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논란' 베이비박스, 폐지냐 존치냐?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상자, 베이비박스다. 최근 이 베이비박스 존치 여부를 놓고 찬반논쟁이 뜨겁다. 버려진 아기들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생명 존중' 주장과 베이비박스가 아기를 죄책감 없이 버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다는 '유기 조장'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사실 베이비박스 찬반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9년 12월 서울 관악구 난곡로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이종락 목사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기 시작한 이후 크고 작은 논란이 뒤따랐다.
6일 오후 <더팩트>는 직접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교회를 먼저 찾았다. 그리고 베이비박스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관악구청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놔두고 올 수밖에 없는 부모의 '부득이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미혼모센터를 찾았다. 이들은 '베이비박스'라는 한 가지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베이비박스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자세히 들어봤다.
◆ "위기의 아기들…죽음은 막아야!"
#. 지난 2013년 12월 부산에서 생후 4개월 된 남자아이가 모텔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이를 숨지도록 방치한 이는 미혼모 B(17)양. B 방은 모텔 방안에 아들을 방치하고 친구들과 디스코텍 등지에서 놀며 귀가하지 않아 아이를 숨지게 했다.
이와 같은 반인륜적인 사건 발생을 막고 정상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아기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베이비박스다. 베이비박스를 찬성하는 이들은 아기들의 생명을 구하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날 만난 주사랑공동체교회 조태승 부목사도 같은 이야기를 내놨다. 그는 베이비박스가 만들어진 이후 700명의 아이가 이곳을 거쳤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많은 아기가 유기되고 있는 상황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베이비박스 찬반논란에 대해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 반대의 목소리도 듣는 것이 필요하다"면서도 "베이비박스가 유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위기에 빠진 아기들이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베이비박스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아기를 내다 버리는 행위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가는 부모가 없어지길 바란다. 다만 미혼모가 아기를 이곳에 두고 갈 수밖에 없는 어려운 사회가 이어진다면 그 생명을 지키고자 베이비박스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베이비박스를 '불법' 시설로 보는 정부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정부는 수많은 아기가 베이비박스에 맡겨지는 것을 알면서도 '무관심'하다.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두고 '유기' 문제 자체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현재 입양특례법 같은 경우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입양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중·고등학생의 경우 갈 곳이 없어진 셈이다. '사회적 낙인'때문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어린 부모들은 아기를 기를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최후의 선택으로 베이비박스를 찾게 된다"고 주장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측은 베이비박스를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아기가 버려지는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사라져야 하며, 이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 "취지는 좋지만 엄연한 불법"
구청 관계자는 "베이비박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불법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제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라며 주사랑공동체교회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어 곤란하다고 밝혔다.
이어 "부모의 곁을 떠난 아기들을 모른 체할 수 없는 게 우리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직접 아기들을 받아 기르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구청에서 받아 병원에 보낸다. 하지만 의료비 지원이 안 된다. 그래서 비용이 만만치 않다. 혹시나 큰 병을 앓고 있으면 간호인도 필요하다. 구청에서 그 모든 비용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애로사항이 많다"고 토로했다.
구청 관계자는 "차라리 정부에서 베이비박스를 인정해줘서 전국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우리는 편하다. 그렇게 되면 지원을 아낄 생각은 없다"며 "키우고는 싶은데 여력이 안 돼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오는 경우가 있다. 매우 안타깝다"고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무조건 출생신고를 해야 입양할 수 있도록 제정됐다. 결국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유기하는 부모들은 아기를 자기 호적에 남기기 싫어서 두고 오는 것이다. 그것을 너무나 쉽게 받아주는 장소가 베이비박스다. 이는 엄연한 불법이다. 좋게 볼 수 없다"며 베이비박스 폐지 의견을 고수했다.
◆ "미혼모 향한 부정적 인식 바뀌어야!"
그는 '친부모가 가장 훌륭한 부모'라는 점을 강조하며 "미혼모의 경우 자신이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위기 상황을 어떻게 하면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놓고 오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보건복지부나 가까운 미혼모 센터와 연결하면 임신부터 출산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만 25세 이하 저소득 한부모가족(최저생계비 130%)의 경우에는 아동양육비(만 12세 미만 자녀 1인당 10만 원 지원)를 받을 수 있다. 또 추가 양육비(만 25세 이하 미혼부모와 조손가족의 만 5세 이하 자녀 1인당 월 5만 원 추가 지원)도 있고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학용품비(중·고등학생 자녀 1인당 연 5만 원 지원)도 지원된다. 생활보조금(한부모가족 월 5만 원 생활보조금 지원) 지원 등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물론 충분한 국가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기를 두고 오면서 '나보다 더 나은 부모를 만나 행복하게 살라'라고 생각을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친부모가 가장 훌륭한 부모다"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베이비박스 찬반 논란에 대해서는 "미혼모만 베이비박스를 이용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애가 있는 아기와 불륜으로 태어난 아기도 두고 온다"며 "미혼모의 경우 베이비박스가 없었더라면 다른 방법을 찾거나 도움을 요청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 수단을 찾았을 것"이라고 베이비박스 존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아울러 "'너 못 키우잖아. 그냥 여기다 아기를 데려다 놔' 등의 인식이 문제다. '키워야지' 등 용기를 북돋워 줄 수 있는 격려 차원의 인식으로 전환될 필요성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유아 유기 줄이는 방법? '관심과 노력 절실'
이처럼 베이비박스 존치와 엉킨 다양한 생각이 실제로 존재했다. 하지만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치는 이들에게도 부분적인 교집합을 찾을 수 있었다. 더는 아기가 유기되지 않길 바란다는 점이다.
공통으로 아기가 버려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올바른 '성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올바른 성교육을 받아 원치 않는 임신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른다면 아기가 버려지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이들은 성교육과 함께 미혼모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인식도 아기를 버리는 선택을 막기 위해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꼽았다.
베이비박스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독일, 체코, 폴란드, 일본 등 약 20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특히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최근 무분별한 유기와 낙태를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서 베이비박스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유기를 조장할 위험이 크다며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처럼 유아 유기와 관련된 베이비박스 설치 논란은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는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순히 '논쟁'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논쟁'에 앞서 차가운 상자에 남겨지는 아기들을 줄이기 위한 사람들의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5년까지 150여 건 정도를 유지하던 유아 유기건수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꾸준히 감소하다가, 2011년 이후 급속하게 증가했다. 2012년에는 139명, 2013년도에는 225명에 이른다. 2013년도 기준, 1.6일에 1명꼴로 갓 태어난 아기가 버려지고 있다.
[더팩트ㅣ난곡동·구로동=이성락 기자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