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도 불안해서 못 입겠네
여성의 뒤꽁무늬만 졸졸 따라다녔다. 평생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지하철 성범죄 발생 건수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는 '몰래카메라(몰카) 촬영'을 직접 해 보는 것이 이날의 '미션'이었다.
지하철 몰카 얼마나 많을까. 지난 24일 서울 지하철경찰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6월에 경찰에 적발된 서울 지하철 내 성범죄는 627건이었다. 특히 옷차림이 짧아지는 4~6월에 발생한 경우가 498건으로 1분기보다 286% 많았으며 그가운데 몰카 촬영은 1분기 38건에서 2분기 237건으로 523.7%나 증가했다. 2분기 몰카 촬영은 전체 지하철 성범죄의 47.6%를 차지했다.
노선별로는 지하철 2호선에서 일어난 성범죄가 43.1%(270건)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1호선(15.6%), 4호선(14.8%) 순이었다. 장소로 보면 전동차 내부에서 발생한 성범죄가 51.8%(325건)에 달했고 그 다음이 역구내 39.2%, 승강장 8.1% 순이다.
날이 풀리면서 기승을 부릴 것이라 생각되는 몰카의 대상을 우선 찾으려 했다. 그런데 아직 날이 춥다. 무심히 다닐 적엔 잘만 보이던 살구색 스타킹에 엉덩이를 간신히 가린 짧은 치마 차림의 여성, 막상 찾으려고 보니 보이지 않는다. 여대 앞을 몇 바퀴 빙빙 돈 후에야 '원하는(?)' 대상을 찾았다.
취재의 초점은 성범죄자들의 '몰카 촬영이 얼마나 쉽게 이뤄질 수 있느냐'였다. '몰카도 찍어 본 사람이 뭘 알지….' 몇 번이고 망설였다. 눈을 질끈 감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몇 번 오르내리다 결국 친구에게 도움을 구했다. 도저히 처음 본 여성의 치마 속에 손을, 카메라를 몰래 넣을 수 없었다.
"퇴근하면 말해라. 취재 좀 도와줘"라는 갑작스런 문자 메시지에 친구가 반색했다. "네 치마 속을 몰래 찍을 거야"란 말에 한 번 더 당황한 친구의 반응을 모른 체하고 퇴근 시간을 기다리며 지하철 이용 시민들에게 '지하철 성범죄'에 관한 얘기를 들으려 했다. 지하철역,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바삐 오가는 시민들에게 덥석 다가가 말을 걸었다.
성공률이 낮았다.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며 중년 여성이 멀어져 간다. '아, 제가 대체 뭘 했다고 그러세요?' 기자는 '안녕하세요'란 인사말도 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이어 젊은 커플도, 코가 높은 30대 여성도, 하하호호 떠들던 중년 여성도 말을 걸기 무섭게 피하며 사라져간다. 갑자기 자신감이 바닥을 쳤다.
가뜩이나 낯을 가리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뻔뻔해졌다.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몰카'를 찍을 결전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만 기다려 온 사람처럼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그런데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갑자기 회식이 잡혔다"며 우정의 힘으로 자신의 치마 속을 공개할 예정이었던 친구가 오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진짜, 실제로 '몰카'를 찍은 후 사진에 찍힌 여성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동의를 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에스컬레이터 밑에 쭈그리고 앉아 고뇌에 잠겼다. '이걸 어떻게 하나. 어떻게 찍나. 찍다가 설명하기도 전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남의 치마 속에 카메라라니….' 몰카 '범죄의 타이밍'을 잡는 것이 도통 쉽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한 후엔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내딛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켜고 자세를 좀 잡을라 치면 어느새 에스컬레이터가 끝난다. '이번엔 진짜다' 하고 상행을 타면 앞 사람이 힐끔 뒤를 돌아본다. 하릴없이 다시 하행을 타고 내려온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락내리락하기를 수십 번. 범죄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기다림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성공은 찰나에 이루어졌다. 휴대전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여성의 뒤로 바싹 붙었다. '될 대로 되라'라는 마음가짐이 행동을 이끌었다.
'몰카'는 마음 먹고 시도하는 게 어려웠을 뿐, 정작 실행 과정은 간단했다. 성공적으로 여성의 치마 속을 찍은 후 양해를 구했다. 당황한 여성이 분노할까 두려웠다. 다행히 취재의 취지를 들은 뒤, 그 여성은 기자를 너그럽게 용서했다.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미션을 완수했지만 어딘가 찝찝한 마음은 생각보다 몰카가 참 쉽게 찍혔다는 것 때문이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는 말이 순간 머릿속을 스쳤다. 기자도 처음이라 시행 전 지하철역 '지박령'처럼 하염없이 에스컬레이터 구경을 했지만, 한 번 찍고 나니 자신감마저 붙었다. 게다가 곧 봄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성 사이에서는 더 쉬우리라.
기자는 지난 설연휴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성공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치마도 입을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몰카를 당한 후에도 말하기 전엔 전혀 몰랐던 여성을 생각하니 포기할까 싶다. 생각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몰카를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당하고도 모르는 자신의 치마 속 사정이 온라인을 떠돌고 있을지 모른다.
"여성 분들, 뒤를 조심세요. 누군가 당신의 치마 속을 노리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더팩트 | 강희정 인턴기자 khj@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