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문화축제 취재…'복잡·미묘'
남자에게 '윙크'를 받았다. 분명 추파는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살짝 몸을 부딪친 것에 대한 사과의 표현이었을 테다. 어쨌든 기분이 묘했던 건 사실이다.
그의 행동을 헐뜯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리고 성소수자를 치우친 눈으로 바라볼 생각 또한 전혀 없다. 다만 자주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겪은 당황스러움에 잠시 멍했던 것 같다. 28일 기자가 낯선 남자의 '윙크'를 받았던 장소는 서울광장.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날 이곳에서는 성소수자들의 '2015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색다른 경험의 연속이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 부스행사 속 여러 장면은 이들의 문화를 잘 알지 못한 탓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기자는 동성애자, 양성애자도 아니고 성전환자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자유와 인권'을 외치는 성소수자들을 보며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순 없었다. 그들의 마음을 공감하거나 나아가 옹호할 생각도 없었다. '자유와 인권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라는 얕은 생각만 할 뿐이었다.
'둥! 둥!'
오전 11시 30분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 단체의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라사랑자녀사랑운동연대를 비롯한 보수 기독교 단체가 성소수자들의 축제를 보다 못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동성애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병들게 합니다' '동성애는 내 아들이 남자를 신붓감으로 데려옵니다' 등 자극적인 피켓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별다른 공감을 받진 못했다. 그저 양측의 행동을 '싸움 구경'하듯 지켜봤을 뿐이다.
보수 기독교 단체는 서울광장 한편에 집회를 열고 퀴어문화축제를 비난했다. 시간이 갈수록 북소리는 커졌고, 퀴어문화축제를 즐기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오후 2시 성소수자와 보수 기독교 단체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눈총 싸움이 시작됐다. 이후 양측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땀을 뻘뻘 흘리며 언성을 높였다. 상대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다.
평소 이들의 관계를 알지 못했지만, 성소수자와 보수 기독교 단체 간 갈등의 골은 꽤 깊어 보였다.
성소수자 측에서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는 피켓을 높이 들자, 보수 기독교 단체 측은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며 "동성애 타도"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거친 언쟁이 잠깐 오가기도 했다. 경찰이 설치해놓은 차단벽이 없었더라면 금방이라도 '충돌'할 것만 같았다.
'옮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은 기자에게 없었다. 다만 퀴어문화축제 현장을 본 그대로를 전달할 뿐이었다. 그전에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중요했다.
동성애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성소수자들을 '정상'이 아니다"라는 말로 설득했다. 그는 "동성애자들이 축제랍시고 열어 놓고 옷을 막 벗고 다닌다. 이를 본 시민들은 어떻겠는가. 청소년들이 보면 정서에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퍼레이드 허용은 정상적인 판단이 아니다. 성소수자들이 거리로 나와 시민들에게 노출돼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며 "만약 퍼레이드를 진행하면 몸싸움을 생각하고 있다. 길바닥에 누워버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성소수자 측에서는 갈등의 원인을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 찾았다. 강명진 퀴어문화축제위원장은 "양측이 충돌하는 것은 누군가(보수 기독교 단체)가 먼저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평화롭게 예정대로 퍼레이드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퀴어문화축제의 선정성에 관해서는 "선정적이라고 볼 수 없다. 축제에 참여하는 성소수자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일 뿐 기독교 단체의 주장에 휘말려 표현을 제재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양측의 '갈등'은 '퀴어퍼레이드'의 시작이 임박한 오후 4시 30분을 기점으로 정점을 찍었다. 양상은 갈등을 넘어 충돌이 우려될 수준으로 흘렀다.
다행히도 '퀴어퍼레이드'는 큰 충돌 없이 비교적 조용하게 끝났다.
오후 7시 퀴어문화축제와 퍼레이드, 주변 여러 상황과 양측의 주장, 모두 확인한 기자의 머릿속엔 새삼 두 가지 생각이 겉돈다.
'내가 동성애자라면 어떨까….' '내 자식이 동성애자라고 하면 어떨까….'
취재를 나서기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생각에 대한 쟁점은 찾지 못했다. 스스로 '아직 별생각 없구나'라고 다시금 느꼈다. 어쩌면 서울의 중심인 서울광장에서 성소수자 관련, 여러 문제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남의 나라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전적으로 그들과 '소통'하지 못했다. 그러나 '소통'하지 못한 사람은 비단 기자만이 아니었다.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조차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느낀 점은 있었다.
보수 기독교 단체가 '동성애자는 사탄이다'라고 주장했던 점과 성소수자들이 '항문성교가 얼마나 좋은데'라는 피켓을 들고 서울 거리를 행진했다는 점, 이 두 가지에 대한 생각은 분명했다. '거부감'이었다. 이들의 싸움에 처음 끼어든 기자로선 전혀 공감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