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지난 주말 부산에서 발행한 끔찍한 교통사고가 충격을 주고 있다. 사고도 사고지만 가해자가 '뇌전증'을 앓고 있음에도 운전면허를 취득했다는 점에서 더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운전면허제도가 가진 사각지대를 여실히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사고는 지난달 3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좌동 해운대문화회관 사거리에서 발생했다. 가해자 김 모(53) 씨는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 횡단보도를 건너던 A(42·여) 씨와 아들 B(18) 군, C(15) 군 등 보행자 4명을 치고 마주 오던 차량과 부딪혔다. 이 사고로 3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쳤다. 대낮 도심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고다.
2일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9월 뇌전증 진단을 받고 하루 2번씩 약을 먹어 왔다. 뇌 질환의 일종인 뇌전증은 과거 '간질'로 불리던 병명으로 약을 먹지 않으면 경련을 일으키거나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는 발작 증세를 보인다.
김 씨는 사고 이후 경찰 조사에서 "평소 당뇨약과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오늘은 먹지 않았다. 왜 사고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로교통법 제82조는 정신질환자, 간질환자, 마약, 대마, 향정신성 의약품, 알코올중독자 등은 면허를 득하지 못하고, 자진신고 해야 한다. 사고를 낸 김 씨는 뇌전증 환자로 도로교통법에 따라 면허를 득할 수 없다. 김 씨는 지난 7월 적성검사를 받고 면허를 갱신해, 운전면허를 재발급받았다. 법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도로교통법 제90조(정신 질환 등이 의심되는 사람에 대한 조치)는 도로교통공단이 제82조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분야 전문의의 정밀진단을 받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씨는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통과했다. 적성검사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실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적성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 도로교통법 제87조 '운전면허증의 갱신과 정기 적성검사'의 규정에는 후천적 정신질환 등에 관한 자진 신고 등의 내용이 없다. 다만, 제88조, 제89조에 따라 후천적 신체 장애 등에 해당할 경우에만 수시적성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부산 사고를 낸 김 씨는 도로교통법의 적성검사를 무난히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간질환자 등 정신질환자의 경우 6개월 이상 입원한 경우 지자체, 경찰청, 도로교통공단 등으로 통보하도록 한다. 그러나 6개월 이상 입원하지 않은 경우가 문제가 된다.
지난달 17일 영동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고속버스 6중 추돌 사고 운전자 또한 기면증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4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기면증은 수면발작(야간에 충분한 수면을 취함에도 낮에 심한 졸음), 탈력발작(감정적으로 흥분할 때 힘이 빠지는 증상), 입수면기의 환각, 수면마비(가위눌림) 등 네 가지의 특징적인 증상을 보이는 수면 장애의 일종이다.
이 기면증은 면허 획득 기준에서 빠져있다. 언제 어디서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법이 이렇다 보니 운전자나 보행자나 도로 위 시한폭탄에 고스란히 노출했다고 할 수 있다. 약물을 정기적으로 복용해 문제가 없는 이들조차 면허취득에 제약을 둔다면 '차별'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따라서 더욱 엄격한 기준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나 민간이나 이번 부산 해운대 사고를 계기로 삼아 면허취득과 이후 운전면허갱신 시 적성검사 제도를 보완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