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대웅 기자] 부산에 사는 33세 직장인 박수연(가명·여) 씨는 지난 추석 인천에 사는 친오빠 집을 찾았다.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는 박 씨는 자신을 반기며 따르는 5살 조카에게 장난감을 선물하기로 결심했다.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장난감이 비싸야 2~3만 원이겠지'라는 생각을 했고, 명절을 맞아 쓰고 남은 1만 원권 상품권도 있어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렇게 박 씨는 호기롭게 조카를 데리고 대형마트 장난감 코너로 향했다. '이모 찬스'에 신이 난 조카는 전력질주하듯 장난감 코너로 내달렸다. 이것저것 둘러 보다 소꿉놀이나 인형정도를 고를 것으로 생각했지만 박 씨의 조카는 요즘 인기 있는 만화 캐릭터 장난감 앞으로 돌진했다. 그런데…. 가격표를 본 박 씨는 눈을 의심했다. 11만6000원. 부담스러운 가격에 다른 장난감으로 타협을 보려했지만 조카의 양보는 전혀 없었다. 꼭 해당 장난감이 갖고 싶다고 떼 쓰는 조카의 성화에 박 씨는 장난감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지갑을 여는 박 씨도 이 모습을 지켜 보는 오빠 박 씨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박 씨는 "장난감이 이렇게까지 비싼지 정말 몰랐다"며 "조카와 약속이니 지켜야한다는 마음에 구매는 했고, 조카가 좋아하는 걸로 만족해야겠지만 비싸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장난감 가격이 최근 들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진짜 '장난'이 아니다. 올 1월11일 통계청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장난감 가격은 전년(2015년)보다 4.47% 올랐다. 2009년 7.14% 오른 이후 7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또한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86년 이후 1988년(13.35%), 1998년(4.74%) 등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장난감 가격은 그동안 0% 내외의 상승률을 유지해 왔다. 특히 2011~2013년까지는 3년 연속 가격이 1% 내외로 하락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2014년 0.96%로 상승하며 3년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고, 2015년 상승 폭이 2배 넘게 확대된 2.29%로 치솟았다. 이어 지난해 또다시 2배 가까이 올랐다.
장난감 가격 상승은 여타 영유아 대상 상품 및 서비스 가격 중 단연 도드라진다. 지난해 국무총리 산하 육아정책연구소의 'KICCE(육아정책연구소) 육아물가지수 연구' 자료를 보면, 2015년 9월 기준 영유아 대상 상품·서비스 가격 상승률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의 6.6배나 됐으며 이 중 장난감 가격 상승 폭은 6.40%로 조사 대상 중 두 번째로 컸다.
그렇다면, 장난감 가격은 왜 오르는 걸까. 여러 가지 추측 중에 어른들의 '욕심'이 장난감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이 눈에 띈다. 원가가 오르는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의 의혹이 생기며 장난감 가격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해 없어서 못 팔았던 장난감이 있다. 바로 '터닝메카드(메카니멀)'다. (주)손오공이 수입해 판매한 이 장난감을 사기 위해 수 많은 부모들이 매장에 줄을 섰고, 수십만 원의 돈을 지불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주)손오공의 당시 재무제표를 들여다 보면 (주)손오공은 터닝메카드 열풍에 힘입어 매출 1251억 원, 영업이익 104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비해 2배 넘는 성장에 적자였던 회사는 단숨에 흑자로 돌아섰다. 터닝메카드는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하지만 (주)손오공의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비율)은 8.3%에 불과했다. 터닝메카드 열풍의 중심에 있었던 회사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한 성적이다.
(주)손오공은 장난감을 직접 제조해 판매하는 방식이 아닌 특수관계인인 (주)초이락컨텐츠팩토리로부터 매입하는 방식으로 터닝메카드를 판매했다. (주)초이락컨텐츠팩토리는 2015년 매출액 1325억 원, 영업이익 366억 원의 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터닝메카드 열풍 이후 매출액은 2015년에 비해 무려 439%, 영업이익은 802%나 급증했고, 영업이익률을 28%에 달했다. 터닝메카드 대박의 과실은 (주)손오공이 아닌 (주)초이락컨텐츠팩토리가 먹은 셈이다.
(주)초이락컨텐츠팩토리는 지분 대부분인 99.9987%가 최신규 손오공 회장 자녀 등 '손오공 오너' 일가의 소유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고개를 드는 대목이다. 손오공 측은 '보다 공격적으로 신사업 진출을 위해 (주)초이락컨텐츠팩토리 설립한 것일 뿐 일감 몰아주기는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난감 구매의 적절한 가격은 얼마일까. 온라인 쇼핑 플랫폼 이베이코리아는 지난해 4월 5일부터 5월 18일까지 20대부터 60대까지 성인남녀 1455명을 대상으로 '적정 장난감 구매 금액'을 묻는 설문을 실시했다. '본인의 장난감 구매 시'와 '아이·조카의 장난감 선물 시' 두 경우로 나눠 진행한 설문에서 다수의 응답자는 1만 원 이상 5만 원 미만을 적정 장난감 구매 가격으로 꼽았다.
유형별로 보면 본인의 장난감 구매 때는 40%의 응답자가 1만 원 이상 5만 원 미만을 적정 가격으로 꼽았고, 아이나 조카에게 선물할 때는 50% 이상의 응답자가 이 가격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지목했다. 반면 1만 원 미만과 10만 원 이상 15만 원 미만, 15만 원 이상 20만 원 미만은 모두 10% 아래의 저조한 응답률을 보였다. 결국 장난감 가격이 1만 원 이상 5만 원 미만일 때 지갑을 열 의사가 가장 크다는 설명이다.
1만 원 이상 5만 원 미만의 장난감 가격에 선호도가 높다고 해도 이 가격대의 장난감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단적으로 온라인 쇼핑몰 11번가가 올 설(1월9~15일) 일주일 간 판매된 선물세트 구매 데이터를 분석해 내놓은 결과를 보면 3만 원 미만의 저가형 선물세트 판매비중이 전체에 87%에 달했다. 청탁금지법으로 불리는 '김영란법' 시행 후 첫 명절이라는 시기적 특징을 고려하더라도 설 선물을 훌쩍 뛰어넘는 장난감 가격은 왠지 생경하다. 그런 의미에서 '장난 아닌' 장난감 가격에 사라져 가는 1만 원의 행복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팽이, 구슬, 딱지, 공기놀이 등은 3040세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고 놀아봤을 장난감이다. 골목 흙 바닥에 엎드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던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물건이다. 1만 원이면 철제 분유통에 다 담지 못할 만큼 많은 구술과 딱지 등을 살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지금의 부모들에게 '1만 원의 행복'이 추억 속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3040세대의 어린 시절과 지금을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하지만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다. 장난감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해주며 신체적·정서적 발달의 수단이라는 근본적 기능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데도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어른들도 부담스러워 하는 어린이 장난감 가격. 왠지 생소하고 씁쓸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