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철거 업체 "우려할 수준 아냐" vs 환경단체·주민 "믿을 수 없어"
'석면', 침묵의 살인자. 최근 이 석면이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문제로 대두되며 주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에서 유동인구(2014년 현재 하루 지하철 이용객 9만3164명)가 가장 많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주변에 아파트 재건축으로 인한 석면이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는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27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석면 해체·철거 작업이 진행 중인 잠원동 반포한양아파트, 반포동 삼호가든4차아파트·서초한양아파트에 쓰인 석면폐기물 사용 면적이 약 2만㎡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 석면 자재를 해체·철거·운반하는 과정에서 석면 비산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약 11만 명의 주민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석면 철거를 맡은 해당 아파트 건설 업체 측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서초구청 역시 "주민들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석면 그 자체에 대한 위험성은 인정하지만, 철거과정에서 지적된 '허술함'은 없다고 설명했다.
◆ "주민 불안 이해하지만, 공포심 가질 필요 없어"
재건축 반경을 살펴보자. 환경보건시민센터(이하 센터)에 따르면 반포한양아파트의 석면폐기물 무게와 사용면적은 120톤·1만 1470㎡, 삼호가든4차아파트는 80톤·7029㎡, 서초한양아파트는 14.8톤·844㎡이다. 센터는 "이 엄청난 양의 석면을 파손 없이 해체하기란 매우 어려우며 파손 시 석면 비산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주변 환경 오염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또 건설 업체가 이 상황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으며, 감시단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28일 <더팩트>와 만난 건설 업체 관계자는 센터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며 억울해 했다.
A 건설 업체 관계자는 "석면 철거 작업을 하면서 석면농도 데이터를 서초구청에 보고하고 있다. 만약 그 기준치가 넘어서 피해가 우려된다면, 구청 측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말했다.
그는 "센터 측에서 철거 업체와 감리 업체를 같은 회사라고 의혹을 제기했는데, 우리는 원칙적으로 조합에서 발주할 때 철거 업체와 감리 업체를 달리 두고 있다"며 "주민감시단도 이미 조직했다. 경원중학교와 잠원어린이집에서 추천하는 주민감시단에게 설명회를 하고 석면 철거에 대한 부분을 공개하고 있다. 주변 아파트 경우 역시 관리사무소, 입주자 대표 회의 등에 참석해 석면 철거에 대한 부분을 다 설명했다"고 해명했다.
B 건설 업체 관계자 역시 "감리 업체에 대한 부분은 제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고, 주민들에게 석면 철거와 관련, 정보를 모두 공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공설명회를 꾸준히 하고 있다. 지난달 8일부터 이달 22일까지 5~6차례 학교와 주민 등을 상대로 설명회를 했다.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석면에 대한 위험도가 높은 만큼 주민들이 느낄 불안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제대로 밀봉한 상태로 작업을 진행하려고 노력하는데, 마치 무자비하게 철거작업이 진행되는 것처럼 비치면 옳지 않다. 차라리 '시공사들이 더 철저히 관리했으면 좋겠다'라는 측면에서 감리 강화 요청을 한다면 우리도 찬성이다"고 덧붙였다.
일단 지적받은 세 곳의 아파트 건설 업체 측은 "왜곡된 내용이 보도될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석면 철거 현장 공개를 거부했다. 하지만 연신 "석면 노출에 대한 지나친 공포심은 느낄 필요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서초구청 측의 설명도 건설업체와 마찬가지였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해당 아파트에 대한 석면 농도 결과는 추후에 발표할 예정"이라면서도 "미리 말하자면 기준치 이하로 나왔다. 주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구청 관계자는 이어 "홈페이지에 석면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자세한 정보는 앞으로 더 공개할 예정이다. 석면 철거 작업 일지, 농도 등을 공개할 테니 주민들이 확인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일단 '문제'가 제기된 만큼 신중하게 검토 단계를 거친다는 입장이다. 건설 업체와 구청의 설명대로 '공포' 수준의 상황은 아니라는 말과 함께 "각종 석면 관련 부서에 현장 점검을 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했다.
◆ "남의 일 아닌 것 같아 불안…적극적인 조사 및 점검 이뤄져야"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여전했다. 석면 노출로 인해 폐암, 악성중피종, 석면폐 등이 유발될 수 있다는 점과 15~40년의 잠복기를 거친다는 점 등이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반포동에 거주하고 있는 한 모(48·여) 씨는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불안하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지켜보니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라고 말했다. 김 모(50대) 씨 역시 "공사장 바로 앞에 있으면서도 뉴스 보고야 석면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구청과 건설 업체 간의 관계를 '불신'하며 서울시에서 직접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석면 철거 아파트 인근에 살고 있다는 방진숙(45·여) 씨는 "석면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믿을 수 없다"며 "상황이 심각한 만큼 서울시에서 직접 나서서 철저한 조사 및 관리를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남 아파트 석면 노출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센터 측도 시민들의 주장에 힘을 보태며 단순히 '기준치 준수'를 넘어 한 걸음 나아간 감리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임흥규 센터 석면팀장은 "석면 농도가 기준치 이하로 나온 건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건 단지 법적인 숫자에 불과하다. 기준치 이하로 검출됐다는 점을 달리 생각하면 결국 석면이 배출됐다는 이야기다. 노출 위험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점검이라고 하면 대기 모니터링을 하는 건데, 이는 기계로 측정하는 거다. 여기서 기준치 이하라는 결과만 나오면 서류상으로 통과된다"라며 "사람이 직접 현장에 가서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파손 없이 석면을 철거하도록 지시할 수 있으며, 철거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더 조심할 것이다. 좀 더 적극적인 차원의 '진짜 점검'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석면 철거 재건축 아파트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대한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임 팀장은 "사실 석면 철거하는 과정에서 100% 완벽히 차단하는 방법은 없다. 즉 석면은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뾰족한 방법이 없는 만큼, 석면 철거 작업장을 되도록 피해 다니는 것이 좋다. 창문을 닫아 실내에 유입되는 석면을 최대한 막고 작업장 주변에서의 야외 활동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더팩트ㅣ잠원·반포동=이성락 기자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