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펜션 사고 관련 대성고 취재, 기사 밖 이야기
[더팩트ㅣ은평=임현경 기자] 또 아이들이 죽었다. 지난 18일 오후 강원 강릉시 한 펜션에서 고등학생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다.
아이들이 어떤 경위로 강릉에 체험학습을 가게 됐는지, 학교 차원에서 관리·감독이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알아야 했다.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간 서울 은평구 대성고등학교에는 이미 5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려있었다. 대성고 교장과 학생주임 교사,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유은혜 교육부장관까지 사고 현장인 강릉으로 떠난 상황이었다.
수능 직전까지 아이들이 머물렀던 학교에는 싸늘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언덕배기에 대성중학교와 대성고등학교가 나란히 있고, 그 주변을 산이 둥글게 에워싸고 있어, 가파른 오르막길 끝에 보이는 정문이 유일한 출입구였다. 쇠로 된 문 사이로 불안한 듯 서성이는 수위 할아버지와 화려하게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였다.
정문을 지키는 수위 할아버지는 몹시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홀로 근무하는 그는 교육청 또는 학교 관계자들이 차를 타고 학교를 오가는 동안 매번 무거운 철문을 직접 열고 닫았다. 취재진이 그에게 내부 분위기나 대책회의 상황을 물었지만, 그는 "손주 같은 아이들이 유명을 달리했는데 기분이 어떻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할아버지는 추운 날 밖에서 대기하는 취재진을 향해 "안으로 들어가시라", "식사를 할 때가 한참 지나지 않았느냐"고 걱정했다. 내내 정문을 지키던 그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식사를 위해 수위실 안 소파에 앉았다. 할아버지는 조촐히 차려진 음식 앞에서도 한참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꼭 식사들 하세요. 죄송합니다." 전혀 미안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손가락이 꽁꽁 얼어 곤란할 때쯤 학교 앞에 딱 하나 자리하고 있는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녹일 핫팩이나 따뜻한 캔커피를 살 겸 가게에 들어서자 주인 부부가 낯선 손님들을 맞이했다. 가게 왼편엔 각종 문제집과 학습서가, 오른편엔 과자·음료 등 군것질거리와 필기구 같은 문구류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주인 A씨와 B씨는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서점이자 문구점이며 슈퍼마켓인 이곳을 찾아왔다고 했다.
"학교 안에도 매점이 있는데 꼭 여기 오는 학생들이 있어요. 한 명이 펜을 산다 하면 다른 친구들도 우르르, 다음 수업 끝나고 또 다른 애가 과자를 먹고 싶다 하면 아까 왔던 애들도 다 같이 우르르. 학생 때는 온종일 있는 학교를 잠깐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기분이 좀 나아지곤 하잖아요."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강해질수록 많은 취재진이 가게로 몰려들었다. A씨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아이들이 얼마나 밝고 착했는지 최대한 상세히 대답해주려 노력했다. 다만 그는 커다란 방송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한사코 거절했다. "절대 찍지 마시라"며 언성을 높이다가도 기자들에게 뜨끈한 믹스커피를 건넸다. "기자는 싫지만, 추운데 밖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꼭 우리 자식들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여기 다 기자분들인 거에요? 이게 무슨 일이래요, 정말." 뉴스를 보고 가게를 찾아왔다는 동네 주민 C씨는 "아들이 대성고를 졸업한 지 10년도 넘었다"면서도 "다 동네 아이들이라 남일 같지가 않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애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다 어른들 때문이지." B씨가 C씨에게 커피를 권하며 던진 말이었다.
올해 수능 시험을 치르고 졸업을 앞둔 아이들이었다. 짧게는 고등학교 3년, 길게는 6년 이상 준비했던 시험을 마치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면 '새내기'로서 대학교 캠퍼스를 누릴 참이었다. "다들 내 새끼 같은 아이들인데 너무 안타깝죠." B씨의 말이 유독 아프게 들렸다.
그의 말이 맞았다. 강릉경찰서와 소방당국은 사고 원인으로 가스 누출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에 무게를 뒀다. 숙박 시설엔 가스누출경보기가 설치되지 않았고, 보일러 배관이 비정상적으로 어긋나게 연결된 상태였다. 해당 숙소는 농어촌 민박 업체로서 지난달 20일 가스안전공사의 안전점검을 통과했고, 농림축산식품부 시행규칙의 '농어촌민박사업의 서비스·안전기준'에 가스안전 관련 내용은 없었다. 관련 제도는 미흡했고 안전 점검은 허술했던 것이다.
학생들을 살피지 못한 학교의 잘못도 있었다. 꼭 보호자가 동행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학교는 사전에 학생들에게 안전점검표, 시설보험가입확인서 등을 제출토록 한 뒤 안전성을 파악해야 했다. 이는 대학교에서 MT, 답사 등 행사를 기획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절차다. 소방당국과 교육당국은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뒤늦게 관련 제도 검토 및 개선안 마련에 나섰다.
제 자식과 연관된 일이라 생각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비극일지도 모른다. 유치원 통학버스·가습기살균제·불량급식…그리고 강릉 펜션 참사까지. 지난 2014년 거대한 배가 가라앉은 뒤에도, 어른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손주 같던 아이들'이라며 눈물을 글썽이던 수위 할아버지와 '내 자식처럼' 두 손 모아 기도하는 학교 앞 상점 주인, 이들의 마음이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