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화의 낭중지추]사법부, 주진우가 틀렸다고 증명하라

4월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제56회 법의날 기념식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문무일 검찰총장, 박상기 법무부 장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김명수 대법원장/뉴시스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보여줘 국민 신뢰 되찾아야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4월 25일은 법의 날이다.

국민의 준법정신을 앙양하고 법의 존엄성을 진작하기 위한 국가기념일. '법의 날' 기념식은 법조계의 가장 큰 행사로 법무부와 대한변호사협회가 주관하고 있다.

이날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6회 법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기념사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농단 사태로 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현 상황을 의식한 듯 "오늘날 사법부 현실과 국민이 염원하는 사법부 모습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며 "사법부 기능의 본질이자 존재 이유인 좋은 재판 구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사법부가 어떠한 사회세력이나 집단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아니한 채 헌법의 명령에 따라 오직 법률과 양심에 의해 투명하고 공정한 좋은 재판을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국가기관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통제하고, 국민의 권리구제라는 헌법적 책무에 충실할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때 국민들도 ‘법의 지배’를 신뢰하고 법을 준수하게 될 것"이라며 사법부 구성원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좋은 재판'을 위한 사법제도의 설계와 실행을 위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해달라"면서 사법 개혁에 대한 국회의 논의를 촉구했다.

사법농단 사태는 2017년 3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출발됐고, 이 사건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월 11일 구속기소되면서 일단락됐다. 대법원장이 구속된 것은 71년 헌정 사상 초유의 일로 사법부의 치욕이라는 차원을 넘어 국가적인 비극이라 하겠다.

주진우 기자는 자신의 책 주기자의 사법활극에서 나를 지킬 법률 지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진은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이 2017년 4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 추적기를 담은 도서 끝나지 않은 전쟁의 출판기념회를 연 가운데 언론인 주진우(왼쪽)와 김어준이 인사하고 있다./더팩트 DB

2015년 발간된 주진우 기자의 책 '주기자의 사법활극'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가?' 그렇지 않다.

'정의가 승리한다?' 안 믿는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더 안 믿는다.

'선이 악을 이긴다?' 이제 더이상 순진하지 않다.

'죄 안 짓고 살면 된다고?' 무식한 생각이다.

불평등한 법치국가, 불공평한 민주국가에서 내 안전은 내가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지킬 법률 지식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쟁취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룰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어떠한 성역도 있을 수 없다고 배웠지만, 오직 법과 원칙, 증거에 입각해 이뤄지는 재판이 얼마나 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이 사법농단 사태일 것이다. 살다보면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소송 등 법으로 사안을 해결해야 할 상황에 놓여질 수도 있다. 이 때 국민들은 판사들이 공정한 재판을 해줄 것을 믿고 맡길 수 있을까?

서울고등법원 형사 2부 차문호 부장판사는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항소심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은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 조작을 벌인 혐의로 1심에서 법정 구속됐다가 풀려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석방 후 첫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더팩트 DB

다행인 점은 사법권위가 최악으로 추락한 가운데 법원 내부에서 자정 작용의 움직임이 조금씩 보인다는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형사 2부 차문호 부장판사는 김경수 경남지사의 항소심 첫 공판 시작 전 "이 사건에 어떤 예단도 갖지 않으며 공정성을 잃지 않고 재판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차 부장판사는 25일 3차 공판까지 재판을 최대한 공정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김 지사 측과 검찰 측 의견을 모두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고, 3번째 공판에서는 재판 중간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결정이 필요한 경우 주심 및 배석판사와 각각 2차례와 4차례에 걸쳐 논의한 뒤 판단했다.

일반적으로 합의부 사건에서 재판장인 부장판사가 주심 및 배석판사와 재판 중에 이렇게 수 차례 논의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변론종결 이후 판결을 어떻게 내릴 것인지에 대해서는 3인이 모두 모여 서로 평의과정을 거쳐 판결을 선고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심리가 진행될 때마다 최소 3~4차례 이상 이야기를 나누는 재판은 흔한 경우는 아니다.

이는 앞서 1심 재판을 맡았던 성창호 부장판사가 김 지사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한 것과 관련해 이례적이라는 지적을 받은 것을 의식한 행동으로 보인다. 항소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독박 비난을 듣진 않겠다는 취지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성 부장판사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2년간 비서실 등에서 근무했던 이력 때문에 김 지사에 대한 선고가 이른바 '양승태 키즈'로 보복성 재판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실제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돼 현재는 재판에서 배제된 상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5부 박남천 부장판사도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은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보석심문기일에 출석하고 있다./남용희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5부 박남천 부장판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23일 3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양 전 원장을 비롯한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측 변호인들이 "증거기록을 (열람) 복사해 봤더니, 일부 누락된 것이 있어 보인다"며 검찰 측에 누락된 부분의 증거기록까지 모두 제출해 달라고 요청하자, 검찰 측에 변호인측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했다.

검찰 측은 "일부러 숨기지도 않았고 충분히 기록을 제공했는데, 어떤 증거에 대한 증거기록이 누락됐는지 특정할 때 (증거기록을)제출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지만, 박 부장판사는 "검찰 측에 수고로움을 더 끼친 것 같지만 일단 재판 진도를 나가야 되니 협조해 달라"고 밝혔다. 변호인 측이 매번 기일마다 검찰측에서 (증거기록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하면 재판 자체가 진행되지 않을 것을 우려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변호인 측이 제기한 공소장 일본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주의해줄 것을 검찰 측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표현에 주의해 달라"고 밝혔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 측은 공판 첫 준비기일부터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은 공소장 변경으로 치유될 수 없다"면서 "공소장 변경이 아닌 기각 판결을 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24일 강다니엘 측이 소속사 L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 위반 가처분신청 재판을 진행한 서울중앙지법 민사 51부 박범석 부장판사도 LM 변호인이 강다니엘과 관련된 배후 관계에 대해 설명하려고 할 때 마다 "서면으로 자료를 받았으니 참고만 하겠다"며 이번 분쟁의 핵심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법농단 사태로 여러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들은 법원이 기본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됐다. 모두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그리고 이런 사법부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어서 재판부가 여론이나 언론을 의식해서 일시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판사들이 다시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 대법원장은 법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들은 법의 지배 대상이 아닌 주권자로서 법치주의를 온전히 이루어낼 주체"이며 "법조인들은 법치주의 실현을 위해 국민들로부터 일정한 역할들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국민과 소통하며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국민들 앞에 보여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 말대로 다시 법원이 국민들 앞에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증명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될 때 국민들 역시 스스로를 법의 지배 대상이 아닌 주권자로서 법치주의를 온전히 이루어낼 추체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가능하면 그 시기가 너무 늦어지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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