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소희 기자]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용기가 생겼다는 측면에서 긍정성이 대두되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다고 무작정 '나도'라고 외쳐서도 안 된다. '명예훼손·무고' 등 '역고소'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일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미투' 채널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특정인의 이름을 거론하거나 특정인을 유추할 수 있는 글을 작성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블라인드에는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폭로 이후 수많은 '미투' 글이 올라왔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승무원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도 이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졌다. 성별을 가릴 것도 없이 각종 커뮤니티 등에는 "나도 당했다"는 폭로 글이 이어졌다.
그 결과 문화계 인사 시인 고은은 성추행 의혹으로 단국대 석좌교수직에서 사임했다. 교육부는 교과서에 실린 고은 시인의 시에 대해 작품 수정 또는 배제를 검토 중이다. 연극 연출가 이윤택은 성추행 폭로 이후 "어떠한 벌도 달게 받겠다"고 사과했다. 한국극작가협회, 서울연극협회는 이윤택을 제명했다. 연희단거리도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뻗어져 나간 '미투' 글은 사회적 기폭제로 작용했지만, 여느 폭로글이 그렇듯 폭로는 추측으로 이어졌다. "어느 회사냐"는 댓글을 시작으로 이용자들의 신상털기가 시작됐고, 특정 회사가 언급되거나 특정인이 언급되는 상황도 있었다. 이에 블라인드는 관련 공지를 띄우고, 특정인 언급을 금지한 것이다.
'미투'를 한다고 무작정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특정 회사를 언급하거나 특정인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한 경우 '명예훼손'에 휘말릴 소지가 생긴다. 형법 307조 제1항에 따르면 허위사실이 아닌 내용을 퍼뜨렸더라도 그 내용에 따라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법무법인 승민 조대진 변호사는 22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성추행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피해자를 공표할 경우 명예훼손으로 휘말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무죄추정원칙상 죄가 확정되기 전에 공개적으로 해당 사실을 알리면 가해자가 명예훼손으로 소송할 여지가 생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한국판 미투운동의 시초로 언급되는 '문단계 성폭력' 폭로를 한 당사자들은 법정 분쟁에 휘말렸다. 제자들을 성폭행한 배용제 시인은 1심에서 징역 8년을 받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 가해자들은 태도를 바꿔 명예훼손죄로 폭로자들을 고소했다.
폭로자들은 기나긴 법정 분쟁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었지만, 수사기관을 오가며 무죄를 입증하는 데 난항을 겪었다. 소송 비용도 무시할 수 없었다.
조 변호사는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한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피해자로부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처벌불원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당장 고소를 하지는 않는다"면서도 "가해자가 판단하기에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써주거나 고소를 취하해주는 등 행동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따르는 사회적 비난 외에도 처벌의 위협까지 무시할 수 없는 현실로 앞으로 '미투' 폭로가 주춤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피해자 8명 중 1명만 신고를 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미투 운동 활성화를 위해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폭로 내용이 진실인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의 글이 3건 올라왔다. 여성단체들도 미투 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할 방침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오는 26일 미투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열기로 했다.
ks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