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쪽방촌, "말할 힘도 없으니까 좀 가라"

덥다 더워 푹푹 찌는 무더위가 이어진 지난 4일 <더팩트>는 폭염 취약 계층이 밀집해 있는 영등포 쪽방촌(村)을 찾았다. /영등포동=이성락 기자

무더위 쉼터, 쪽방촌 노인들에겐 '에베레스트'

"여름엔 더워서 살지도 못해. 무더위 쉼터? 다리가 불편해서 어딜 편히 갈 수 있어야 말이지."

다섯 살배기 손자와 단둘이 사는 김필(70) 할머니는 방안에 앉아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김 할머니의 집은 이른바 '영등포 쪽방'이라고 불리는 한 평 남짓 공간. 연일 30도를 웃도는 낮 기온 탓에 김 할머니의 방은 '찜통'이다. 선풍기를 틀어도 속수무책, 후끈한 바람에 가슴만 더 답답해진다.

지난 4일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온열 질환 감시체계 운영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일까지 일주일 동안 폭염으로 인한 온열 질환 사망자는 7명에 달한다. 온열질환자 생기는 이유는 바로 푹푹 찌는 무더위, 사망자는 주로 노인이다. 특히 김 할머니와 같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폭염에 무방비 상태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입술이 바짝 마를 정도로 더웠던 4~5일(낮 기온 각각 31도, 33도) 이틀간 <더팩트>는 '폭염 취약 계층'이 밀집해 있는 '영등포와 동자동 쪽방촌'을 찾았다. 주민 대부분이 노인인 이곳은 냉방 시설은커녕 마실 물도 넉넉하지 않아 폭염에 직격탄을 맞는 곳이다. 서울시가 '폭염 대책'으로 꺼낸 무더위 쉼터도 시원찮다. 몸이 불편한 노인 빈곤층에겐 그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 이러나저러나 '쪽방 노인'들에겐 여름은 공포의 계절이다.

◆ 제구실 못 하는 무더위 쉼터…"몸 불편하면 어떻게 가라고"

빽빽 영등포 쪽방촌에 사는 노인들은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영등포동=이성락 기자

"말할 힘도 없으니까 좀 가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가만히 있는 사람의 표정에는 짜증이 섞여 있다. 아무리 부채질을 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 좀 더 시원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겨우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는다. 그야말로 '폭염 노역'이다.

더위를 피할 곳은 없다. 실내도 마찬가지다. 좁은 방 한편에 있는 선풍기를 틀어보지만, 뜨거운 바람만 불어댄다. 쪽방촌의 여름은 한 마디로 뜨겁다.

영등포 쪽방촌 주민 부기현(60대) 씨는 더위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는 "늙은이들 생활이 이렇다. 누가 관심을 가지겠냐"며 인상을 잔뜩 구긴다.

공원 바로 옆에는 무더위 쉼터가 마련돼 있다. '사랑방'으로 불리는 무더위 쉼터는 냉방기기가 항상 작동하고 있어 더위를 식힐만한 곳으론 최적의 장소다. 하지만 무더위 쉼터를 이용하는 노인은 많지 않다.

쪽방은 뜨거워 집 앞에 나와 부채질로 더위를 피하고 있는 노인들. /영등포동=이성락 기자

문제는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불편한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250여 명의 주민이 대부분 노인이며, 몸이 불편하거나 지병을 앓고 있는 인원은 87명이다. 적어도 87명의 주민은 무더위 쉼터를 이용하지 못한다.

쉼터는 따로 있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은 주로 집 앞 그늘에 자리를 깔고 앉아 무더위와 씨름했다. 뜨거운 쪽방보다는 조금은 더 시원하기 때문이다.

무더위 쉼터를 이용하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사실상 폭염 대책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쪽방촌 노인들을 관리하는 영등포쪽방상담소에서도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영등포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안부 전화나 방문을 통해 87명의 건강 체크를 하고 있다"면서도 "무더위에 굉장히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행여 목숨을 잃진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매일 노인들을 업어서 (무더위) 쉼터로 데려다주는 수밖에 없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며 "하지만 쉼터로 이동하는 문제도 있지만, 다시 쪽방으로 되돌아오는 문제도 있다. 직원 몇 명으로는 그 많은 인원을 다 관리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폭염 대책, 무더위 쉼터뿐?

무더위 쉼터 못가요 폭염 대책으로 무더위 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거동할 수 없는 노인들은 더위를 피할 방법이 없다. /영등포동=이성락 기자

서울 지역 다른 쪽방촌의 사정도 살펴봤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더팩트>가 5일 찾은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는 창문이 없는 방이 태반이다. 공기순환이 되지 않아 방 안은 그야말로 가마솥이다.

실제로 더위로 인해 건강이 나빠진 주민도 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얼마 전 변 모(85) 할아버지가 더위로 몸이 약해져 병원에 입원했다.

최영순(75) 할아버지는 "삶아져 죽는 거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원이 일절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무더위 쉼터에 가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무더위 쉼터는 아무나 못 간다. 걷지 못하는 노인, 돈 없는 노인은 못 가는 거다. 무더위 쉼터에서 장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동자동 쪽방촌도 마찬가지 더팩트가 5일 찾은 동자동 쪽방촌에는 창문이 없는 방이 대부분이라 실내는 가마솥을 방불케 했다. /동자동=이성락 기자

무더위 쉼터는 '동자동 쪽방촌'에서 불과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장소에 있다. 특히 카페로 꾸며져 비교적 시설이 좋다. 그만큼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고,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도 마련돼 있다.

하지만 최 할아버지는 바로 이점을 문제로 짚는다. 그는 "돈 없이 들어가기에는 부담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물 받으러 나와요 무더위 쉼터 외 폭염 취약 계층을 위한 대책은 생수 보급이 있다. /영등포동=이성락 기자

무더위 쉼터 외 취약 계층을 위한 또 다른 폭염 대책은, 가구당 한두 병씩 매일 생수를 지급하는 것이다. 얼린 생수는 쪽방 노인들이 폭염을 이겨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노인들은 받은 생수로 머리를 식히는 등 한낮더위를 버티고 있다.

하지만 생수 보급도 무더위 쉼터와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노인들이 직접 물을 받기 위해 특정 장소(무더위 쉼터, 공원)로 이동해야 한다. 한마디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생수를 받을 수 없다. 지금까지 마련된 '폭염 대책'으로 더위를 막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진행 중이거나 예정인 다른 대책은 없을까. 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시 관계자와 전화연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휴가철이라 연결이 쉽지 않았고, 쪽방촌 관련 대책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영등포 구청 관계자와도 연결에 실패했다.

어렵게 용산구청 관계자와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속 시원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 그는 "무더위 쉼터가 있다. 더우면 무더위 쉼터에 가서 쉬면 된다"는 대답뿐이었다.

[더팩트ㅣ영등포·동자동=이성락 기자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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