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포커스] '기습' 묻지 마 폭력, 당신도 예외일 수 없다

묻지 마 최근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묻지 마 폭행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묻지 마 폭행은 길거리와 공공장소 등 많은 사람이 흔히 오가는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며 범행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묻지 마 폭행 가해자에겐 폭력을 행사할만한 숨은 동기가 있으며, 사건을 자세히 조사해 범죄 동기와 원인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더팩트DB

묻지 마 폭력, 단기적 대책 없어…정확한 사건 분석 필요

#. 8일 오전 10시께 경기 군포시 금정역 인근 식당에서 이모(70) 씨가 주인 A(59·여) 씨 등 여성 3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씨 등 2명이 숨지고 B(55·여) 씨가 다쳤다. 현장에는 이 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A4용지 18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A 씨와)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데, 세 여자가 자주 어울려 다니면서 (다른 두 여자가) 장사해야 할 A 씨를 밖으로 불러내 술을 마신다. 이 여자들은 내가 돈이 없다며 무시한다" 등 피해 여성들에 대한 불만이 쓰여 있었다.

#. 지난달 23일 오전 4시 40분께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에 있는 한 도로에서 A(31) 씨가 김모(23) 씨 등 2명에게 폭행을 당했다. 김 씨 등은 A 씨가 단지 '쳐다봤다'는 이유로 주먹과 발, 무릎으로 A 씨의 머리 등을 1분가량 수차례 폭행했다. 뇌사상태에 빠졌던 A 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9시께 결국 숨졌다.

#. 새벽 운동을 하기 위해 길을 걷던 B(67) 씨가 만취한 10대에게 폭행을 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B 씨를 폭행한 진모(19) 군은 지난 23일 오전 4시 50분께 전주시 중화산동 한 대로변을 지나다 B 씨와 어깨를 부딪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진 군은 A 씨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도 시비를 건 뒤 주먹과 발, 무릎으로 얼굴과 복부, 다리 등을 30여 차례 폭행했다.

위 사건들은 이른바 '묻지 마 폭행'이다. 이같이 예측할 수 없는 '묻지 마' 양상의 범죄가 최근 늘어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증가하고 있다. 내 가족, 내 친구 중 누군가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2012~2013년 '묻지 마 범죄' 건수는 모두 109건으로 상해가 61건(53%)으로 가장 많았다. 사건 발생 지역은 길거리가 51%로 가장 많고, 공원, 도서관, 버스터미널, 관공서, 지하철역, 초등학교 등 공공장소 등에서도 발생 비율이 상당했다. 범행 장소는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에서 이런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묻지 마 폭행'을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자기 분노 해소 수단으로서 일어나는 범죄"라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가 화가 난 순간 그 주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행사하니 피해자로선 황당할 수밖에 없다"며 "주로 길거리 등에서 약한 상대를 골라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더 크다. 이들은 강한 상대라고 판단되면 폭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쳐다봤다는 이유로 지난달 23일 오전 4시 40분께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에 있는 한 도로에서 묻지 마 폭행을 당한 A(31) 씨가 뇌사상태 8일 만에 결국 숨졌다. /YTN 뉴스 영상 갈무리

이전까지 '묻지 마 폭행' 사건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때릴 만한 동기가 없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발생하고 있는 폭행 사건에 범행 동기가 아예 없다고 판단할 순 없으며, 숨은 동기가 존재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 교수는 "말만 '묻지 마'라고 불리는 것이지 '묻지 마' 범죄자들은 평소에 사회 혹은 자신에 대한 불만이 내재해 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피해자를 택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해서 범행 동기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들의 불만이 무슨 이유에서건 폭발해 약한 사람을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연애, 직장 등의 '고민', 현실 상황에서의 '좌절'이 분노로 연결됐을 때 범죄가 촉발된다. 동기화된 범죄화와 적합한 피해자, 보호자의 부재 등이 맞아떨어진다면 어디에서든 이 같은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윤경 계명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역시 "최근에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범죄자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폭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방법이 제한되고 또 불만을 해소할 방법이 부족한 상황에서 '좌절 경험'을 겪고 그것이 누적되면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범행 동기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우발적 폭력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발적 폭력 사건은 모두 27만 260건으로 올 5월에만 2만 2727건이 발생했다. 이는 하루에 700여 건이 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오 교수는 "범죄 발생 이전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이런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사회병리 현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범죄 증가 이유로 '모방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 교수는 "최근 '묻지 마 범죄'가 뉴스에 많이 나오니까 모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 역시 "언론 보도가 되면 '나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네, 그렇게 했단 말이야? 나도 그렇게 해볼까?' 등 생각을 하게 돼 모방 범죄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길을 가다가 갑자기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과 맞닥뜨린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뚜렷한 대처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법무법인 한별의 전세준 변호사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사람이 많은 곳으로 이동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며 "피해자가 먼저 맞더라도 같이 때리면 쌍방폭행이다. 만약 사람이 주위에 없고, 범죄를 미리 인식할 수 없을 만큼 갑작스러웠다면 그때서라도 위기를 감지하고 빠르게 자리를 피해야 한다"며 피하는 것 외 뚜렷한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미안하다 말했지만 지난 23일 오전 4시 50분께 전주시 중화산동 한 대로변을 걸어가던 B(67) 씨가 어깨를 부딪쳤다는 이유로 만취한 10대에게 폭행을 당했다. /KBS 뉴스 영상 갈무리

사건 이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단·장기적 대책 마련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정확한 범죄 분석이 수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묻지 마 폭행'의 경우 즉시 대처가 어려운 만큼 사례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분석해 숨은 동기를 밝혀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만약 범죄가 발생한다면, 그 범죄가 개인의 문제든 사회의 문제든 범죄 원인을 파악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며 "단지 피해자가 특정 대상이 아니라, 불특정인이니까 범행동기가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묻지 마'로 치부하지 말고 가해자의 환경이나 어떤 경험 등을 깊이 있게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인 차원에서 고립되고 소외된 사람이 그늘진 곳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돌볼 수 있는 복지 차원의 개선도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사실 '묻지 마 폭행'은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호주와 미국 등에서 이른바 '원펀치 공격'이 사회적 문제로 지적받아 왔다. 상대방을 단 한 방의 주먹으로 쓰러뜨린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원펀치 공격'은 호주에서만 2000년 이후 90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오 교수는 "'원펀치 공격'은 우리의 '묻지 마 폭행'과 비슷한 양상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며 "'원펀치 공격'은 '너 한 번 때려봐'라는 주변 사람과의 상의 후 벌어지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가해자 대부분이 고독한 은둔자들이기 때문에 상의하는 경우가 없다. 순간적으로 본인이 판단해서 약한 사람을 택해 벌어지는 것이다"고 외국와 우리나라의 사례를 달리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묻지 마'라는 이름 아래 범죄 분석이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 하지만 단기적인 처방을 굳이 꼽자면 폐쇄(CC)회로TV가 있다. 범죄자가 도로 곳곳 CCTV가 있다고 인식한다면 쉽사리 범행을 저지르지 못할 것이다. CCTV가 있다면 범행의도가 있더라도 의도를 구체화 시키는데 위축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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