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은 변시 자격시험화 촉구 의견서 제출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송주원 인턴기자] "후배 숨통을 조이는 기득권의 밥그릇 챙기기, 선배님들은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합니다." "후배 분들 사정 가슴 아프지만 유사직역 통폐합 전에 합격자 수부터 늘릴 수 없습니다."
26일 제8회 변호사시험(이하 변시) 합격 발표를 앞두고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와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이하 법실련) 등이 격돌했다. 경쟁 과열화로 로스쿨 도입 취지에 어긋난 변시를 자격시험화 하자는 로스쿨 학생 측과 무분별한 신규 변호사 배출 지양을 위해 합격자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변협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변시 자격시험화를 주장하는 로스쿨 재학생 40여 명은 22일 오전 11시 서울시 서초구 변호사회관 앞에서 변호사시험 자격시험화 촉구 및 대한변호사회 규탄 집회를 열고 "로스쿨 재학생 3300명의 인권은 없다. 변협과 결탁한 법무부는 변시에서 손떼라"며 이같이 말했다.
현 변시 제도는 2010년 제1회 당시 성적 분포, 평균점수 등을 고려해 결정된 총점 720점을 기준으로 1451명을 합격시킨 이래 매년 기준점수를 정해 합격자 수를 1500명 정도로 조절한다. 제7회 시험에 응시한 수험생은 제1회 합격 기준점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아도 떨어지는 등 제도 운영의 비합리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전남대 로스쿨 7기 재학생 양필구 씨는 "변협은 (변시) 합격자 수가 늘어나면 실력 있는 변호사 배출이 어렵다는데 이것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라며 "시험 점수가 실력이라면 여기 계신 선배님들이 재학생들보다 점수 더 낮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 씨는 "이제는 유사직역이 소송대리권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변호사 수를 늘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며 "기득권의 밥그릇 사수를 위해 후배들 숨통을 조이는 것"이라고 했다. 유사직역이란 법무사· 변리사·세무사·행정사 등 법률유사직역에 있는 직업군을 말한다.
강원대 로스쿨 재학생 한상규 씨는 "변호사와 유사직역 종사자 등 공급은 많지만 정작 국민은 지적재산권, 노동, 조세 등에 전문 지식이 있는 변호사를 찾지 못하고 높은 수임료 때문에 법률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며 "변시 합격자 수 통제로 국민이 원하는 분야 공부는 하지 못하고 시험에만 매달린다. 사법시험의 폐단을 그대로 밟고 있다"고 주장했다.
변협은 바로 옆에서 법조유사직역 통폐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변시 합격자 수 증원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찬희 변협 회장은 "옆에 계신 후배 분들의 답답한 마음은 이해한다"며 "그런데 후배 분들이 그토록 꿈꾸는 전국의 변호사들이 각자 사무실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목격한 적 있느냐"고 물었다.
변협에 따르면 2019년 현재 법무사는 6869명, 변리사는 3271명, 세무사는 13194명, 공인노무사는 4419명, 행정사는 32만7227명, 관세사는 1970명에 육박한다. 이에 따라 변호사 1인당 맡게 되는 소송 건이 매년 감소해 자영업자와 같이 ‘경기 불황’에 시달린다는 입장이다.
이 회장은 "나는 지난 변협 회장 선거 당시 전국을 돌며 봤다. 지금 당장 합격하는 것보다 법조계 상황이 나아지고 로스쿨이 바로 서는 것이 우선"이라며 " 유사직역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변시 합격자 수를 상향 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발언이 마무리될 무렵 로스쿨 재학생 측은 "선배님들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왜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십니까"라고 소리쳤다. 이에 이 회장은 "법조인으로서 첫 약속이 경청인데 지금 그 약속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이 발언하는 동안 양 씨는 변시 자격시험화를 촉구하는 의미로 삭발을 하기도 했다.
김용주 울산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바로 옆에 로스쿨 학생들이 나와 있는데 여기(변협) 에도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있다"며 "정부가 변호사를 대거양성하고 국선변호사를 법원과 검찰청 관할 아래 두는 등 ‘변호사 죽이기’를 하는 시국인데 당장 합격할 생각만 하는 태도에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법무부는 최근 사형․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혐의를 받는 피의자 국선 변호인 선정을 법률구조공단이 담당하도록 했다. 변협은 지난 4일 "결국 법무부가 피의자 변호와 기소를 모두 담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성명을 낸 바 있다. 김 회장은 "정부가 법조를 잘 이끌어 나갔으면 이럴 일도 없었다. 나라고 후배 분들 심정을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에 재학생 측에서 "몰라서 나왔다"는 외침이 들리기도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같은 날 오전 10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관한 의견서’ 법무부‧교육부 제출 기자회견을 열고 변시 자격시험화를 주장했다.
의견서를 직접 쓰고 법실련․원우회 집회를 직접 참관한 오현정 민변 변호사는 "현 제도상 변시 합격자는 기존 법조인 위주로 구성된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가 발표 당일 인위적으로 정한 1500명 내외에서 나온다"며 "기득권으로 신규 배출 인원을 통제하는 숫자 통제의 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오 변호사는 "고시 합격에 매몰된 ‘사시 낭인’, 폐쇄적인 사법연수원에서 성립된 엘리트의식 등을 변모시키기 위해 생긴 로스쿨 취지에 위배된다"며 "시민 일상 곳곳에 법률서비스가 제공되는 법치주의 사회를 위해 (변시) 자격시험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로스쿨은 법학 이외의 학문을 전공으로 이수한 학부졸업생을 대상으로 실무 위주의 법률 교육을 시행하는 법학전문대학원으로 2009년 국내에 설립돼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되며 변호사 지망생이 법조계에 입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변시가 됐다. 그러나 합격률이 2012년 제1회시험 87.25%(1451/1663명)에서 지난 해 제7회시험 49.35%(1599/3240명)으로 급격히 하락하며 변시 자격시험화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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