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를 흔히 'N포 세대'라고 부른다.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은 물론 연애, 결혼, 출산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뜻한다. 올해부터 최저임금 인상이 시행됐지만 이들의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대다. 여전히 '을'의 위치에서 사회·경제적 '압박'을 견디고 있다. '서민 정부'를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각종 법안과 대책이 쏟아졌지만, 2030세대의 '삶'은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 하고 있다. 이에 <더팩트>는 2030세대들의 현 주소를 취재해 이들이 원하는 사회 방향과 가치를 알아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더팩트 | 김소희 기자] "최저 임금 오르면 학자금 대출 갚는 부담도 줄고, 효도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꿈인 걸까요? 알바에서 내일부터 그만 나오라고 할까봐 겁부터 나요. 요새 사장님 눈치 보기도 바빠요." (20대 취업준비생 A씨)
"아르바이트나 할까봐요. 일한 만큼 시급 받는 거 아니에요? 저는 월급은 오르지도 않는데, 상여금만 깎였어요. 평일 저녁, 주말도 회사로부터 자유롭지 않거든요.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지금 월급으로 괜찮을까요?" (30대 직장인 B씨)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인상된 지 불과 보름 남짓 지났을 뿐인데, 사회 전반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고용주·기업·노동자 모두 자신이 직접적 피해 당사자라며 아우성이다. 특히 피고용자 신분이 대부분인 '2030 세대'들의 불만은 심각한 수준이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상여금이 깎이거나 휴게시간이 줄어드는 등 고용주의 '갑질'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 후 휴게시간 강제 연장, 상여금 기본급 전환, 식대·교통비 삭감, 유급휴가의 연차휴가 대체 등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며 "이는 최저임금법 제정 목적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취업하면 나아지겠죠?"…반갑지 않은 최저임금 인상
취업준비생 김지현(28·여) 씨도 최저임금 인상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김 씨는 얼마 전 1년간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던 빵집 점주로부터 "하루 근무시간을 8시간에서 7시간으로 줄이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6470원이던 시급이 7530원으로 오르면서 한달에 14만 원 정도 아르바이트 월급이 오를 것이라 기대했던 김 씨에게 '시간 단축' 통보는 갑작스러웠다.
김 씨는 다소 부당하게 느껴졌지만, 취업 준비 자금을 모으기 위해 당장 일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점주의 통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된 뒤 고용주로부터 해고나 근무시간 단축 통보를 받았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2일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천국이 지난달 21~29일 전국 회원 145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246명(16.9%)에 달하는 근로자들이 '근무 시간이 줄었다'고 답했다. 131명(9.0%)은 해고를 경험했다.
김 씨는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주휴수당 문제로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근무하게 하지 않는다더라"면서 "1년이나 일했고,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버거워서 갑작스러워도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얼어붙은 취업 시장을 뚫기 위해 취업스터디 외에도 토익학원, 면접 정장, 구두, 메이크업, 헤어 등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러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20대에게 아르바이트는 선택이 아닌 생존 수단이 됐다.
김 씨 외에도 많은 대학생과 취업준비생들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해결하고 있다. 부모님이 월세비를 지원해주는 취업준비생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김 씨는 하루빨리 취업에 성공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근로자 및 구직자 10명 중 7명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생존 수단의 위협까지 느끼고 있다고 한다. 알바몬 설문에서 응답자 72%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우려되는 상황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 중 '아르바이트 구직이 어려워질 것'(33.3%)이라는 응답자가 가장 많았고, '갑작스러운 해고·근무시간 단축 통보'(20.2%), '근무 강도 심화'(16.9%),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가게 사정 악화'(9.9%), '고용주와 아르바이트생 사이 갈등 심화'(8.7%), '임금체불 빈도 증가'(7.9%)가 뒤를 이었다.
◆ "회사 때려치고 아르바이트 하고 싶어요"…월급은 얼어붙고 수당은 줄고
직장인 이수진(31·여) 씨는 시간이 날 때면 아르바이트 포털을 드나들곤 한다. 최저임금 인상에 노동자가 하루 8시간 일해서 받는 월급이 157만3770원으로 올랐다는 뉴스를 보고 일할 의욕마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씨가 주5일 근무를 해서 받는 월급은 180만 원가량. 업무량이 넘쳐날 때면 야근, 주말근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 씨는 "상사 눈치보고 퇴근도 마음대로 못하고 주말에도 '카톡'으로 일을 시킬까봐 하루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럴 바엔 아르바이트 하면서 할당된 근무량만 하고 사는 게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분기마다 지급되던 상여금이 한 줄기 빛이었지만, 이마저도 매달 월급과 함께 나오는 것으로 지급 방식이 바뀌었다. 1년 상여금도 30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깎였다. 이 씨는 "최저임금이 지난해보다 16.4% 오르면 월급으로 따졌을 때 20만 원 정도가 올라야 하는 것 아니냐"며 "최저임금이 올랐다는 것을 전혀 실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많은 직장인들은 취업을 했다고 삶이 나아지는 건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최저임금이 인상돼도 삶이 팍팍한 건 여전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저임금 인상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각종 꼼수들이 일어나면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
지난 12일까지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는 100여 건이 넘는 '최저임금 갑질' 제보가 들어왔다. 특히 지난 2~6일까지 신고된 56건의 제보 중 한 달 이상의 간격을 두고 주던 상여금을 매달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꿔 최저임금 산정 범위에 포함하는 등 상여금을 줄이는 '상여금 갑질'로 신고된 사례는 절반 이상(30건·53.6%)다.
최저임금에 딱 맞춰 지급했던 월급을 올리는 대신 연 400%의 상여금을 없앤 곳, 임금을 줄이기 위해 식대·교통비·근무평가수당 등을 없애 기본금에 포함시키는 '수당 갑질' 사례 12건(21.5%) 등 각종 '꼼수'들이 현장에서 횡행하고 있다.
◆ '한 달 전만 해도 '꽃길'인 줄 알았지' 한탄에…정부 "괜찮아질 거야"
최저임금 시행 한 달 전만 해도 소비자 심리는 낙관적이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2017년 11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10월 소비자 심리지수는 6년 11개월만에 최고치인 112.3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종합 지표로 나타내는 소비자 심리지수는 2003~2016년 평균을 100으로 두고, 100보다 크면 낙관적으로 해석한다.
사회 곳곳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월급 수준도 인상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임금 인상안에 맞춰 회사와 연봉을 협상할 것 같다"이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현재 분위기가 '낙관적'이진 않지만, 직장인 2명 중 1명은 여전히 연봉인상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12일 발표한 '2018년 최저임금' 관련 설문조사에서 남녀 직장인 949명 중 47.9%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귀하의 연봉도 인상될까요?'란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연봉 인상을 기대하는 직장인들이 예상한 인상폭은 '5~10% 미만(44.4%)', '5% 미만(35.6%)', '10~15% 미만(13.6%)'로 조사됐다.
동시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실적 압박과 해고가 우려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2018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실적 압박과 해고 등을 걱정하느냐'는 질문에 직장인 31.9%가 '그렇다'고 답했다.
최저임금 시행 이후 부정적인 사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외국계 유통회사 코스트코는 시급을 1만 원(주휴수당 포함)으로 책정한 아르바이트 채용 공고를 게시했다. 울산 중구 태화동 한 아파트는 최저임금 인상 후 아파트 경비원 실직 소식에 스스로 관리비를 인상하면서 경비원과 환경미화원들의 고용을 유지키로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무조건 실업이 늘어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처음에는 다소 주춤해도 시간이 지나면 안정적인 수준을 나타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저임금 인상률 13.1%를 기록했던 2006년에도 실직자 증가나 물가상승 등 부정적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6년 고용률은 59.7%로 전년과 같은 수준이었다.
'2030 청년'들의 관심은 정부의 움직임에 쏠려 있다. 정부는 역대 최대폭(16.4%)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총력 대응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편의점·음식점업·아파트 등을 대상으로 최저임금 준수에 대한 계도기간을 준 뒤 이달 말부터 두 달간 중점적으로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오는 29일부터 3월까지 최저임금 준수 여부와 임금체계를 임의로 개편하거나 근로시간을 단축한 사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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