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내려지는 판결은 얼마나 될까요? 대한민국 재판부는 원외 재판부를 포함하면 200여 개가량 됩니다. 그러니 판결은 최소 1000여 건 이상 나오겠지요. 대법원과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법이 몰려 있는 '법조 메카' 서울 서초동에선 하루 평균 수백 건의 판결이 나옵니다. <더팩트>는 하루 동안 내려진 판결 가운데 주목할 만한 선고를 '엄선'해 '브리핑' 형식으로 소개하는 [TF오늘의 선고]를 마련했습니다. 바쁜 생활에 놓치지 말아야 할 판결을 이 코너를 통해 만나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주>
[더팩트|서울중앙지법=김소희 기자] 법조계는 16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등장하는 '성매매 의혹 동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빌미로 이 회장 측에서 9억 원을 뜯어낸 일당에 대한 항소심 선고, 최저임금법에 따른 야간 및 연장 근로수당도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올라간 보고서 등을 공개하라며 제기된 소송의 항소심 결과가 주목을 끌었다.
○…'이건희 동영상' 촬영·협박한 CJ 전 부장, 항소심도 징역형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홍동기)는 16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등장하는 성매매 의혹 동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빌미로 이 회장 측에서 돈을 뜯어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공갈 등 혐의로 기소된 CJ 제일제당 부장 출신 선모(57) 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선 씨의 동생(47)과 이모(39) 씨도 1심과 마찬가지로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유사 성행위를 하고 동영상을 촬영한 중국 국적 여성 김모(31) 씨는 출산을 앞둔 점을 고려해 1심과 같은 징역 8개월을 선고하되 형의 집행을 2년간 유예했다. 협박에 가담한 공범 두 명도 1심과 같은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공모해 동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이용해 피해자 측을 협박해서 거액을 갈취했다"며 "죄책이 무거운데도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자의 용서를 받지도 못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선 씨 등은 2012년 3월 말 사생활 영상을 몰래 촬영하고, 이를 빌미로 삼성 측에 접근해 두 차례에 걸쳐 9억 원을 뜯어낸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적으면 통상임금 다시 계산"
각종 수당의 산정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적으면 최저임금을 새로 반영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수당을 재산정한 뒤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택시기사 황모 씨 등 1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부산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16일 밝혔다.
황 씨 등은 지난 2010년 자신들에게 지급되는 급여가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며 회사를 상대로 최저임금보다 적게 지급된 차액을 합산해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당시 이들이 받은 시급은 1460원이었지만 2010년 기준 최저임금은 4110원이다.
1,2심은 시급 1460원에 근속수당을 합한 액수를 기본급으로 보고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만큼 그 차액을 회사가 지급해야 한다"며 택시기사들의 손을 들어주고 1인당 567만~1924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은 연장근로수당도 최저임금의 1.5배에 맞춰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하급심과 같이 택시회사가 최저임금의 절반 수준에서 임금을 지급해온 만큼 그 차액을 지급해야 한다면서도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할 때는 최저임금의 1.5배가 아니라 늘어난 기본급을 기준으로 통상임금을 계산해 1.5배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을 산정하면서 그 통상임금이 최저임금액보다 적은 경우에는 곧바로 최저임금액을 기준으로 연장근로수당 및 야간근로수당을 산정해야 한다는 원심은 최저임금과 통상임금의 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靑 보고 문건' 공개 소송, 2심서 각하
서울고법 행정4부(부장판사 조경란)는 이날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올라간 보고서 등을 공개하라며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가안보실장 등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1심을 깨고 청구를 각하했다.
재판부는 한겨레 신문이 비슷한 취지로 낸 정보공개 청구 소송도 마찬가지로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이나 청구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제기된 경우 주장 자체를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녹색당은 2014년 8월 대통령비서실이 세월호 사고 당일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자료와 당시 청와대가 생산·접수한 문서들의 목록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또 청와대가 사용하는 특수활동비, 여행여비를 포함한 예산을 어떻게 집행하는지 등의 정보도 공개하라고 요청했다. 국가안보실에는 2014년 7월 예산 지출과 관련한 증빙자료를 요구했다. 대통령비서실 등이 요청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자 하 위원장은 같은 해 10월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처분은 적법하다면서도 사고 당일 청와대가 생산·접수한 정보의 목록은 공개하라고 했다.
한겨레가 제기한 소송에서도 1심은 청와대 보고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비공개 처분이 맞다고 하면서 다만 당일 대통령에게 올린 서면보고서의 문서 등록번호와 등록 시점 등 일부만 공개하라고 판단했다.
ks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