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취지 '다양성'살릴 혜안 찾아야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2일 김태흠, 윤영석 등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국회 앞 삭발식이 나경원 원내대표 삭발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글로 옮겨가며 삭발 여파가 커지고 있다.
당초 이 삭발식은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좌파독재정부의 의회민주주의 파괴 규탄'을 위한 것이었으나, '나 대표님이 이번에 삭발해 주신다면 이제부터 민주당을 버리고 내년 총선 4월 15일에 무조건 나 대표의 자민당을 지지하겠다'는 청원 내용으로 변질되며 다소 우스꽝스러운 꼴이 됐다. 이 청원에는 모두 4만7003명이 동의했다.
이들보다 앞서 삭발식에 나선 사람들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로스쿨 졸업생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7기 졸업생 양필구씨와 원광대 법전원 5기 졸업생 이경수씨는 4월 26일 대한변호사협회가 제8회 변호사 시험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연 집회에 맞서 삭발했다.
이날 대한변협은 무조건 변호사 숫자를 늘릴 것이 아니라, 유사 직역을 정리해 변호사 고유 업무 범위를 넓히는 방안부터 마련한 뒤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바로 옆에서 집회를 진행한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및 법학전문대학원 원우협의회 회원들은 변호가가 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전제가 잘못된 것이라면서, 대한변협의 이날 집회가 변호사 기득권과 특권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번 제 8회 변호사시험에 5번만에 합격한 한 로스쿨 졸업생은 "죽다 살아났다"면서 기쁨을 격하게 표현했다.
변호사 시험법 제7조는 변호사시험 응시기간을 로스쿨 석사학위를 취득한 달의 말일부터 5년 내 5회로 제한하고 있어, 그는 이번에 합격하지 못했으면 이른바 로스쿨 낭인이 될 뻔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이번 시험에서 불합격했다. 그래도 이번이 5번째가 아니라 아직 남은 기회가 있어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20점차 불합격이에요. 본격적으로 공부한 시간이 짧았어요. 또 열심히 준비해 보려구요."
실제로 변호사시험에 다섯 번 탈락해 변호사 시험에 더이상 응시할 수 없게 된 탁지혜 씨는 5탈 규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2018년 5월부터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오탈누나'로 불리고 있는 탁 씨의 구독자는 1800명에 달한다.
그녀는 자신을 '낭인 전문 유튜버'라고 소개하며, 로스쿨 생활 간접체험, 연세대 법학과 A+학점이 부질없다 느껴진 이유, 시험과 평가에 대한 의문 등 로스쿨과 법 관련 다양한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교육부를 출입한 2016년 봄. 로스쿨 입학 과정에 대한 의혹이 잇따랐다.
당시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고시생들의 시위가 꽤 격렬히 진행됐는데, 여기에 로스쿨 입학생들의 이른바 '금수저' 논란이 불거지자 교육부는 2015년 12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전국 25개 로스쿨 입학.선발과정을 전수조사했다.
교육부는 이 결과를 2016년 5월 2일 발표했는데, 입학전형에서 자기소개서 작성 기준이 대학별로 달라 기재를 금지하는 사항이 차이가 나고, 기재금지를 고지하지 않는 대학도 있어 부모.친인척 등의 성명, 직장명 등 신상이 기재된 사례가 일부 발견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재금지를 고지했지만 기재해 규정 위반으로 부정행위 소지가 인정되는 수준의 사례는 1건이었고, 기재금지 미고지로 부정행위라고 볼 수 없는 사례는 4건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5건 모두 법학적성시험과 학부성적, 면접, 영어성적 등 다양한 전형요소와 다수의 평가 위원의 평가가 반영됐기 때문에 자기소개서의 신상 기재와 합격과의 인과관계는 확인할 수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할아버지, 아버지 등 친인척의 성명과 재직시기를 특정하지 않고, 대법관, OO법원 판사 등을 지냈다는 기재를 했던 학생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교육부는 처벌은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지원자의 부정행위로 인정될 소지가 있더라도 합격취소는 비례의 원칙, 신뢰보호의 원칙, 취소 시 대학의 과실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문제점 등의 법적한계를 갖는다는 것이 법률자문의 공통된 결론이었다고 했다.
논란 이후 한 달이 지나 조사를 직접 진두지휘했던 교육부 한 간부를 만나러 갔다.
이 과장은 '로스쿨 입학실태 조사를 진행하면서 뭘 느꼈냐'는 질문에 "이번 전수 조사를 위해 교육부 직원들이 로스쿨 입학생들의 자기소개서 6000여 건을 직접 다 살펴봤는데, 사회적 자본의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발 과정에서 정성적으로 계층격차가 나기 때문에 사회적 자본이 많은 학생이 유리할 수 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해 적잖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 간부는 교육부가 로스쿨 도입 과정에서 등록금 통제와 선발제도, 이 두가지를 놓쳤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규제장치를 미리 만들지 못하고 대학 자율에 맡겨버린 것이 뼈아픈 실수라고 덧붙였다.
로스쿨, 변호사시험 합격률, 변시 합격률에 따른 전국 25개 로스쿨 순위, 변호사 수, 유사 직역 정리 및 변호사 고유 업무 범위, 더 나아가 로스쿨 폐지와 사법고시 부활.
변호사시험을 자격화로 바꾸면 지금과 같은 논란들이 해결될까? 변호사 수를 제한하고 유사 직역을 정리해 변호사 고유 업무 범위를 정확하게 정하면 대한변협 소속 변호사들은 더이상 집회를 열지 않을까? 교육부가 전국 25개 로스쿨의 선발제도를 통제하면 실력없는 금수저들의 합격을 막을 수 있을까?
사법시험 폐지, 로스쿨 도입, 변호사시험 합격률 등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였을까를 고민하던 찰나 전남대 로스쿨 졸업생 양필구 씨의 말이 떠올랐다.
"주변에 법조인이 되기 전과 후가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선.후배들 중에는 종전과 달리 로스쿨 입학 정원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고 했다.
여측이심(如厠二心).
로스쿨이 도입된 본래 취지는 다양한 경험과 전공을 가진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초기에는 로스쿨마다 특성화 된 부분을 강조하며 학교를 홍보했지만 이제는 로스쿨별 합격률 순위가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2009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다.
각자의 입장이 다르고 바라는 바가 다르겠지만, 사법농단 사태에 따른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만큼 기존 로스쿨 제도를 보완하고 해결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혜안과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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