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각의 노동자들②] "우리도 살고 싶다"…관광버스 기사의 절규(영상)

관광버스 사고는 운전기사들의 열악한 근무조건과 처우 등 구조적 문제가 주요 요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최재필 기자

대한민국은 안전한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 중 하나가 안전이지만 사고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 제천 스포츠센터, 밀양 세종병원 등 잇단 화재 참사에 '안전 슬로건'은 오히려 무색할 지경이다. 특히, 대형 참사로 이어진 사건은 결국 '인재'로 인한 경우가 많다. 이는 제도적 허술함과 관리의 미숙함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에 <더팩트>는 여전히 안전을 위협 받는 노동자들을 취재했다. 이를 통해 제도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더팩트 | 최재필·김소희 기자] "사고를 내려고 운전하는 기사가 있나요. 우리도 살고 싶습니다."

울산에서 관광(전세)버스를 운전하는 오광호(64) 씨는 5일 관광버스 사고원인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오 씨는 "운전자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고의 책임과 비난이 모두 운전자에게 돌아가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정부와 업계의 제도 개선이 없다면 제2, 제3의 '울산고속도로 참사'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오 씨가 말한 울산고속도로 참사는 지난 2016년 10월 13일 오후 10시11분께 울산 울주군 언양읍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에서 경주 IC 방향 1㎞ 지점을 달리던 버스에 불이나 10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다. 당시 울산 태화관광 소속의 사고 버스에는 운전기사 이모(당시 48세)씨, 여행 가이드 이모(당시 43세)씨와 승객 20명 등 모두 22명이 타고 있었다. 사고를 당한 승객들은 정년퇴직을 앞두고 단체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터라 안타까움은 더했다.

◆"울산고속도로 참사는 구조적 문제…달라진 것 없어"

오 씨는 "사고 이후 한때 제도 개선을 한다며 떠들썩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당시 사고를 낸 동료 운전기사는 아직 차가운 감방에 있다. 하지만 버스업체 대표는 겨우 과태료 정도만 내고 '반성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더욱 기가 찬 것은 경찰 조사에서 회사의 '갑질' 등이 밝혀졌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오 씨는 지역 전세버스의 구조적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지난해 2월 지역 업계에서 처음으로 노조를 설립했다. 오 씨가 노조를 세운 곳은 사고 업체의 자회사이자 자신이 근무하고 있던 동진관광.

하지만 오 씨에게 돌아온 건 '해고' 통지였다. 직장을 잃은 오 씨는 현재 일용직 운전기사 신세다. 하루 하루 '땜방식' 운전을 하며 한 달에 손에 쥐는 건 120만 원 남짓이다. 그는 "대형 버스 사고는 업체의 '관행적' 갑질 등 구조적 문제가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2~3시간 '쪽잠'을 잔 후 운전을 하는 구조인데, 사고가 나지 않는 게 기적 아니냐"고 했다.

오 씨의 주장처럼 업계 관계자들은 울산고속도로 참사가 관광버스 업계의 고질적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기사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물론 업체의 구체적 '갑질' 횡포가 경찰 조사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루 2~3시간 '쪽잠'…사고 안 나는 게 기적"

당시 사건을 수사한 울산 울주경찰서는 사고 버스업체인 태화관광이 직원에 대해 '갑질'을 한 정황을 다수 확인했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회사는 운전사들에게 버스 운행을 맡기면서 연착(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도착함)할 때마다 3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연착으로 말미암은 배차 차질에 따른 손실을 운전자에게 떠넘긴 것이다. 이 때문에 운전사들이 운행 시간을 맞추려고 과속과 끼어들기를 일삼는 사례가 잦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실제 울산고속도로 사고의 원인은 과속 운행 중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사고 운전기사의 동료 이모 씨는 "태화관광에선 버스가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면 운전기사에게 3~4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며 "사고 당일에도 새벽 출근 운행을 마친 후 공항으로 이동했는데, 비행기가 연착해 출발이 예정보다 1~2시간 지연된 것으로 안다. 다음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과속을 하게 된 것이다"고 했다.

2016년 10월 경부고속도로 울산분기점 인근에서 발생한 관광버스 화재 사고 현장의 모습./울주경찰서 제공

경찰 조사로 밝혀진 태화관광의 '갑질'은 이 뿐만이 아니다. 운전기사가 승객에게 봉사료(팁)를 받았다는 이유로, 휴일 근무수당을 주지 않는가 하면, 사고가 났을 때 보험수가 인상을 핑계로 보험처리 대신 차량 수리비용을 운전기사에게 부담시키기도 했다. 경찰은 "수리비용 전가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갑질' 횡포가 드러났다"고 했다.

오 씨와 함께 노조활동을 하다 해고된 최무천(63) 씨는 "대부분의 운전기사들이 3개월 촉탁제로 계약하는 데 해고의 불안 때문에 불만을 대놓고 말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차량정비 불량과 운전자의 장시간·저임금 노동조건 등 구조적 문제가 교통사고의 원인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관광버스업계의 열악한 처우가 운전기사 안전 위협"

이 같은 업체의 '갑질' 횡포는 버스업계 중 유독 관광버스 업계가 심하고, 처우도 가장 열악하다. 고속버스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운영하고, 시내버스도 법 테두리 내에서 임금, 복지 등을 어느 정도 보장받고 있다. 게다가 고속버스나 시내버스의 경우 '노조'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업체가 대부분인 관광(전세)버스 업계는 운전기사의 안전을 책임질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 노조도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윤춘석(69) 전세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전국 4만5000여 대의 전세버스가 있지만 운전기사들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길이 묘연하다"며 "노조라도 활성화되어야 보호를 받을 수 있는데 가입을 안한다"고 했다.

윤 위원장은 "전세버스 사고 원인은 구조적 모순 탓"이라며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세버스를 직영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등록제가 되면서 불법적인 지입제로 운영되는 게 대부분"이라며 "지입제로 운영하다보니 저임금·장시간 등의 노동조건으로 운전기사들이 내몰리게 되고 이는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장시간 일하면서 졸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반문했다.

지난 2016년 7월 41명의 사상자를 낸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사고도 '졸음운전' 때문이었다. 사고를 낸 운전기사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정신이 몽롱한 반수면 상태에서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다"며 졸음운전을 사실상 시인했다. 방 씨는 사고 전날 버스에서 잠을 잔 것으로 전해졌다.

◆전세버스 사상자 하루 8명…해외에선 운전시간 제한 등 사고 예방 대책 시행

이 같은 전세버스 사고의 위험성은 수치로도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한국문화관광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관광 전세버스 안전관리 강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전세버스로 인한 교통사고는 총 5845건으로 집계됐다. 사망자 199명, 부상자 1만3567명 등 총 사상자는 1만3766명이었다. 하루평균 8명(7.98명) 꼴로 사상자를 낸 셈이었다.

교통사고 100건당 전세버스 사상자 수는 235.5명으로 시외버스(206.1명)와 시내버스(153.5명), 택시(151.1명)보다 많았다. 2011년부터 5년간 전세버스의 대형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총 72건으로 전체 대형 교통사고(181건)의 39.8%를 차지했다. 대형교통사고는 사망자가 3명 이상 이거나 사상자가 20명 이상 발생했을 때를 말한다.

해외의 경우 전세버스 사고의 예방을 위해 각종 안전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는 운전자의 운전시간 제한(프랑스·네덜란드), 디지털운행기록계와 전자운행일지 등을 활용한 운행기록 고의적 오기 또는 누락 방지(미국·영국), 음주 운전 관련 시동 잠금장치(프랑스), 속도제한장치(네덜란드) 등이 있다. 운전기사의 장시간 운전을 엄격히 제한해 과로로 인한 사고 예방에 주력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김병욱 의원은 "단체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 전세버스 사고는 횟수나 피해규모로 볼 때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운전기사들의 과로운전은 사고로 직결되는 만큼 정부는 적극적인 관리 감독을 해서 선진국 수준으로 휴식시간을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윤 위원장은 "졸음 운전 방지를 위한 대책은 기본적으로 처우 개선이 되어야 한다"며 "지입차량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직영제로 운영되어야 사고 예방이 될 것"이라고 했다.

jpcho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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