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대웅 기자] 13일 최전방 중부전선에서 북한군 1명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우리 군 GP를 통해 귀순 의사를 전달했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한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처음이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50분쯤 경기 연천군 일대 비무장지대(DMZ) 내 아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우리 군 장병이 북한군 1명을 발견했다. 군은 북한군의 귀순 의사를 확인하고 신병을 확보했다. 귀순 당시 북한군은 군복 차림의 비무장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우리 군은 관련 기관들과 함께 구체적인 귀순 동기와 경로를 조사 중이다.
북한군 1명 귀순 소식에 역사에 남은 역대급 '귀순' 사례들도 재조명 받고 있다. <더팩트>가 역사의 한 장면이 된 역대급 귀순 사례를 모아 봤다.
1.전투기 몰고온 이웅평
1983년 2월25일 북한의 주력 전투기 미그 19(MIG-19)를 끌고 귀순한 이웅평 대위는 "자유를 맛보고 싶다"면서 전투기를 타고 남녘땅을 밟았다.
이웅평 대위는 평남기천비행장에서 출발 연평도를 지나오기까지 북한군 소속 전투기들이 따라붙자 초고속 저공비행으로 아슬아슬하게 남한까지 왔다.
이후 이웅평 대위는 북한군 계급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소속 공군 소령으로 재입대했다. 또 당시 그가 타고 온 미그19의 군사학적 가치를 인정 받은 많은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웅평 대위는 1997년 간경화를 쓰러진 뒤 2002년 간기능부전증으로 사망했다.
2.판문점 '기습' 귀순 이수근
1967년 3월2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 부사장이었던 이수근은 판문점에서 기습적으로 귀순했다. 이날 판문점에는 제242차 군정위본회의가 열렸고, 이를 취재하던 이수근은 취재 중 남한 땅을 밟았다.
이수근은 앞서 UN사 측에 귀순 의사를 비밀리에 전했고, UN사는 세단 한 대를 미리 대기해 이수근이 재빨리 차에 탑승해 남쪽으로 내달릴 계획을 세웠다.
결국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됐고, 이수근은 무사히 귀순했지만 1969년 이중간첩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3. '무장공비' 귀순, 김신조
지금은 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신조는 북한 무장공비 출신으로 1968년 1월21일 청와대를 습격하려던 북한 특수부대 소속으로 남한으로 넘어왔다.
남파된 북한 특수부대 124군부대 소속 31명 중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는 이후 귀순했다. 김신조는 귀순 이유에 대해 '김일성의 허위선전에 속아 살아왔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4. 일가족 11명 모두 끌고 귀순 김만철 일가
1987년 신문과 방송의 모든 관심은 한 가족에게 집중됐다. 목숨을 걸고 1987년 1월14일 청진항에서 50톤급 청진호를 타고 일본과 타이완을 거쳐 25일 만에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만철 씨 일가 11명의 생생한 귀순담을 듣기 위해서다. 당시 68세 노인부터 11세 어린이까지 김만철 씨 일가의 탈북은 국내는 물론 외신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5. '상관 사살' 귀순, 생사 가른 4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이 현실이 됐다. 다만 주인공이 우리 군이 아니라 북한 군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2012년 10월6일 북한군 1명이 상관을 살해하고 경의선 남북관리구역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했다.
상관 사살 귀순 병사는 이후 우리 군에 "북한 경비초소에서 경계근무를 하던 중 소대장과 분대장을 사살하고 귀순했다"고 말했다. 사살 후 소총을 버리고 비무장지대 북한 군 초소에서 우리 군 초소까지 약 500여 미터를 전력질주했다고 밝혔다.
6. 국방장관까지 사과한 '노크 귀순'
2012년 10월2일 북한군 병사 1명이 우리 군 GOP(민간인 통제구역) 창문을 두드리고 귀순했다.
당시 노크 귀순은 우리 군의 경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여실하게 드러내며 국방부 장관까지 나서 사과하게 하는 일대 사건이 됐다. 흔히 휴전선으로 말하는 철책은 내책과 외책으로 구성된 2개의 철책이 대한민국의 동서를 가르고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군 철책과 남한군 철책 사이에 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이 GP가 있는 비무장지대(DMZ)다.
결국 '노크 귀순'한 북한군은 북과 남의 철책을 모두 넘고 비무장지대에 널린 지뢰를 모두 피한 뒤 북한의 GP 근무자와 남한의 GP 근무자들의 눈까지 완벽하게 피해 귀순한 셈이다. 이후 군은 귀순 유도벨을 설치하며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7. GP 인근서 하룻밤, '숙박 귀순'
'노크 귀순'에 이어 '숙박 귀순'도 우리 군의 경계 태세를 의심하게 하는 중요한 귀순 사례로 꼽힌다. 2015년 6월15일 당시 19세로 알려진 북한군 하전사(가장 낮은 계급) 1명이 우리 군 소초로 귀순했다.
그는 귀순 하루 전날인 14일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500m 떨어진 언덕에서 잠을 잔 뒤 다음 날 아침 우리 군에 귀순 의사를 밝혔다.
북한 군이 우리 군 관할지역에서 숙박까지 하며 귀순할 때까지 군 당국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숙박 귀순'은 큰 논란을 낳기도 했다.
하전사는 귀순 이유로 상습적인 구타에 불만을 품고 남녘으로 넘어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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