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나'를 연출하는 드랙퀸의 일상과 꿈
[더팩트ㅣ이태원=임현경 기자] "드랙은 '내가 꿈꿔왔던 나'의 모습."
'드랙(Drag,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상 '드래그'가 정확한 명칭이지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형태인 '드랙'으로 표기)'은 '생물학적 성(Sex)'에 기반해 요구되는 '사회적 성 역할(Gender)'을 배반하는 작업, 정해진 틀을 깨고 '나'를 표출하는 행위다. 드랙을 통해 이성(異性)의 모습을 연출할 수도 있지만 '어떠한 성별도 아닌 존재'로 변모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여성을 모방하는 남성을 '드랙퀸', 남성을 모방하는 여성을 '드랙킹'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여성 드랙퀸, 남성 드랙킹 등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드랙 아티스트'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영화와 뮤지컬로 제작된 <헤드윅>, 미국 Logo TV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Rupaul's Drag race)를 통해 드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 기업과의 협업, 화보, 유튜브 등 종사자들이 직접 드랙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해내면서, 드랙을 향한 시선이 더욱 다각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들에게 드랙은 생소하다. '여장 남자'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이며, '모든 드랙은 여자가 되고 싶어 한다', '클럽 공연은 다 음란할 것이다' 등 여러 의혹이 존재한다. 하지만 매일 밤 드랙퀸으로서 무대에 오르는 쿠시아 디아멍은 드랙이 '내가 꿈꿔왔던 나의 모습'이라 말한다. <더팩트>는 지난 7일 드랙퀸 쿠시아 디아멍과 인터뷰를 통해 드랙을 조금 더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 무대에서 '멋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쿠시아 디아멍이란 이름이 특이한데, 무슨 뜻인가요?
다들 어릴 때 의미 없이 쓰던 이메일 아이디 하나쯤은 있잖아요, 저는 그게 '쿠시아(Kuciia)'였어요. 발음하기도 좋아서 이름에 쿠시아를 쓰게 됐고. '디아멍(Diamant)'은 불어로 다이아몬드를 뜻해요.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게, 영원히 빛나자는 의미에서 사용하게 됐어요.
-'드랙퀸'이란 존재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언제였고, 당시 첫인상은 어땠나요?
5~6년 전에 군대를 전역하고,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이태원 클럽에서 일했어요. 그런데 거기 주방 셰프님이 한국 1세대 드랙퀸이셨어요. 그분과 친해져서 어느 날 공연을 보러 가게 됐는데, 정말 희열감이 장난이 아니었어요(웃음).
-그전에는 드랙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던 건가요?
네. 드랙이란 걸 전혀 몰랐어요. 어릴 때부터 무대 위에 오르고 싶다는 꿈이 있긴 했었는데 기회가 많이 없었죠. 군대에서 직접 끄적이며 작사한 분량이 책 한 권 정도 됐어요. 지금은 다 잃어버렸지만. 아, 군대 내 장기자랑에서 1등도 했어요. 동기들이랑 가발, 의상, 분장까지 갖춰서 2ne1 노래에 맞춰 춤을 췄죠. 포상휴가도 받고 외부에서 공연도 했어요(웃음). 어떻게 보면 그게 '첫 무대'일 수도 있겠네요.
-그럼 직접 드랙퀸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언제였나요?
처음 드랙퀸의 무대를 접한 그 순간이요. 그분이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정말 멋있게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제 꿈을 이룰 수 있지 않겠나 싶었어요. 그래서 그분한테 드랙에 관한 것들을 물어보고, '한 번 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됐죠. '나도 무대에서 멋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드랙을 처음 소개한 그분의 반응은 어땠나요?
'너는 끼가 있으니 아무래도 혼자 배우는 게 네 스타일을 찾기가 더 쉬울 거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화장이나 스타일링에 대해 살짝 알려주긴 했지만, 깊게는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드랙으로서 첫 무대, 기억하나요?
기억하죠. 2013년 7월이었어요. 드랙을 하기로 결심한 이후 거의 두 달 정도 준비를 했어요. 제 이름을 걸고 기획한 파티에서 정식으로 데뷔했죠. 그땐 정말 공연이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어요. 지금 보면 '베이비' 드랙퀸이었죠. 음악에 맞춰서 춤만 췄던 정도였어요. 엄청 높은 하이힐에 드레스를 입고 춤췄던 기억이 나요. 정말 좋았어요. 높은 곳에서 사람들이 저한테 열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너무 좋았어요.
# 드랙, 관객을 즐겁게 하는 '쇼 비즈니스'
-무대 위에 있을 때와 평소의 겉모습은 완전히 달라 보여요. 이에 따라 성격이나 언행도 달라지나요?
일단 저는 차분차분하고 조곤조곤한 편이에요. 드랙하고 나서도 그런 면은 그대로인데, 더 멋있어진다고 할까요. 큰 차이는 없지만, 가지고 있는 매력이 더 배가되는 것 같아요.
-드랙퀸으로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현재 문화 콘텐츠가 그려내고 있는 드랙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일단 영화나 TV프로그램은 왜곡 또는 미화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제가 생각할 때 드랙은 '쇼 비즈니스'의 일부에요. 드랙 아티스트도 활동 범위가 다양해요. 무대에서 표출해내는 분, 인권 활동하는 분, 연기하는 분 등. 최근 방송된 '루폴 드래그 레이스'의 팬들이 굉장히 많지만, 그게 드랙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한국 드랙신(Scene)에는 일단 드라마(갈등·편 가르기 등)가 없는 게 좋아요. 전반적으로 훈훈하고 서로 잘 챙겨주고(웃음).
-드랙이 낯선 독자들을 위해 관련 콘텐츠를 추천 하자면요?
조심스럽네요. 공연 외에는,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허리케인 김치'라는 친구가 있어요. 무대가 아닌 유튜브에서도 드랙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밤비'라는 친구도 있고요.
-드랙 활동을 하는 분 중에는 다른 직업과 겸하는 분들도 많다고 알고 있어요. 쿠시아는 '풀타임', 즉 전업 드랙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여기(드랙)에 더 집중하고 싶었어요. 4년 전까지는 저도 다른 일을 겸했는데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죠. 공연이 많이 잡히고 수입도 늘어나니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행에 옮겼죠.
-이젠 어엿한 6년 차 드랙퀸이에요. 베테랑의 무대 준비 과정이 궁금해요.
보통 부킹(Booking, 섭외·예약)이 한 달 전에 들어와요. 그럼 곡을 선택하고 한 달 동안 곡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 곡을 외워요. 곡을 불렀던 가수의 영상들을 참고하면서 나만의 무대를 구상하죠. 일주일 전부터는 의상과 헤어를 정해요. 가발 같은 건 주문 제작할 때도 있고 만든 걸 살 때도 있어요. 의상은 99%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한 걸 입어요. 공연 당일에는 시안 같은 걸 찾아보면서 메이크업을 하고요. 메이크업은 그날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지는 편이에요.
-공연 때의 의상이나 화장을 보면, 손재주나 감각이 뛰어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항상 멋지고 예쁜 걸 좋아하긴 했어요. 대학생 때 패션디자인을 배우기도 했고요. 그땐 제가 옷 만드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멋진 옷을 입는 걸 좋아하더라고요(웃음).
-공연 준비를 위해 유튜브로 여러 영상을 찾아본다고 하셨는데, 최근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사람은 누군가요?
항상 '레이디 가가'이긴 해요. 레이디 가가 이후에는 아직 없어요. 요즘에는 특정한 인물을 정해놓기보다는, 길을 가다가도 좋은 음악이 있으면 찾아보는 식이에요.
# '다양한 드랙'을 보여주는 것, 계속 풀어가야 할 숙제
-드랙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을 겪은 적이 있나요?
공연을 하면서 차로 이동하다 보면 행인들에게 지나친 장난을 많이 당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그들이 나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공연 티켓을 사는 건 아니니까. 다만 LGBT 커뮤니티 내에서도 모두가 드랙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는 아직 숙제로 남아있어요. 저는 드랙이란 직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고 싶은데, SNS 같은 곳에서 그런 글들을 보니 흔들리게 되더라고요.
-드랙을 둘러싼 여러 쟁점이 있죠. 대표적인 건 '여성을 향한 조롱'이냐, '섹스와 젠더의 경계를 파괴하는 해방'이냐, 인데요.
계속 같이 풀어가야 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다 맞는 말이고, 의견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봐요. 어떻게 드랙의 이미지를 변화시켜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도 필요하고요. 다만 제게 있어 드랙은, 제가 '꿈꿔왔던 모습'들을 무대에서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그래서 무대 위 제 모습이 '조롱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조금 더 다양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요즘엔 주로 어떤 무대를 선보이고 있나요?
최근 공연하는 클럽은 1990년대 가요, 영화 음악 등 매주 다른 미션을 줘요. 그래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무대를 꾸미고 있어요. 아마 제 공연을 오랫동안 지켜보신 분들은 의아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은 제가 느낀 감정과 생각들로 무대를 꾸몄는데,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 한계를 깨지 못했어요. 기존과 다른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가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언제나 무대에서 진실하게 공연을 하자'라는 마음은 변함없이 가지고 있어요.
-최근에 가장 반응이 좋았던 공연은 뭐였나요?
해방촌에 있는 래빗홀이라는 곳에서 했던 무대에요. 영화 <스타 이즈 본>에 나왔던 노래 'I will never love again'으로 공연을 했어요. 그때 정말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까지 흘렸는데, 관중들이 '너는 발라드 할 때가 정말 멋있다'고 말해주시더라고요. 그게 제 드랙 스타일인 것 같아요.
-그럼 지금까지를 통틀어 본인이 가장 뿌듯했던 무대를 뽑자면요?
서울퀴어문화축제 무대가 제일 뿌듯했던 것 같아요. 드랙 공연을 볼 수 있는 관객들은 굉장히 한정적이잖아요. 밤에 공연을 보러 올 수 있는 사람, 클럽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 등. 그런데 퀴어문화축제는 나이, 국적, 성별, 장애 여부 등 아무런 제약 없이 모두가 제 무대를 통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니까. 감동적이었어요.
저는 클럽 공연 외에도 대학교 인권 행사, 퀴어문화축제 등 인권 관련 공연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출연료를 생각하면 클럽 공연이 훨씬 이득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니까요. 이런 활동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도 드랙을 조금 달리 봐주시는 것 같아요. 친구들을 통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SNS를 통해서도 많은 메시지를 받아요.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 꿈꿨던 드랙, 꿈꾸는 드랙
-드랙퀸으로서의 궁극적인 목표가 궁금해요. '꿈의 무대'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항상 있었어요(웃음). 제가 직접 프로듀싱한, 제 목소리가 담긴 '저의 앨범'을 가지고 월드투어를 하는 거에요. 투어 마지막 무대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하고 싶어요.
턱시도인데 아래로는 드레스처럼 촥 떨어지는, 반짝거리는 의상을 입고 혼자 등장하는 거죠. 구름 같은 게 자욱하게 깔린 무대에 흰 조명을 받으면서. 엄청 희망적이면서도 트렌디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코러스는 암막 뒤에 서 있다가 나중에 밝은 빛이 확 터지면서 등장하면 멋있을 것 같아요(웃음).
-왜 하필 매디슨 스퀘어 가든인가요?
군대에 있을 때, 밤에 내무반 사람들과 다 같이 케이블TV에서 방송한 레이디 가가의 매디슨 스퀘어 공연 실황을 본 적이 있어요. 다큐멘터리에서 레이디 가가가 전광판에 뜬 자기 이름을 보고 우는 장면을 본 적도 있고. 그래서 그곳이 제게 더 상징적인 장소인 것 같아요.
-공연 외적인 면에서 '꿈꾸는 일'이 따로 있나요?
기부 재단을 설립해서 기부하며 살고 싶어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1순위로 도와주고 싶어요. 미혼모, 노인분들도 돕고 싶고요. 원래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드랙을 하면서 인지도도 생기고 공연 외에 사람들에게 영감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이런 목표를 세운 거죠.
제가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내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이 이런 불우함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걱정이 많이 돼요. 멘토가 필요하잖아요. 또, 드랙을 직업으로 하고 싶은 아이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고요.
-목표를 위해 지금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아무래도 부와 명예가 필요하겠죠(웃음). 그래야 제가 재단을 설립했을 때 저를 믿고 후원을 해주지 않을까 싶어요. 그를 위해 이것저것 공연을 많이 해보고 있어요. 올해는 저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어요. 약혼자가 체코 사람이니까(웃음) 체코어 공부도 하고, 영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또, 제 이름을 딴 브랜드 쇼핑몰을 준비하고 있어요. 자기 몸을 정말 사랑하고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제 친구를 보고 영감을 받았어요. 그런 몸의 건강함을 표출해줄 만한 옷들, 그리고 현역처럼 비싼 옷과 가발을 사용하기 어려운 초보 드랙 아티스트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기본 아이템들을 판매할 생각이에요. 자리를 잡고 나면 직접 디자인한 옷도 출시하고 싶어요.
-당신에게 드랙이란 한 마디로 '무엇' 인가요?
저한테는 희망, 보물 같아요. 드랙 이전에는 되게 소심한 아이였고, 자신감도 없었어요. 불우한 환경에 익숙해져 있는, 우울한 아이였죠. 그런데 수만 명이 지켜보는 무대에도 서보고 해외 공연도 하면서 나를 필요로하는 사람들이 있구나를 느꼈어요. 그럴 때 '드랙이 내 삶을 바꾸긴 바꿨구나' 싶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드랙 아티스트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그냥 제 공연을 보는 동안은 모든 걸 잊고 정말 행복하게 있다 가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