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대웅 기자] 정유년 새해 첫날. 한국사회를 수렁으로 빠뜨린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덴마크 경찰에 체포됐다.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정유라 체포 장면은 한 편의 영화를 방불케 하며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다. 오죽하면 그녀가 입은 패딩 점퍼와 티셔츠, 그녀 탄 자동차와 그녀의 반려동물까지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유라 패딩은 100만원대 명품 브랜드로 알려졌고, 그녀의 영화 '스타워즈' 한정판 티셔츠는 팬들 사이에서 '부르는 게 값'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대중은 왜 정유라 패딩에 주목할까. 흔히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이의 패션과 스타일을 대중이 따라하는 것을 블레임 룩이라고 한다. 블레임 룩은 사회에 미친 사건의 영향이 클수록 파급효과도 비례한다. 이 경우 브랜드의 간접광고는 물론 매출도 급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1999년 탈옥수 신창원이 입었던 이탈리아 미소니의 화려한 패턴 니트와 2000년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이 검찰에 소환될 때 착용한 '에스까다' 선글라스, 학력 위조 파문 및 현직 장관과 스캔들로 구설에 올랐던 신정아의 돌체 앤 가바나 재킷 등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상식적으로 범죄자의 옷차림을 따라하는 심리는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 대중은 그리고 우리는 왜 이들 '범죄자'의 옷차림을 모방하려는걸까.
결론부터 말해 블레임 룩의 본질은 사회적 가치의 재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를 비난(Blame)한다는 것의 이면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규범과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 잘못한 사람을 지탄하면서 사회적 가치와 규범을 재확인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범죄자와 선량한 시민은 구별되고 착한 구성원들간 연대의식도 강화된다. 특히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지던 이 사회의 가치들이 재조명 된다. 무너진 사회의 정의와 옳음 등 긍정적 가치는 범죄자들의 옷차림을 통해 가장 간단하면서도 단편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블레임 룩은 잠시 잊고 있었던, 정확하게 말해 당연하게 여겼던 가치를 시각화해 대중에게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다. 결코 겉으로 비난하면서 속으로 부러워하는 이중심리가 다가 아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신는다.' 지난해 10월31일 검찰에 출석한 최순실이 프라다 신발 한 짝만 남긴 채 검찰청으로 사라진 뒤 많은 누리꾼들은 울분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도 최순실의 프라다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아니었다. 이른바 '최순실 신발'은 실제 매출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따라하기에는 너무도 파렴치했고, 최순실을 향한 분노가 너무도 큰 탓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프라다 관계자 마저도 '하필 왜 프라다를…'이라며 곤혹스러워 했다.
정유라 패딩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두고 볼 일이지만은 확실한 건 정유라 패딩으로 시각화된 우리 사회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