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기독교대학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법

숭실대 성소수자모임 이방인과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 등이 지난 3월 숭실대의 현수막 설치 불허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방인 제공

숭실대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 J씨…"현수막 하나도 달 수 없어요"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지난 3월, 대학 캠퍼스는 새내기를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신입생들이 호기심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방문을 두드리길 기다리는 동아리는 더욱 그랬다. 개강도 하기 전인 2월부터 신입생을 환영하는 현수막과 각종 포스터를 제작하기 바빴다. 숭실대학교 성소수자 소모임 '이방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숭실에 오신 성소수자·비성소수자 모두를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현수막을 만든 후 설치인가를 받기 위해 학생서비스팀을 찾았다.

학생서비스팀은 "기독교 정신을 기반으로 설립된 종합대학에서 성소수자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은 허락할 수 없다"라고 설치 불허를 통보했다. '성소수자'라는 문구가 문제였다. 이방인은 페이스북 등 SNS 공식 계정에 "종교의 자유를 명분으로 한 성소수자 혐오이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비합리적 차별"이라고 성명을 발표하며 반발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4월말, 따스한 봄기운과 시험기간이라는 긴장된 분위기가 공존하는 서울 동작구 숭실대 캠퍼스에서 이방인 부대표 J씨를 만났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시험기간이라 수면부족과 카페인중독으로 죽어가는 대학생 J라고 합니다."

J씨는 테이블에 놓인 약봉지를 보고 취재진인 걸 알았다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인터뷰 직전 "몸살로 잠깐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짧은 통화를 기억할 정도로 사려 깊은 첫 인사였다.

◆ 현수막을 불허한 이유 "학교 정체성"

'이방인'은 매학기 초마다 동아리 홍보를 위해 현수막을 걸고 싶었지만 번번이 허가를 받지 못 했다. 그런데 2018년 2학기 때는 어쩐 일인지 허가가 나왔다. 이번 학기에는 별 걱정을 하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도 ‘할 수 있겠지’ 싶었는데 아니었어요. 저희 활동가 5명이 학생서비스팀에 허락을 받으러 갔는데 ‘성소수자, 비성소수자라는데 비성소수자는 뭐냐’고 하셨어요. 학교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현수막을 달 수 없다고 했습니다. 10분 정도 대화를 했지만 합의점이 보이지 않아 결국 빈손으로 나오고 말았어요."

학교 측 불허에 이방인은 SNS에 학교의 차별적 행위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인간 현수막’ 퍼포먼스를 하기로 결심했다. 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에 요청해 퍼포먼스에 동참할 지원자를 모았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3월 5~6일 벌인 퍼포먼스에는 언론의 관심도 컸다. 현수막 문구는 ‘블랙 코미디’ 느낌이 나도록 썼다. ‘세상도 새까맣고 퀴어 속도 새까맣고’ 같은 식이다.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마냥 우울하거나 과격하게만 적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J씨는 말했다. "학교가 소유한 건 시설물이지 저희 몸은 아니잖아요."

◆ ‘인간 현수막’ 한 달 후 "기초적 대화도 거부"

인간 현수막 퍼포먼스가 마무리되자 언론의 관심도 사라졌다. 학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반응은 둘째치고 "기본적인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다"는 게 J씨의 설명이다.

"학교는 저희가 정식 인가를 받은 중앙동아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해요. 현수막 사건 때도 어떠한 사유로 불허하는지 공문을 요청했지만 ‘중앙동아리가 아닌 동아리 때문에 공문을 작성하는 법은 없다’고 했어요. 매번 똑같아요. 2015년 인권영화제 상영을 위해 대관을 신청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냥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니 허락할 수 없다는 말만 할 뿐이었죠."

이방인은 2015년 성소수자의 결혼식 과정을 담은 다큐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강의실을 대관했다. 그러나 상영 전날 학교 측은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행사는 앞으로도 일체 허용할 수 없다’는 공문을 내며 대관을 취소했다. 학생들은 학교 본관 앞에서 야외 영화제를 치른 후 "성소수자란 이유로 학교가 부당하게 차별했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올해 1월 7일 숭실대가 건학이념을 이유로 성소수자 행사 대관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인권침해라며 시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이에 대답하듯 두달 뒤 이방인의 현수막을 불허했다.

숭실대 성소수자 모임 이방인의 깃발/이방인 제공

◆ 성소수자 혐오 만연한 대학가

숭실대는 1897년 10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배위량이 개설한 학당이 그 모체다. 기독교를 학풍의 근간으로 삼고 교직원 역시 기독교 신자를 중심으로 채용한다. 지난해 12월 인권위의 고용차별이라는 권고가 내려졌지만 학교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완고한 분위기 탓에 성소수자 학생들은 더욱 힘들다. "동성애자를 보호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시체성애, 소아성애와 같은 범죄도 다 허용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받는다.

"강의 중 (동성애를 허용하면) 수간까지 허용해야 하냐는 말도 들었어요. 동성애는 이성을 가진 인간이 사랑하는 것이지 시체성애나 수간, 소아성애처럼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가하는 ‘범죄’가 아니에요. 범죄를 사랑이라는 감정과 같은 영역으로 보는 건 말이 안 돼요."

애초 기독교대학을 선택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성소수자 환경이 상대적으로 나은 일반 대학에 진학했으면 되지않느냐는 얘기다. 그는 "한국 대입 특성상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선택지가 있다고 해서 학교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선택이라는 단어조차도 마치 소수자에게 권리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말이에요. 그런 논리라면 이동장애인은 장애인 지원 시설이 완벽한 건물을 선택하면 돼요. 하지만 이건 선택지가 있어서 택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게 과연 개인의 선택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요?"

숭실대와 같이 종교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대학이 아니라도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인권위 권고까지 무시하지는 않지만 성소수자의 애환은 어디나 비슷하다.

"다른 학교는 현수막과 전단지 부착 인가는 쉽게 내준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누군가 번번이 현수막을 설치한지 하루 만에 떼어간다고 해요. 성소수자 이런 문제를 떠나서 현수막 만들고 설치하는 것도 다 돈이잖아요? (웃음) 명백한 도난인데 학교 측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방치한다고 해요."

◆ 이름, 나이, 학과 묻지않는 수평적 모임

차별과 저항이 일상화돼서인지 '이방인' 회원들은 인권의식이 높다. 모임의 주요활동도 인권 학습이다. "성소수자와 인권은 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안에도 성적 지향과 정체성은 다양하다. 자칫하면 무지는 타인의 정체성을 배려하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 신입회원이 들어오면 기초 스터디부터 하는 이유다. 나아가 올바른 정치를 탐구하기도 하고 장애인 등 다른 사회적 약자 인권도 공부한다.

이방인은 2017년 서울대학교 큐이즈, 중앙대학교 레인보우 피쉬 등 타 대학 성소수자모임과 연합해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사업을 했다. 이외에도 학교를 벗어나 인권을 수호하는 사회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한다.

"올해는 지난달 8일 세계여성의날 행사에 참석하고 각 대학 페미니즘 모임으로 구성된 마녀행진에도 동참했어요. 인권 행사는 마음이 맞는 회원끼리 모여 참여하는 편이에요. 딱히 인권 활동을 하자고 모인 동아리는 아닌데 다들 관심이 많아요."

이름과 나이, 학과를 밝히지 않고 닉네임으로 활동할 수도 있는 것도 이방인의 특징이다. 수직적 관계 없이 서로 존대말을 쓴다. 성적 정체성도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수평적이고 편견 없는 관계를 위해서다.

"회원들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해요. 정모 장소를 정할 때 채식주의자가 있는지, 성중립적 화장실이 필요한 회원이 있는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지, 반려견 허용이 되는지를 꼭 염두에 둬요."

◆ 성소수자가 행복한 사회 위해 "내일 죽어도 아쉽지 않게"

시대가 바뀌며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 내 성소수자 소모임의 목소리도 해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하지만 J씨는 "그래도 후배들에게 일단 미안하다"라고 했다.

"입학을 환영한다는 현수막 하나도 걸어줄 수 없는 선배라 미안해요. 생각을 멈추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로서 살아남은 것 자체만으로 이미 많은 일을 해냈고 잘 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노을이 질 무렵 시작됐던 인터뷰는 어두운 밤이 돼서야 끝났다. 기분 좋게 불던 봄바람은 어느 새 쌀쌀한 밤기운으로 바뀌었다. J씨는 차가워진 밤공기에 "괜히 저 때문에 몸살만 더 심해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라고 걱정했다.

이어 그는 무거운 전공서적, 레포트를 잔뜩 끼운 파일철, 노트북을 주섬주섬 챙겨 일어났다. 바로 전날 밤에도 밤을 샜다는 말이 기억났다. 시험기간에 잡은 인터뷰 일정은 더 부담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사는 게 제 좌우명"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저도 원래 소시민적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살다 보니 성소수자가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더라고요. 제가 저 자신으로 오롯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그날까지 내일 죽어도 아쉽지 않게 살고 싶어요."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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