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ㅣ 서울시청=고수정 기자] "우리에게 인권은 '목숨'이다."
10일은 '세계인권선언의 날'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존엄과 권리에 관해 평등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는 '냉랭한 날'일 뿐이다.
'당신들의 인권과 우리의 인권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냐'고 묻는 性(성)소수자들은 이날로 닷새째 서울시청 로비, 찬 바닥에서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시는 애초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을 포함한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이날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인권헌장 선포를 무기한 연장했다.
성소수자들에게 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편견의 시선. 이들은 단지 한 명의 시민으로서, 사람으로서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
10일 오전 <더팩트> 취재진은 냉랭한 분위기의 서울시청 로비에서 성소수자 A(20·남) 씨와 B(24·여) 씨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극도로 얼굴을 공개하는 것을 꺼렸다. 이들의 상황을 고려해 얼굴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 닷새째 추위와 싸워가며 농성 중이다. 이 자리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A : '서울시민인권헌장'은 동성애자와 성전환자 등 성소수자에게 가장 힘이 되는 내용이다. 서울시가 애초 약속을 파기했고,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B :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나 차별이 근절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소수집단을 향한 차별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 집단에 속한 사람은 무척 힘들다. 우리에게 인권은 '목숨'이다.
- 자신의 성정체성을 주위에 밝혔을 때 많이 힘들었을 듯하다.
A : 정말 고통스러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커밍아웃을 했다. 학교에 다니는 3년간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당했다. '더럽다', '너희 엄마 XX한다' 등 욕설은 물론이고 성희롱, 심지어 좋아하는 친구에게 성적으로 입에 담기 힘든 일도 당했다.
다니던 교회 목사님은 돈을 쥐여주며 "여자를 몰라서 성정체성에 혼돈이 온 것 같다"며 등을 떠밀기도 했다. 또 학교 담임 선생님이 "물 흐리지 말라"며 자퇴하기를 원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폭행도 당하는 등 무척이나 힘들어 담임 선생님에게 찾아가 "조용히 지낼 테니 내버려둬라"고 말한 적도 있다.
B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성정체성을 알게 됐고, 밝혔다. 그러자 학교에서는 저를 기도원에 보내고 감금했으며, 물고문까지 했다. 왕따는 물론이고 신도들에게 성폭행도 당했다.
고등학생 때 제가 몸이 매우 아파 학교에서 보건실에 누워있으면, 보건교사가 "네가 동성애자라는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악귀가 씌어서 몸이 아픈 거다"라며 조롱했다.
-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가 미뤄지는 것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은?
A : 아직 학생인 저는 괜찮지만, 사회에 있는 성소수자 동료들은 사실 많이 힘들 것이다. 커밍아웃을 한 사람들은 직장 상사들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심하면 성폭행, 부당해고까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은 정말 많은 용기를 품고 온 것이다. 그러므로 인권헌장은 즉각 선포돼야 한다. 우리도 얼굴을 갖고 싶다.
B : "음지에서 너희끼리 즐기지 왜 밖으로 나오느냐"며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다. 지금도 농성장 옆에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자)들이 지키고 있다. 우리는 결국 사회적 약자가 됐다.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우리가 음지에서 양지로 한 발 나갈 수 있게 받침이 돼주는 것이다. 우리도 사람이고 시민이다. 더는 성소수자를 지우지 말아달라. 희망을 뺏지 말아달라.
정치사회팀 tf.pstea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