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순의 길거리 사회학] 나이 든 친구, 이름 부르기 곤란하시죠?

동문 수학한 학교 친구들은 편하게 부담 없이 만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손자까지 둔 친구에게 계속 이름을 부르는 것은 불편하다. 서로의 격을 높일 수 있는 호가 필요한 이유다./더팩트DB

호(號)가 필요한 시대

[더팩트 | 임태순 칼럼니스트] 관동별곡을 쓴 조선시대 문인 정철의 이름 앞에는 송강(松江)이 따라붙는다.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의 이름 앞에도 백범(白凡)이 빠지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본명과 호가 바늘과 실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백범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머리가 아니라 발이 되겠다는 그의 낮은 자세가 담겨 있어 머리가 숙여진다.

학창 시절 ‘옛날 사람들은 왜 이름을 여러 개 가져 수험생들을 괴롭게 만들까’라는 생각을 했다. 유명한 사람들의 호나 자(字)를 묻는 문제가 시험에 종종 출제돼 암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의 업적 챙기기도 바쁜데 호나 자까지 외워야 하니 이만 저만 성가신 게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학창 시절 친구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 한창 사회생활을 할 때는 바빠서 얼굴을 볼 수 없었으나 이제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동문 수학한 학교 친구들은 편하게 부담 없이 만날 수 있어 좋다. 머리가 벗겨지거나 반백인데도 서로 이름과 별명을 부르거나 "야" "자"하기도 한다. 심하면 "이놈" "저놈" 쌍소리를 해도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학교라는 공간에서 추억을 쌓으면서 정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 둔 뒤에도 직장동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눈다. 회사생활이라는 공통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동료들을 만날 때에는 호칭이 학교 동창들만큼 편하지는 않다. 나이가 있으니 이름을 부르기는 뭣해서 김 국장, 이 실장, 박 이사 등 직장에서의 최종 직책으로 부른다.

완연한 가을 날씨가 계속 되면서 어릴 적 친구들과 등산을 하는 인구가 늘고 있다. 반백의 나이대에선 과거 직장 동료나 학교 동창들의 이름과 직급을 부르는 것보다 호를 만들어 부르면 더 존중받는 것 같아 좋을 것 같다./속초=임세준 기자

또 직책이 서열 또는 상하관계를 나타내 불편하다고 해서 성 뒤에 공(公)을 붙여 김공, 이공, 박공하며 공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학창 시절 친구들도 처음에는 아무렇게나 부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선뜻 이름이나 별명 등으로 부르기가 어려워진다. 아무리 친한 동창이라도 어엿한 한 집안의 가장인데다 개중에는 자녀들을 출가시켜 할아버지가 된 친구도 있어 이름만을 부르기가 멋쩍다.

나이가 든 어른인 만큼 뭔가 대접해주고 존중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어머니들도 자식이 결혼하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아범’이라 하지 않았던가. 특히 사장, 총장, 장·차관 등 높은 직책에 오른 사람은 좀 신경이 쓰인다. 우리 조상들은 스무살이 되면 성년식을 치르고 관례를 주관하는 어른이 자를 지어주었다. 즉 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붙여준 성년의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에 걸맞는 이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름의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자의 전통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이름이 좋지 않다고 해 개명한 사람은 봤어도 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이에 반해 호의 전통은 아직 남아 있다. 호는 본인 또는 스승이나 친구들이 지어주는 별칭으로 특히 글을 쓰는 문인들 사이에선 이름과 호가 함께 쓰이고 있다. ‘국화 옆에서’를 쓴 서정주 시인은 ‘미당’(未堂), 청록파 시인 박영종은 ‘목월’(木月)로 본명보다 호가 널리 알려졌다. 아무리 동년배라도 나이가 들면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 어려워진다. 이럴 때 이름 대신 호로 부르면 편하고 한결 운치가 있어 보인다.

이제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어 100세 시대라는 말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나 다 긴 노후를 맞게 된다는 말인데 노후에 부르는 이름 하나 쯤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대화가 상대편을 부르면서 시작되는데 맞춤한 호칭이 없어 출발부터 꼬이면 대화가 잘될 리 없다. 노후에 자신을 부르는 별칭으로는 호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 호뒤에 선생을 붙이면 누구나 다 편하게 부를 수 있고 당사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현직을 떠난 지 10, 20년이 지난 사람에게 옛날 직책을 붙여 부르는 것은 과거의 향수에 매달린 것 같아 보기에 좋지 않다.

내 호는 태백이다. 고향에 있는 산 이름을 따서 붙였다. ‘태백’ 또는 ‘태백선생’. 부르는 사람도 편하고 나 역시 대접받는 기분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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