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출석 이팔성 "MB 도움 기대하고 돈 줬다"
[더팩트ㅣ서울고등법원=송은화 기자] 서울고등법원 제303호 소법정.
303호 법정은 원래 좌석 34석이 마련돼 평소라면 이 이하의 사람들이 법정 안에 들어올 수 있지만, 3월 15일 이후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2시 5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이 진행되는 날에는 좌석 34석, 입석 20석 등 50명이 넘는 사람들로 가득찬다.
일반적으로 첫 줄은 검사나 변호인, 피고인의 관계자 등이 앉기 때문에 두번째 줄부터 일반인들이 앉을 수 있고, 출입 기자들 좌석 등을 제외하고 나면 30명 남짓한 인원만 법정에 들어갈 수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13일 홈페이지를 통해 '주요사건(형사) 방청안내[2019.3.15~2019.4.3 공판기일]' 제목으로 이 전 대통령의 재판 방청권을 배부한다고 밝혔다. 서관 2층 4번 법정출입구 현관 앞에서 재판 시작 30분 전인 오후 1시 35분부터 선착순으로 교부하고, 좌석-> 입석 순서로 좌석배정은 '임의적'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서는 재판이 열리는 매주 수,금요일 마다 청사 건물 2층 4번 법정출입구 현관 앞에서 대기해야 하는데,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5일은 유달리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대다수는 이 전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로스쿨 학생, 기자 등이 섞여 있었다. 이 중 이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는 5일 서로 인사를 나눈다는 명목으로 앞에 줄을 선 지인들 옆으로 가 아무렇지 않게 새치기를 했다. 대충봐도 70대로 보이는 노인들이 새치기를 수 차례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출입구는 저만치 멀어졌다. 법원 직원들은 방청권을 배부하기로 예정된 오후 1시 35분 1분 전인 34분에야 4번 법정출입구 현관 앞으로 나왔다. 새치기는 상상도 못 한다는 표정으로 그냥 방청권을 기계적으로 나눠주기에 급급했다.
5일 이 전 대통령 재판을 보기 위해 재판 시작 1시간 전부터 대기한 20대 커플은 "법원에서 새치기를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어른들이 그러시니 뭐라고 할 수 없고 참 할 말이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 전 대통령 재판일의 정오 시간을 넘어서면 서울중앙지법 서관측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다. 보석으로 풀려난 이 전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으로 이동해 법정에 들어가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민원인들은 서관 6번 법정출입구 등을 이용하려면 동관측 출입구 등을 찾아 한참을 돌아 가야한다.
지난 3월 13일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나오지 않았던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재판부가 구인장을 발부함에 따라 5일 이 전 대통령의 재판에는 모습을 드러냈다. 법원에 증인보호 및 지원을 요청해 증인지원관의 도음을 받아 자신의 변호인과 함께 법정 뒤쪽으로 입장했다.
이 전 회장은 5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이 전 대통령측 변호인의 증인신문에서는 검찰측 증인신문에 비해 말을 또렷하게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 전 대통령의 도움을 기대하고 (대선 전) 자금을 지원했다"며 돈을 건넨 경위 등은 분명히 했다. 이 전 회장은 2007~2011년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사위 이상주 변호사를 통해 현금 22억 5000만원을 건넸고, 양복 1230만원 어치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작성한 비망록을 토대로 19억원과 1230만원 상당의 의류를 뇌물로 봤다.
이 전 회장은 "2007년과 2008년 서울 가회동을 찾아가 이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에게 돈을 각각 1억원과 2원씩 전달했냐"는 이 전 대통령측 변호인의 질문에 "사전에 이상주 변호사와 통화를 한 뒤 (가회동에) 갔고, 대문 안쪽에 돈 가방을 놓고 마루에 있는 (김 여사) 얼굴만 보고 가고 그랬다"고 증언했다.
이 전 대통령측 변호인은 1심 재판에서 핵심 증거가 된 '비망록'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에 집중했다. 변호인은 이 전 회장에게 "2월 30일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3월 1일이라고 수정했는데 작성시 술을 먹었냐", "이 전 대통령 측에 줬다고 인정한 금액은 19억원인데 비망록에는 30억원이라고 쓴 이유가 뭐냐" 등을 추궁했다. 이 전 회장은 "(비망록을) 매일 쓸 때도 있지만 몰아 쓸 때도 있었고, 그런(술을 마시고 쓴) 기억은 없다"며 "감정이 섞여서 30억원이라고 부풀려 쓴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에게) 금감원 자리에 가고 싶다는 의사는 이야기 했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또 " 이 전 대통령이 비서관을 통해 (직접) 전화해 한국거래소(KRX) 이사장을 맡는 건 어떠냐는 취지로 말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는 KRX 이사장 선임이 기대와 달리 무산되자 자신의 비망록에 이 전 대통령과 사위인 이상주 변호사를 원망하는 글을 적어놨다. 이 전 회장은 "KRX 탈락에 대해 원망한 것은 아니고, 계속 자리가 잘 안되니깐 전화라도 한 번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대선 이후로 통화가 안 됐다"면서도 "KRX를 저보고 가라고 했으면 제대로 해놨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다만 "이 변호사와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있는데 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게 돈을 갖다주겠냐"며 김 전 기획관에게 돈을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강력 부인했다.
오는 10일 열리는 이 전 대통령 재판에는 김 전 기획관에 대한 증인신문이 열린다. 재판부는 이날 김윤옥 여사와 이상주 변호사를 증인을 채택할지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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