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와 산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IMF체제로 많은 사람들이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을 때 버팀목이 되어 준 게 산이다. IMF가 요구하던 혹독한 구조조정에 의해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거나 사업을 하다 망한 사람들은 눈을 떠도 갈 곳이 없었다. 친구, 직장동료들을 만나 술 한잔 하며 신세한탄도 해보지만 그 것도 한 두 번이지 매일 그럴 수는 없었다. 호주머니 사정도 어려웠다.
그 때 탈출구가 산이었다. 산은 멀리도 아닌 가까이에 있었고, 어디에도 있었다. 돈도 많이 들지 않았다. 만 원 짜리 한 장이면 충분했다. 산은 아버지들의 울분과 분노, 원통을 말없이 보듬어줬다. 산을 오르면 막혔던 응어리가 풀어지고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됐다. 힘들어도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면 어느 듯 정상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산에서 배웠다.
그들은 산에서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들은 산으로 들어간다. 그 때 우리들은 낮에는 산속에서 살았으니 절반의 ‘도시 화전민’이었던 셈이다. 산은 여기에 더해 건강도 덤으로 줬다. 만약 우리나라에 산이 없었다면 그 때 많은 사람들이 화나 분노를 삭이지 못해 정신병자가 됐을 것이다.
그 때 산을 오르면서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어 이니셜)가 5공화국 시절 등산을 한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됐다. 당시 YS는 정치 피규제자로 묶여 정치활동이 금지됐다. 정치인들이 정치활동을 할 수 없게 됐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었을까. 이럴 때 그는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을 결성,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산을 올랐다. 산에서 울분을 달래고, 단결과 결속력을 다지고, 건강까지 챙겼으니 일석삼조였다. 산을 타며 어려운 시절을 견디었으니 ‘정치적 화전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알게 모르게 어려울 때 우리를 지켜주고 힘이 되어준 게 산이다. 모든 것을 잃어 가진 게 없는 약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이 산이다. IMF때 산을 찾으면서 사람들은 물질적 소유, 풍요가 없이도 얼마든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소박한 행복’을 배웠다. 앞으로도 우리들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곁에 산이 있기에 두렵지 않다. 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 게 IMF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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