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라이프人>은 일반인이지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일반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힘든 일상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일상을 내보이며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알고 희망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오경희 기자] 29년 전, 그는 500여 명 앞에 알몸으로 섰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귓가에 카메라 셔터 소리가 수천 번 들렸고, 눈앞에 불빛이 쉴 새 없이 번쩍였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누드모델로 활동 중인 한국누드모델협회 하영은(49) 대표의 첫 무대였다. 스무살 무렵 생활고에 "딱 한 번만 하자"며 독한 마음을 품었던 그를 지금까지 붙잡은 것은 무엇일까.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한 건물 내 지하에 마련된 협회 사무실에서 하 대표를 만났다.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넨 그의 첫인상은 작열하는 태양만큼 강렬했다. 눈빛이 범상치 않았다. 지난 세월 쌓은 내공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누드모델 일요? 힘들어요. 보통 미술대 실습실은 장소가 좁고 더럽거든요. 옷도 화장실에서 갈아입죠. 한 번은 누드 크로키 수업 모델이었는데, 음료수캔, 과자봉지, 미술재료 등이 뒤엉킨 더러운 바닥에 지저분한 담요를 아무렇게나 놓고 누우라고 하더군요. 일이니까 포즈를 취하는데 남학생이 제 몸 위를 넘어가는 거예요. 얼마나 놀랐겠어요. 저를 사람으로 인정을 안하는 거죠."
하 대표는 예나 지금에나 누드모델은 직업인으로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 일이 많다고 했다.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1988년, 20세에 누드모델을 시작한 그가 28세이던 1996년 '협회'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고, '공개 누드모델 1호'로서 삶을 선택했다.
"1988년, 그러니까 제가 스무살 때였어요.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자유를 찾아 상경했죠. 집안이 엄했거든요. 낮에는 작은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경양식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단골 사진작가가 누드모델을 제안했어요. 그 시절엔 남자랑 같이 길만 걸어도 손가락질 받는데 먹고 사는 게 힘든 시절이라 '부모님이 알게 되면 다리 몽둥이 부러진다'는 걸 알면서도 딱 한 번만 하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제 한달 치 월급보다 많은 페이에 두 번 세 번하면서 전업 누드모델의 길을 걷게 됐죠."
경제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일에 대한 자부심이 그를 버티게 했다. 하 대표는 "제가 독립심도 강하고, 고집도 세고, 남이 안하는 걸 찾는 스타일이다"며 "사람들에 둘러싸여 서 있는 순간, 내가 중심이며 최고라는 느낌을 받는다. 또 저를 모델로 작품을 했던 작가들이 좋은 성과를 거뒀을때 희열을 맛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없이 '더러운 경험' 또한 마주해야 했다. '누드모델 하영은'이란 명함을 받은 이들은 "술집 여자 명함인줄 알겠다"면서 찢어서 버렸고, 면전에서 대놓고 "옷을 벗어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일과 세상의 편견 사이에서 맞서 싸웠다.
"한 대학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수업을 준비하던 강사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어요. 그런데 제 눈도 쳐다보지 않고 '옷 벗어보세요'라고 말했어요. 이어 '야한 포즈 가능한가요? 아 벗는 게 야한건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네? 여기서 바로요? 성추행적 발언입니다'라고 했더니, 그 강사는 당연한듯 '여기서 그런 게 통하나요?'라고 도리어 제게 물었어요. 남자 강사였을 것 같죠? 여자 강사였어요. 화가 치밀었지만 거기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니까 할 일을 다한 뒤 대학 관계자에게 정식으로 항의를 했습니다. 이후 강사는 마지 못해 사과 아닌 사과를 했어요."
한창 대화를 나누던 중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하 대표는 "(저 지금 인상이) 세 보여요?"라며 물었다. 부어오른 왼쪽 뺨을 만지며 "최근에 사랑니가 났어요. 사진에 얼굴이 이상하게 나올까봐 인터뷰를 미룰까도 밤새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기(氣) 센 언니'처럼 보여도 천생여자였다.
사실 아직도 성(性)에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누드모델로 활동한다는 것은 평범한 삶과 거리가 있어 보였다. 하 대표 역시 불과 3년 전만해도 자신의 삶에서 사랑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드모델 일을 시작하기 전, 몹쓸 짓을 당했다. 그리고 그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살면서 누구나 최악의 순간을 맞잖아요. 그때 생각하면 못할 게 없고. 스무살 때 직장상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죽으려고 별의별 생각을 다했어요. 아랫도리를 뜯어버리고 박살내고 싶었어요. 여자인걸 포기하고 싶었죠. 그런데 부모님을 생각해서 정신차렸어요. 자식이 먼저 죽으면 안되잖아요. 협회 만들면서 세상에 알려졌을때 오빠들이 저 죽인다고 올라온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가족들도 이해해주고 예전처럼 저를 많이 아끼지만요."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앎)'의 나이에 접어든 하 대표는 오늘도 누드모델로 세상 앞에 서길 마다하지 않는다. 작가들은 오랜시간 누드모델로 경력을 쌓은 하 대표만의 매력에 여전히 그를 찾는다. 알음알음 스무명 남짓의 지인들과 시작한 협회는 500여명의 회원을 둘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그만큼 직업인으로서 누드모델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열심히 연애 중이다.
"누드모델 일을 쉽게 생각하고 시작하려는 분들도 많아요. 협회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나이불문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조언하죠. 옆에서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지금 현재 누드모델일을 하지만 30년 동안 하다보니 저 역시 표현의 한계를 느끼고 있어요. 새로운 표현, 새로운 연기, 새로운 음악…. 사진과 그림 등 작품마다 콘셉트가 다 달라져야 하거든요.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몸짓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죠. 저는 제 인생의 마지막까지 누드모델로 기억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