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전에는 겨우 입에 풀칠은 했는데 지금은 파리만 날리고 있어."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인근에 있는 이른바 '청량리 588'에서 수년째 성매매하고 있는 김옥선(48·가명) 씨는 기자를 보자 반색했다. "학생이야? 누나가 싸게 해줄 테니까 일단 들어와." 신분을 밝히고 최근 영업실적을 물었더니 금세 태도가 바뀐다.
"보면 모르겠어? 손님이 없어 아예"라며 싸늘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본다. 손님이 아닌 것을 확인한 이상 뒤돌아설 법한데 그는 부동이다. 혹시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하지 않으며 진정 국면에 접어든 모양새다. 6일 기준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는 엿새째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격리자들도 줄어들고 있다. 물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확실한 것은 이번 메르스 여파로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러한 불황은 고스란히 홍등가에까지 파고들었다.
6일 오후 6시. 윤락업소 대부분은 어둠이 채 깔리기 전부터 빨간 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몇 곳은 문 열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대게는 일찌감치 영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중년 여성은 "요즘은 하도 손님이 없어서 오후 일찍부터 가게를 열어 놔. 우리뿐만이 아냐. 다들 장사가 안되니까 한 명이라도 더 받으려고 일찍 열어."
그는 메르스를 원망했다. "가뜩이나 올해부터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어. 딱 가게를 유지할 정도였는데 메르스가 터지고 나서는 아예 없다니까. 조금도 안 보태고 손님이 한 명도 없을 때도 있다"고 한숨을 쉬면서 부채질을 해댔다. 그러면서 "젊은 애들도 마찬가지야. 한 번 가봐"라고 거리 한쪽을 가리키며 자리를 떴다.
윤락가 초입을 지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젊은 윤락녀들이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중년 여성들보다는 적극적으로 호객하지는 않았다. 그저 "놀러 와, 쉬었다 가"라는 식으로 짧게 유혹할 뿐이다. 다만 찾는 이가 없는 사정은 똑같았다.
윤락업소 여종업원 정미연(27·가명) 씨는 "오픈한 지 2시간 넘었는데 아직 개시도 못 했다"며 "청량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요즘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것 하나만 기억하라고 한다.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청량리는 메르스 전과 후로 차이가 너무 심해. 그전에는 뜨문뜨문 이라도 찾아왔었거든."
1시간이 넘도록 홍등가 일대를 돌아다녔다. 윤락업소를 기웃거리는 남성은 가뭄에 콩 나듯 보였다. 일부 남성은 윤락업소의 어려운 사정을 알았던 것인지 여러 곳을 돌며 흥정하기도 했다. 40~50대 윤락녀들은 "원래 ○원인데, ○원만 줘"라고 기존 화대보다 싸게 가격을 제시하기도 했다.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폐업한 곳도 보았던 터라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행동이 이해됐다.
30년째 윤락업에 종사하는 장미자(55·가명) 씨는 이제 손을 털어야 할 지경까지 왔다고 하소연했다. 심지어 메르스 여파는 자신에게 그만 윤락업을 끝내라는 하늘의 계시로까지 받아들였다.
장 씨는 "몇 년 전부터 다들 어려운 것은 마찬가진데, 손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거든. 메르스가 덮치기 전까지 말이야. 이제는 단골 외엔 손님이 없다고 봐도 무방해. 매일 병원 신세를 질 만큼 몸은 아프지, 가게 유지비, 공과금, 생활비 빼면 뭐 남는 게 없어서 정말로 생계가 막막해.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거 같아. 메르스 이놈이 고마운 놈인지 나쁜 놈인지 모르겠네"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편 우리나라는 모든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성매매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구류·과료의 처분을 받는다. 이는 성매매 남성과 여성 모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7월부터 시행한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 특별법)'의 처벌조항(제21조 1항)이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심리하고 있다. 성매매 특별법 위헌 심판은 지난 2012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13만원의 화대를 받고 성매매하다 적발돼 재판에 넘겨진 여성이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더팩트ㅣ청량리=신진환 기자 yaho1017@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