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내려지는 판결은 얼마나 될까요? 대한민국 재판부는 원외 재판부를 포함하면 200여 개가량 됩니다. 그러니 판결은 최소 1000여 건 이상 나오겠지요.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법이 몰려 있는 '법조 메카' 서울 서초동에선 하루 평균 수백 건의 판결이 나옵니다. <더팩트>는 하루 동안 내려진 판결 가운데 주목할 만한 선고를 '엄선'해 '브리핑' 형식으로 소개하는 [TF오늘의 선고]를 마련했습니다. 바쁜 생활에 놓치지 말아야 할 판결을 이 코너를 통해 만나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주>
[더팩트 | 서울중앙지법=변지영 기자] 법조계는 14일 자신을 괴롭혔다는 이유로 대학 동창을 찾아가 흉기를 휘두른 20대에게 중형을 선고한 판결, 편집조현병으로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의 할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중국 동포에게 징역 15년을 확정한 사건, 직장동료가 회식 후 자신을 성폭행을 했다고 무고한 혐의로 기소됐던 20대 여성에게 벌금형의 원심을 깨고 무죄가 선고된 판결이 주목을 끌었다.
○…"나를 괴롭혔다" 대학 동창에 칼부림해 하반신 마비시킨 20대 '징역 10년'
청주지법 형사11부(이현우 부장판사)는 14일 대학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것에 분노해 대학 동창을 칼로 찌른 혐의(살인미수)로 구속기소 된 A(26)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앙심을 품고 준비한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하려 했다"며 "피해자가 중한 상해를 입어 상반신 부위에 마비 증상이 지속되는 등 여러 장애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고,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을 살피면 선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A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20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사회적 유대관계가 있어 보이고 그동안 처벌받은 전력이 없다"며 검찰이 청구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은 기각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 21일 오후 4시 50분쯤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상가 건물에서 부산의 한 대학 동창 B(25)씨를 미리 준비한 흉기로 수차례 찔러 구속 기소 됐다. A씨는 경찰에게 "대학시절 B씨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 화가 나 그랬다"고 진술했다.
○…"할머니 배신했다" 망상에 조부 살해한 중국동포 징역 15년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서울 중랑구 자택에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존속살해)로 구속기소된 중국 국적의 김모(27) 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20일 자택에서 TV를 보고 있던 자신의 할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망상에 사로잡혀 존속인 피해자를 별다른 이유 없이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죄질이 나쁘다"며 "자신의 할아버지를 살해한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패륜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다만 "김씨가 편집조현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력이 부족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범행 직후 스스로 자수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전했다.
지난 2012년 입국해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던 김 씨는 지난해 편집조현병과 양극성 정동장애를 진단받아 변별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 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배신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동료에게 성폭행 당했다" 무고로 기소된 20대 항소심서 무죄
인천지방법원 형사2부(부장판사 오연정)는 평소 호감이 있던 직장동료를 성폭행했다고 무고한 혐의로 기소된 회사원 A(29·여)씨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2015년 7월 19일 오후 8시 20분경 112로 "회사에서 회식을 한 뒤 내가 만취하자 동료인 B씨가 나를 모텔로 데려가 간음했다"고 무고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평소 호감이 있던 B씨에게 "좋아한다"며 고백했지만 B씨가 거절하자 이 같은 허위 신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B씨에게 거절당한 뒤 B씨의 아내에게 전화해 "B씨와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가졌으니 이혼하라"고 전화하기도 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무고 혐의를 인정,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이에 A씨는 "경찰에 방문해 상담한 것일 뿐 B씨를 신고하지 않았으며, 신고를 했다고 해도 내용은 허위사실이 아니다"라며 항소했다. 앞서 A씨는 B씨의 가정이 깨질 것을 우려해 원심 법정과 수사기관에 "B씨와의 성관계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가 이를 번복한 바 있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항소심 재판부는 "무고죄는 타인에게 형사·징계 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인 진실에 반하는 허위 사실인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라며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신고한 사실이 허위라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고소인이 술에 만취한 피고인을 모텔로 데려가 간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적극적으로 증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건 발생 이후, A씨와 B씨가 나눈 것으로 추정되는 모바일 채팅창에서 "B씨의 실수로 기분이 나쁘고 앞으로 서로 어떻게 행동하며 지낼지 얘기하자"는 대화 기록이 발견되기도 했다. 또 B씨가 자신의 휴대전화에 A씨의 이름을 '애칭'으로 저장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고소 사실이 허위라고 의심할 여지가 있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피고인의 고소사실이 허위라 단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이는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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