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마친 고3, 강릉 펜션서 개인체험학습 중 참변
[더팩트ㅣ은평=임현경 기자] "손주 같은 아이들이 유명을 달리했다는데 기분이 어떻겠나." 학교 정문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던 경비원 A씨가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떼며 이같이 말했다.
18일 오후 서울 은평구 소재 대성고등학교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이날 강릉의 한 펜션에서 개인체험학습 중이었던 3학년 학생 10명 중 3명이 사망하고 7명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비보를 접한 학교 정문은 굳게 닫혔고, 인근 주민들은 참담한 심경을 전할 뿐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이날 오후 4시께 대성고 정문 앞 언덕에는 50여 명의 취재진만이 철문 너머 학교를 주시하고 있었다. 대성고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은 2학기 기말고사 마지막 날로, 사고가 전해졌을 당시 1~2학년들은 이미 시험을 마치고 하교한 상태였다. 교장·학생주임 등은 급히 사고 현장인 강릉으로 떠났으며 나머지 교사들은 학교에 남아 대책 회의를 열었다.
수능을 마친 3학년 학생들은 지난 17일부터 개인체험학습 기간을 갖고, 학교에 등교하는 대신 각자 원하는 장소로 현장학습을 떠났다. 학생이 원하는 장소와 학습 계획을 적어 신청서를 제출한 뒤 보호자와 교사의 허락을 받는 방식이었다. 사고를 당한 3학년 학생들 역시 강릉으로 체험학습을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학교 근처 국어·논술 학원을 운영 중이라는 B씨는 "뉴스를 아무리 봐도 명단이 나오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직접 학교로 왔다"며 "우리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혹시 명단에 있을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진을 통해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여기 오래 있어선 안 되겠다"며 서둘러 현장을 벗어났다.
정문 앞 문구점을 운영하는 C씨는 "참 밝고 바른 아이들이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아이들이 바쁜 와중에도 꼭 두 손으로 지폐를 건네는 모습을 보며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C씨의 아내 D씨 역시 "이름은 잘 몰랐지만 기자분들이 보여준 사진을 보니 얼굴을 알겠다"며 "3년 내내 본 학생도, 중학교 때부터 6년을 본 학생도 있다. 얼마나 활기차고 착했는지 모른다"고 애통한 심경을 내비쳤다.
방과 후 운동을 마치고 뒤늦게 하교한 중학교 학생들은 몰려든 취재진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C씨가 "고등학교 형들에게 큰일이 났다"며 사고 소식을 전하자 한 학생은 "수능 끝나자마자 무슨 일이래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D씨는 "여기서 가게를 한 지 10년도 더 됐는데 이런 참담한 사고는 처음"이라고 했다. 이들은 TV 뉴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위태로운 아이들이 얼른 회복해야 한다'며 두 손을 부여잡았다.
취재진의 요청에도 "할 말이 없다"며 침묵을 지켰던 경비원 A씨도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심경을 묻는 취재진을 향해 "손주 같은 아이들이 유명을 달리했다는데 기분이 어떻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그렇게 됐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계속 (취재진이) 말을 시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앞서 이날 오후 1시12분께 강릉시 저동 한 펜션에서 올해 수능을 마친 대성고 3학년 남학생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강릉소방서에 따르면 사망자 3명 중 1명은 강릉아산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 2명은 강릉고려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된 나머지 학생 7명은 강릉아산병원, 원주기독병원 등으로 긴급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가스 보일러에서 이산화탄소가 누출돼 중독 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보일러 배관 분리 여부와 펜션 주인 등을 상대로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