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를 흔히 'N포 세대'라고 부른다.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은 물론 연애, 결혼, 출산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뜻한다. 올해부터 최저임금 인상이 시행됐지만 이들의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대다. 여전히 '을'의 위치에서 사회·경제적 '압박'을 견디고 있다. '서민 정부'를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각종 법안과 대책이 쏟아졌지만, 2030세대의 '삶'은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 하고 있다. 이에 <더팩트>는 2030세대들의 현 주소를 취재해 이들이 원하는 사회 방향과 가치를 알아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더팩트 | 김소희 기자] "20대 중후반 비혼 남성입니다. 얼굴도 잘생기지 못하고 170밖에 안 되고 그렇다고 몸짱도 아니고 연봉이 2600밖에 안 돼서 이때까지 연애 한 번 못해 본 솔로입니다. 어차피 돈이 굉장히 많거나 돈도 많고 잘생긴 남성들만 할 수 있는 게 연애와 결혼이라서 (여성을 원망하진 않아요. 동가홍상이니까요.) 이제 미련을 버린 지 오래돼요. 연애나 결혼을 못하면 모자란 놈이라는 시선이 두렵긴 한데요. 아직도 심한가요?"
포털사이트 네이버, 일명 '초록창'에 '20대 비혼'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나오는 '지식인 글' 내용이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을 외치며 기약 없는 미래에 불안해 하는 2030 세대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다.
현재 수많은 2030 세대가 스스로를 '비혼(非婚)'족이라 칭한다. 여기서 '비혼'은 '미혼'과 달리 결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즉, 비혼이란 말에는 결혼을 안 하는 것을 택했다는 자발적 의사 표현과 결혼 이외의 가족 형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선택 의지' 등이 함축돼 있다. 일종의 선언이다.
◆ 10명 중 7명 '결혼은 필요 없다'…시선이 불편할 뿐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520만3000여 가구로, 전체의 27.2%를 차지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결혼·출산 행태 변화와 저출산 대책의 패러다임 전환' 보고서에서는 50세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 독신율이 1990년 0.5%에서 2010년 2.5%로 급증했다. 2025년엔 10.5%까지 높아질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1인 가구 증가와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비혼에는 여전히 수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이 존재하고 있다. 직장인 최진혁(33) 씨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니 부모님이 이기적이라고 하신다"며 "어떤 사람은 어디 하자가 있냐는 악담을 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 내 삶에 굉장히 만족하며, 나와 마찬가지로 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는 지금 여자친구와 비혼 상태로 오래 지내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과거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섹스 앤더 시티'나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속 주인공들의 '싱글라이프'가 이제는 선망의 대상이 아닌 공감의 대상이 됐다. 전문가들 역시 비혼족이 많아지는 현상은 일시적이지 않다고 보고 있다. 2030 세대 안에서 결혼이 '선택'으로 여겨지는 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리서치 전문 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발표한 '비혼 문화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혼자 10명 중 7명은 '결혼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비혼족에 대해 '이해가 된다'고 답한 응답자는 68.3%에 달한다. 대체로 '남일 같지 않다'(63.6%), '공감이 간다'(60.8%) 등 비혼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다만 비혼을 선택하는 갖가지 이유 속에서도 남녀 차이는 있다. 가장 많은 수의 남성이 자신의 월급으로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경제적 부담감(56.7%)을 느낀다고 했다. 결혼 비용에 대한 부담감(47.3%)도 뒤를 이었다. 반면 여성은 자유로운 생활이 없어질 것 같은 두려움(59.5%), 새로운 가족 관계에 대한 부담(58%) 때문이라고 답했다. 남성은 경제적 측면, 여성은 사회적 측면으로 비혼을 택하고 있다.
◆ '돈·돈·돈'…비혼을 독려하는 사회?
이전 세대와 달리 2030세대에게 결혼은 더이상 인생의 과업이나 숙제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 2016년 혼인건수가 42년만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 통계청이 발표한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2016년 혼인건수는 28만1600건으로 전년(30만2800건) 대비 7% 감소했다. 연간 혼인건수가 20만 명대로 내려간 건 1976년(28만 5910건) 이후 40년만에 처음이다.
2030 세대가 결혼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적 부담'이 꼽힌다. 서울시의회 '서울시 1인 가구 대책 정책연구'에 따르면 '경제적 여건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20대는 39.7%, 30대는 39.2%에 달했다. 홀로 사는 2030세대 10명 중 4명이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소득이 낮을 수록 결혼하지 않는다는 상관관계도 나온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를 분석해 작성한 '출산과 청년 일자리' 보고서에서 20~30대 남성 노동자 임금 하위 10%(1분위)의 기혼 비율은 6.5%에 그쳤다. 반면 임금 상위 10%(10분위) 기혼 비율은 82.5%에 육박했다.
결혼 준비의 첫 번째 코스로 여겨지는 '내 집' 마련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도 결혼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켰다. 20~30대가 서울에서 내 집을 마련하려면 12년 이상 월급을 1원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통계치가 발표되기도 했다.
더욱이 경제난으로 취업이 늦어지고 어려워지는 추세에서 결혼 자금 마련의 어려움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신입사원 평균 연령은 남성이 28세, 여성이 27세로 조사됐다.
◆ 결혼하면 '82년생 김지영' 된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전업주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각종 사이트에서 2016년 '올해의 작품'으로 선정됐다. 이 책은 판매 50만 부를 달성하는 등 2030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2030 여성 독자들은 "현실적으로 여자는 일을 하든 안 하든 가사노동과 육아의 책임을 갖게 된다", "직장인 여성이 결혼을 하게 되면 집안 살림과 출산, 육아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경력을 지속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많은 남성 독자들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15~54세 기혼여성 5명 중 1명은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처럼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결혼, 출산, 육아 등을 이유로 경력이 끊겼다.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7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경력단절여성 및 사회보험 가입 현황'도 지난 4월 기준 15~54세 기혼여성 가운데 20%가 경력이 단절됐다고 보여준다. 연령별로 보면 30~39세(92만8000명)에 절반 넘게 몰려 있었다.
직장은 그만 둔 이유는 결혼(62만5000명)이 1위였다. 육아(58만1000명), 임신·출산(45만1000명)까지 더하면 90%가 넘는 이들이 김지영과 비슷한 이유로 전업주부가 됐다.
'비혼주의자'라고 밝힌 20대 후반 직장인 이모 씨는 "고용난도 결혼을 막는 장벽이지만, '워킹맘'에 대한 육아 지원책이 미비한 현실 속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희생으로 여겨진다"며 "결혼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기 보다 사회인으로서 인정받는 게 낫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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