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성폭력 당해도 출근"…간절함 담긴 이주여성 '미투'(영상)

9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주여성들의 #Me Too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이주여성들의 미투를 지지했다. /국회=김소희 기자

[더팩트 | 국회=김소희 기자] "성폭력을 당해도 작업장을 이탈하지 마세요."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가 직장 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들에게 한 조언이다. 9일 오전 10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장에서 열린 '이주여성들의 #Me Too' 간담회에서다. '피해를 입었는데 작업장을 이탈하지 말라'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강 대표의 당부는 이날 참석한 이주여성들의 가장 큰 공감을 얻었다.

'여성이 안전한 세상 만들기'라는 부제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동 주최로 열린 이날 간담회에는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캄보디아공동체·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등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최근 사회적 이슈인 '미투 운동'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듯했다.

사회를 맡은 강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내 '미투' 폭로가 있었던 사실을 거론하며 "정 의원은 민주당 젠더폭력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어서 부득이하게 불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마이크 없이 진행을 이어갔다. 특히 이주여성의 '밀착 촬영'을 지양해달라고 부탁했다. 강 대표는 "이 자리에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대리자로 발표하는 이주여성도 용기를 갖고 발제를 하게 된 것"이라며 "근거리 촬영은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례적으로 간담회 테이블 밖에 녹색 촬영 허가선 테이프를 붙여놓기도 했다.

주최 측에서는 발제자 배려 차원에서 임의로 촬영허가선을 지정했다. /김소희 기자

이주여성들의 참혹한 성폭력 피해 사례들이 언급됐다. 발제자로 나선 캄보디아공동체 소속 캇소파니 씨가 전한 사례 역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캇 씨는 "2016년 취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피해자는 입국 두 달도 되지 않아 사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피해자의 거부에도 사장은 지속적으로 성추행과 성폭행을 저질렀다. 피해자는 계속 당하면 지옥에 살 것 같아서 사촌언니의 도움으로 쉼터에 입소해 법률지원을 받게 됐다"며 "그 과정을 동행하며 통번역 지원을 7개월간 하면서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캇 씨는 한국의 고용허가제가 피해 이주여성들을 더 큰 고통으로 몰고 간다고 지적했다. 캇 씨는 "사업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을 이탈하면 이주 노동자는 불법체류 신분이 된다"며 "이주여성 노동자는 성폭력 피해를 입증해야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데, 한국어와 한국 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피해 증거를 모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성폭력을 당해도 작업장을 이탈하지 말라"는 강 대표의 조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캇 씨는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증명하지 못할 경우 가해자로부터 무고죄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이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가 있는 사업장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며 "피해자가 두려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중국 유학생 성폭력 피해'를 발제한 동애화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중국상담원은 "이주여성들에게 가해자들은 한국에서 믿고 의지했던 남편이고 친구이자 상사"라며 "그런 이들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본인의 욕구를 채우고자 했다"고 말했다. 간담회 참석자 사이에서 한숨이 들려왔다.

강 대표를 비롯해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상담센터 대표, 신영숙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 대표는 국내 체류 이주여성의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피해 등에 대한 정부의 종합적인 대책과 창구 마련을 요구했다.

신 대표는 "성폭력 피해 이주여성에게 출근은 2차 가해"라며 "체류 불안 없이 폭력 피해를 호소하고 폭력 피해 이주여성의 인권 보호를 위한 지원 체계 마련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 /김소희 기자

허오영숙 대표는 "사업장 내 성폭력 가해자를 징계하지 않는 등 피해 이주여성에게 불이익을 준 사업장의 외국인 고용 허가는 철회되어야 한다"며 "여성이자 외국인 신분으로 약자 중 약자인 이주여성 노동자의 인권보호와 성폭력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끝으로 발제자와 참석자들은 강 대표의 선창으로 '이주여성의 안전을 보장하라', '이주여성 미투', '이주여성 위드유' 구호를 외치며 서로를 응원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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