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 출간한 송지혜 변호사 ·김은선 페이퍼타이거 대표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오랜 취준생 생활을 마치고 중견기업에 취직한 당신. 자칭 팀 분위기 메이커라 외치는 A 차장의 농담은 직원들의 기분을 언짢게 할 때가 잦았다. "내가 결혼만 안했어도 우리 팀 여자 신입들과 돌아가며 찐하게 연애 한번 하는 건데." 티타임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억지웃음을 지었다. 자리에 돌아왔지만 A 차장이 한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상사가 "주말에 남자친구랑 어디서 뭐했냐?"거나, 갑자기 미혼인 직원에게 "임신했냐" 등 불쾌한 농담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기분은 매우 나쁘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루이틀 참다 보면 시간이 지나버리고, 이런 상황이 몇번 반복되다 보면 그냥 그런 사람인가 보다 싶어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걸까?'
이런 질문에 속시원한 정답을 알려주는 곳이 없어 의기투합한 변호사와 출판사 대표가 있다. 이들은 법을 필요로 하고 법에 관심도 많지만, 막상 필요한 지식을 채우지 못하고 살아온 여성들을 위해 나섰다. 여성이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을 법적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중요한 부분만 쉽게 설명한 책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는 이렇게 세상의 빛을 봤다.
이 책을 쓴 송지혜 변호사(이찬숙 변호사 공저)는 "살다보면 누구나 문제는 생길 수 밖에 없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부딪히고 문제가 생기는데, 문제가 생기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지만,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내 책임이기도 하다"고 했다. 자신의 문제는 결국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문제에 대응할 때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고 행동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출판사 페이퍼타이거 김은선 대표는 "이 책을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여성들을 위한 법 관련 서적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고 전했다. "그래서 꼭 제목만 번지르르한 책이 아닌 여성 독자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대학원 재학 중 지도교수가 얽힌 미투 운동을 경험했다. 피해자가 한 둘이 아닌데도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꽤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피해자는 아니었지만 선.후배들이 교수한테 성추행 등을 당하는 끔찍한 상황을 실제 경험한 것이 이 책을 기획하고 편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김 대표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에게' 책을 출간하고 북토크를 몇 차례 진행하면서 20~30대 여성뿐 아니라 40~50대 여성들의 높은 관심에 놀랐다. '미투운동' 영향으로 20~30대는 관심이 높을 것으로 알았지만, 40~50대가 북토크를 찾은 건 뜻밖이었다. 그는 "20~30대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혹은 전반적인 큰 틀을 배우는 차원에서 북토크를 찾는 반면, 40~50대는 실제 자신이 직장에서 경험한 성차별적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오신 분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변호사가 되기 전 은행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직장 내 성희롱 이야기를 친구나 지인들을 통해 많이 들었고 지금도 듣는다. 그는 "성희롱은 형사처벌을 받는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에서 대처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사전지식이 필수적이다. 우선 성희롱이 인정되려면 가해자와 피해자 간 업무적으로 연관된 사람이어야 하고, 자신의 업무상 지위를 이용한 경우여야 한다. 성희롱 피해를 당했을 때, 그 자리에서 거부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웃으면서 넘기거나 맞장구를 쳤다면 피해자도 동조한 것처럼 판단하는 억울한 결과가 생길 수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에는 구체적인 징계 수위가 없다. 결국 회사 내규에 따르게 되면 신입이나 계약직인 경우가 대다수인 피해 여성이 오히려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되는 등 불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다. 송 변호사는 "이 문제를 정식으로 공론화하거나 문제삼기로 결정했다면 이 날의 사건을 즉시 기록해서 증거로 남겨두고, 성희롱이 반복될 경우 증거를 남길 수 있도록 가해자에게 우편이나 메일, 문자 등으로 중단과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런 일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정상인이라면 해당 가해자가 문제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라면서 "동료들과 연대해 함께 해결해 나가야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성범죄 뿐 아니라 육아휴직도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큰 고민거리다. 육아휴직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인데 회사에서 대체인력을 뽑아주지 않으면 주변 동료들의 일이 늘어난다. 어쩔 수없이 육아휴직자는 마치 죄인처럼 돼버린다. 같은 여성조차 비난에 가세하는 일도 생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대왕편을 보면 '아이를 낳은 관청 소속 노비에게 출산휴가 100일, 출산 1개월 전부터 업무 면제, 남편에게도 1달간의 육아휴가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송 변호사는 "조선시대 노비에게조차 모성과 양육은 보장되는 권리이며, 여성만이 아닌 양성에게 두루 적용됐다"며 "여성들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사회적 인식의 변화, 제도와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은선 대표는 불합리한 일을 당했다면 반드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뜻을 같이 하는 단체에 후원할 수도 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소하지만 글을 올릴 수도 있다"며 "작은 액션이 모이면 담화가 되는 만큼, 가만히 있기 보다는 작은 행동이라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를 위해 손을 잡은 송 변호사와 김 대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장을 찾아 독자들과 소통할 계획이다. "여성들이 실제 삶 속 고민이나, 혼자서 해결하기에 어려움을 함께 공감하고 나아가 해결책까지 찾아보는 '여성들을 위한 길잡이'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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