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의 눈] 경찰의 '삑사리' 함정수사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면 경찰이 함정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얼핏 정당해 보이는 함정수사는 법 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란을 사고 있다./영화 살인의 추억 갈무리

[더팩트|황신섭 기자] 비가 오는 밤.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이 구석진 밤길을 걷는다.

여성 경찰이다.

비가 내리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성만을 골라 범죄를 저지르는 연쇄 살인마를 꾀어내 붙잡으려는 작전이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이다.

경찰의 치밀한 작전이 돋보이지만 이 방법은 논란거리다. ‘함정수사’이기 때문이다.

본디 함정수사는 범죄자를 잡으려고 수사 협조자(보통 정보원, 제보자, 동종 전과자)를 미끼로 삼는 수사 방법을 말한다.

마약과 뇌물, 도박, 성범죄 등 증거를 잡기 어렵거나 은밀하고 조직적인 범죄를 해결할 때 주로 쓴다.

경남 통영에서 지난 25일 일어난 티켓 다방 여종업원 투신 사망사고를 두고 함정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JTBC 뉴스 갈무리

함정수사는 ‘기회제공형’과 ‘범의유발형’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경찰이 자전거 도둑을 잡으려고 길가에 일부러 자전거를 세운다. 그리고 숨어 있다 도둑이 자전거를 훔치면 그때 나타나 잡는다.

이게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다. 유도수사라고도 부른다.

범의유발형은 쉽게 말해 이런 것이다. 경찰이 노래방에 손님인 척 들어가 여성 도우미를 부른다. 그 뒤 도우미가 오면 법을 위반했다며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방식이다.

지난 25일 경남 통영에서 일어난 다방 여종업원 투신 사망사고가 바로 이 경우다.

경찰이 성매매 티켓 다방을 단속하려고 여성 종업원을 모텔로 유인했는데 단속 사실에 놀란 여성이 창밖으로 뛰어내려 목숨을 잃었다.

범죄를 해결하고 불법을 근절하다 생긴 일인데 뭐가 문제냐고?

그게 그렇지 않다.

함정수사는 법 원칙에 크게 어긋난다.

경찰의 함정수사는 현행 민법이 정한 신의칙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대법원도 경찰의 함정수사는 위법하다고 판결하고 있다./더팩트 DB

경찰은 함정수사 논란이 생길 때마다 현행 형사소송법(제199조 1항)을 방패로 꺼내든다.

‘수사 목적을 위해서는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형소법 취지는 수사에 필요한 조사를 하라는 거지, 제 멋대로 덫을 놓으란 얘기는 아니다.

또 한 가지.

경찰의 함정수사는 ‘믿음’과 ‘성실’을 기본으로 삼으라는 현행 민법(신의칙 원칙)과도 맞지 않다. 사법기관이 함정을 파 수사하지 말라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 2007년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계략이나 술책을 써 범죄자를 붙잡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경찰의 범죄자 검거와 단속 의지를 무조건 탓할 순 없다. 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경찰은 법을 먼저 지킨 뒤 범죄를 해결해야 옳다.

‘덫’은 적을 잡기도 하지만 때론 내가 걸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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