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지시로 위안부 소송 보고서 작성…"피해자 제대로 보상받길 바라"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증언대에 선 판사는 낯설었다. 눈물을 흘리는 판사도 낯설었다. 증언을 이어가려면 휴지가 필요했다. 짧은 정적과 몇번의 주저함 끝에 증인은 입을 열었다.
"언론보도를 보시면 오해할 수 있겠지만 제가 그런 생각으로 작성했을지 한번쯤 생각해주세요.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아직 재판 중인데 재판에 부담이 되거나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는 사법농단에 연루돼 재판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고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보고서를 쓴 현직 부장판사다.
임종헌(60)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현직 판사가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위안부 배상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재판 개입 의도는 몰랐다고 증언했다. 그는 “국민으로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눈물을 보였다.
임 전 차장이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일은 위안부 소송 건이 유일무이했다고도 진술했다.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준비 중이었다. 평소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던 임 전 차장이 처음 비판적 입장을 보인 게 강제징용피해자 승소 취지 파기환송 건이었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임 전 차장 재직 당시 기획조정실 심의관이었던 조모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는 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 전 차장의 공판에 출석해 이같이 밝혔다.
검찰 측은 증인에게 2015년 쓰인 ‘위안부 손해배상 판결 보고서’를 제시하며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작성했는지 물었다. 조 판사는 “임 전 차장이 차장실로 호출해 ‘꽤 어려운 사건이니 언론보도 등을 참고해 검토해봐라’며 지시해 작성한 문건”이라고 답했다.
조 판사가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쓴 보고서는 ‘시나리오1, 2, 3’ 등 일본 측을 상대로 건 손해배상 소송에서 위안부 피해자가 패소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기재됐다. 보고서에는 법원행정처가 위안부 피해자가 승소하면 사회적, 외교적으로 큰 파장이 예상돼 이를 막으려 했다는 정황이 포함됐다. 그 수단으로는 원고의 소 자체를 각하하거나 강제징용 건과 같이 청구권 소멸 등을 고려했다. 위안부 피해자의 경우 강제징용건과 달리 한일청구권협정 대상이 아니라 청구권이 보존된 상태였다. 임 전 차장은 보고서 작성을 지시할 당시 위안부 피해자 역시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오인한 사실도 함께 알려졌다.
임 전 차장 변호인은 중요한 사안이라 “어려운 사건”이라고 강조했을 뿐이지 대법원 판결에 방향을 제시하거나 재판에 직접 개입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임 전 차장은 현직에 있을 때 다양한 법적 사건에 관심이 많았다”며 “위안부 배상판결 역시 이러한 관심으로 증인에게 ‘뉴스 보고 알아봐라’ 정도로 검토를 지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판사는 “임 전 차장이 사건에 관심이 많은 것은 맞다. 그러나 제가 기억하기에 검토를 지시한 것은 위안부 배상판결이 유일하다”고 했다. 또한 조 판사는 임 전 차장이 위안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한일관계가 얽힌 문제에는 대법원 판단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회상했다. 조 판사는 “평소 임 전 차장은 대법원 및 대법관을 매우 존중하던 사람”이라며 “유난히 이 건은 대법원 판결을 문제 삼아 뜻밖이었다”고 했다.
증인신문 내내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였던 조 판사는 최후 진술에서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는 “보고서를 작성하면서도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으로 가득했다”며 “법원행정처 소속으로서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 판결에 대응방안을 준비해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 국민으로서 어떻게 위안부 배상 판결에 개입할 생각을 할 수 있겠냐”며 “지금이라도 피해자 분들이 제대로 보상받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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