다면 사실로 밝혀졌더라도 대학 입학이 취소되지 않는다. 그랬다면 이들 때문에 누군가는 해당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고 더 큰 피해가 양산됐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은 만큼 지금이라도 부덕에 걸맞는 숙명의 명예를 되찾기를 바란다.
더불어 교육당국은 다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바닥으로 떨어진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기를 기대한다.
송은화 happ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